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따라 세계일주 - 타이베이, 카페 야부

Taipei, Cafe YABOO

by 만얼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된 날이었다. 목적지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젊음의 거리라고 불리는 융캉제 거리였다.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융캉제의 대로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골목길을 발견할 수 있다. 인파를 피해 그 골목길을 걸어가다 이 카페를 발견했다.



20180104_155422.jpg (c)만얼 | 카페 야부 입구, 따뜻해 보이는 조명




건물은 꽤 오래된 것 같았지만 카페가 정말 밝고 따뜻해 보여서 눈길이 갔다. 특히 비가 계속 내리는 1월의 대만은 꽤 쌀쌀했기 때문에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에 더 이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안쪽을 들여다보니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이야기했던 라마르조코(La Marzocco) 사의 스트라다(Strada)라는 모델의 에스프레소 머신이었는데 2018년 그 당시에는 가장 최신 모델이기도 했다.


20180104_155938.jpg (c)만얼 | 바 정면 사진, 당시 최신 모델이었던 라 마르조코 스트라다



자리를 잡자마자 테이블로 서빙된 물과 함께 메뉴판을 받았다. 이곳은 손님이 앉은자리에서 주문을 하고, 주문한 음료를 테이블에서 서빙 받고, 계산까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풀 서비스 형태였다. 이곳에서 받은 서비스는 마치 일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깍듯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메뉴판을 보고 나는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 한 잔, 친구는 같은 원두의 아이스 드립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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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편안한 좌석과 시선을 끄는 그림, 메뉴판



가격은 한국 카페의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립 커피는 한화로 약 8,000원 정도였고 에스프레소는 약 5,000원 정도였다. 사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꽤 비싼 축에 속하지만 그들이 제공하고 있는 풀서비스를 생각하면 적당한 가격이었다.


적당한 가격


모든 카페마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2,000원에 마실 수 있지만, 어떤 카페는 한 잔에 5,000원쯤 하기도 한다. 사실 가격은 주인장 마음대로다. 내 카페가 있는 상권을 고려하고 내가 파는 커피의 품질과 서비스, 원가 등을 종합해서 가격을 매긴다. 그 가격이 합리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모든 것은 소비자의 결정이다. 소비자들이 그 카페에 머무는 동안 받은 경험과 기억이 그들이 지불한 가격에 대비해서 가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재방문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정말로 합리적이라면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나는 바리스타의 입장에서 손님들에게 음료를 판매했지만, 수많은 카페를 다녀본 경험 많은 손님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도 카페에서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실 때면 그 가격이 적절한가 아닌가에 대해 따져보게 된다. 이 카페 야부처럼 편한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고 서빙을 받을 수 있으면서 깨끗한 테이블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정도 커피 가격은 충분히 지불할 만하다. 그리고 바리스타의 편안한 서비스는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반면, 어떤 카페들을 가보면 정 반대의 느낌을 주는 곳들이 있다. 특히 관광지에 있는 카페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많다. 사는 곳이 바다가 있는 지역이라, 최근 들어 큰 카페들이 바닷가에 줄지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런 카페들을 가보면 기본 가격이 보통 7,000원 ~ 8,000원이다. 예를 들어 두 명이 그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씩 주문하고, 디저트도 한 개 추가하면 20,000원이 훌쩍 넘는다.


물론, 주인의 입장에서 비싼 땅에 큰 건물을 지은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대개 그런 카페에서는 맛있는 음료보다는 사진 찍기 좋은 음료, 좋은 재료로 오래 숙성시킨 맛있는 빵보다는 빨리 구워내느라 속까지 완전히 익지 않은 빵, 그리고 깨끗하고 잘 관리된 테이블과 화장실보다는 너무 바빠서 거의 관리가 되지 않는 지저분한 테이블과 화장실을 볼 수 있는 경우가 꽤 많다. 그리고 세심한 서비스는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이 있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곳에서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이 적당한 것일까? 과연 우리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을까? 과연 우리는 그런 카페를 두 번, 세 번 찾아갈까?


20180104_160002.jpg (c)만얼 |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들이 보기 좋았던 바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형제처럼 닮았던 두 명의 바리스타가 몇 번씩 테스트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은근히 기대가 생겼다(바리스타가 커피를 테스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커피따라 세계일주-유럽편>의 스페인 카페 글에서 설명해 놓았으니, 함께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몇 분 더 기다린 뒤 우리의 커피가 차례대로 서빙되었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커피를 받았다.


20180104_161219.jpg (c)만얼 | 에스프레소



음료를 받아보니 여기가 대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동양적인 분위기의 색감과 모양의 에스프레소 잔 덕분이었다. 완전히 둥근 형태가 아니라 옅은 곡선이 보이는 잔받침과 녹색 빛이 감도는 색감은 차분하면서도 커피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커피 맛은 기대했던 것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향과 산미가 뛰어났지만, 단맛이 정말 뛰어났다. 압도적인 단맛이 다른 맛들을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친구가 시킨 아이스 핸드드립은 차 같은 느낌이 강했다. 어떤 독특하고 강한 느낌을 부각하기보다는 누구나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추출하고 있는 의도가 느껴졌다.



커피의 단맛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사실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가 달다고? 단맛이 강해? 우리가 커피 잘 모른다고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어떻게 달아?! 잘난 척 좀 그만해!'


라고 말해도 사실 할말은 없다. 맛과 향은 참 주관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과학적 원리가 있긴 있다. 너무 깊게 들어가진 않을 테니, 조금만 발을 담가보자. 사실 녹색의 커피 생두의 구성 성분만 보면, 전체 100% 중에 당류가 50% 이상(다당류와 올리고당 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로스팅을 하고 우리가 아는 갈색의 커피 원두가 되는 카라멜라이징(또는 마이야르 반응이라고도 한다)의 과정을 지나면서 당류의 약 30%가 소실된다. 그래도 20%의 당류가 있지 않냐고? 사실 그 당류조차 직접적인 단맛을 내는 성분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단맛을 느끼기엔 무리가 있다.


이전에 프라하 카페 이야기를 할 때 잠깐 언급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 우리의 미각은 맛과 농도를 생각보다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방금 위에서 이야기했던 단맛도 비슷하다. 우리가 커피에서 느끼는 단맛은 당류를 통한 진짜 단맛이 아니다. 그 단맛의 출처는 향과 질감의 복합적 산물이다. 이전의 글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과일 사탕을 녹여먹는 듯한 느낌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그 말인즉슨, 레몬이나 오렌지, 포도, 자두, 사과, 배, 대추야자 등등의 과일 같은 단향과 잘 추출된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질감이 조화로웠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그 단향과 묵직한 질감이 잘 섞여 들어오면 우리의 뇌는 그것을 단맛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향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그 향을 느낄 수 있는 선천적인 감각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아무런 느낌 없이 쓰기만 한 커피를 누군가는 달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럴 땐, 그저 서로가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친구와 편안하게 각자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맛있는 커피와 편안한 서비스 덕분에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다시 젊음의 거리를 즐기기 위해서 힘찬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manall/17 (에스프레소 테스트, 오늘의 최고)>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manall/9 (맛과 농도의 차이, 어디 커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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