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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Dec 11. 2020

04. 마지막 밤

단편소설 <수림: 愁 霖>



  책상에 앉아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음침하고 두려운 밤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저 새벽을 기다리는 터널 속에 잠시 머물러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밤은 새벽을 잉태하고 우리는 그것을 마주 보기 위해 잠시 기다린다.


비로소 마주친 그곳에서 무사히 하루를 끝마쳤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삶의 이유를 느낄 것이다. 새벽녘의 퍼르무레한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종이를 꺼냈다. 가지런히 놓인 연필을 들고 빳빳한  종이에  글자씩 올려본다. 지웠다가 썼다를 반복하기를 수백 . 지겨운 단어들이 조합하여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냈다.




새벽의 여명  

                       지윤


내 삶의 절반이 우울을 버티는 거로

끝날까 봐 두려운 밤.

그 밤이 또 찾아왔다.


내 삶의 절반이 우울을 버티는 거로

끝날까 봐 두려운 밤.

그 밤이 이제 나를 지나친다.

지나치고 지나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하늘에 연한 청빛이 어슴푸레하게 물든다.

그렇게 천천히 고요하게 나를 찾아온다.


그래 새벽이다.

비로소 짓누르고 있던 삶의 무게를

새벽하늘로 띄어 보내고

선명한 새벽의 공기를 몸으로 느낀다.

지독히도 길었던 수림 틈으로

변화의 빛이 들어온다.

긴 장마는 오늘로써 막을 내릴 것이다.



지윤은 밝아오는 아침 속에 파묻혀 기지개를 켰다. 낡은 서랍 속에 놓인 유화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새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는 주전자를 들고 은빛 잔에 천천히 따라 붓는다. 고소한 커피가 한잔에 가득 찰랑거렸다.


커피를 들고 색색별로 잔뜩 뭉개 놓은 유화를 손가락에 얹어 색을 칠한다. 뒤로 물러나 있던 무채색의 공간에 색이 입혀지며 주연으로 떠오른다. 잿빛의 안개는 커피 속으로 흩어지고 달콤한 시간만이 배경처럼 흐르고 있다.



자, 이제 다시 달려갈 시간이야.

누군가의 평가 속에 저울질당해 상처받은 너의 영혼이 끝없는 굴레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렴.

가끔 길을 잃고 방황하는 건 괜찮단다. 네가 내뿜는 밝은 빛의 흔적을 따라 항상 너를 찾을 거야.


그리고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 한 잔을 대접할 거야. 길을 찾으라고 재촉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을 거야. 그냥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소소한 쉼을 즐기면 돼. 그러고 나서 준비가 되면 다시 길을 찾아 떠나렴. 언제나 네가 필요할 때마다 작은 휴식을 대접할게. 언제든 들려주지 않을래? 항상 기다릴게.


-동네 카페 올림-





단편소설 <수림: 愁 霖>  

00. 에필로그 

01. 자취방에서 

02. 동네 카페 

03. 두려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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