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따라 세계일주 - 타이베이, 심플카파

Taipei, Simple Kaffa

by 만얼


대만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반드시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이 바로 이곳, Simple Kaffa이다. 커피따라 세계일주 대만편의 시작부터 언급했던 2016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의 우승자인 Berg Wu가 소속해있는 카페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 카페에 갔을 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2020년에 두 번째 대만 여행을 갔을 때 한 번 더 방문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이 카페가 확장이 되어서 더 좋고 멋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훨씬 더 늘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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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좌)2018년의 한 호텔의 로비에만 있었을 때 (우)2020년, 새로운 플래그쉽 매장




2018년, 디자인 호텔 V라는 호텔의 로비에 있는 이 카페의 방문 목적은 단 하나였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던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셔보는 것. 여유가 된다면 그것 외에도 이것저것 더 많이 마셔보고 싶었다. 꽤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밖은 어둑어둑했지만, 카페는 환한 조명 덕분에 밝고 따뜻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밝은 카페로 들어가자마자 떡 하니 눈에 들어오는 상패를 구경하고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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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상패와 바 정면


바리스타 한 명이 바에서 나와 메뉴판과 물을 제공해 주었다. 곧바로 대회에서 사용했던 커피를 찾았는데, 역시나 비싼 편이었다.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세트가 한화로 약 3만 원. 예상보다 더 비싼 가격이었지만 고민 없이 바로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이 카페를 힘들게 찾아온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함께 온 친구는 이곳 블렌드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세트, 나는 대회 원두 세트를 주문하고 카페를 잠시 둘러봤다.


카페가 호텔 로비에 있어서 그런지 크기도 작았고 인테리어에 크게 신경 썼다는 느낌은 없었다. 책장엔 상패와 책들이 가득하고 흰색의 테이블과 의자는 편안함의 기능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심지어 커피를 제조하는 바 공간은 많이 물품이 어지럽게 쌓여있어서 실험실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의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그렇게 정돈되지 않은 모습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커피를 주문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을 눈치챘다. 보통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한 잔씩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늦어도 5분에서 10분 정도면 나와야 하는데, 낌새조차 없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리스타를 보니 계속해서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Berg Wu는 대회에서 조금 특별한 커피 추출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커피를 만들어주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다.


20180104_183734.jpg (c)만얼 | 커피를 만들고 있는 바리스타


그가 차가운 포터필터를 사용한 이유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구는 어느 정도 따뜻해야 한다.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커피 추출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는 커피의 맛과 향미, 그리고 추출의 일관성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서 커피 가루를 담는 포터필터라는 기구를 일부러 차갑게 만들어 사용했다.


Berg Wu 대회 시연 영상: https://youtu.be/2dfLJRR_Ils [출처: COFFEE TV] 자막 O


커피를 추출할 때 포터필터라는 손잡이가 달린 작은 바구니 모양의 메탈 필터에 커피 가루를 담고 다져준다(탬핑). 그리고 포터필터를 에스프레소 머신에 장착한 후에, 고온 고압의 물이 포터필터에 담긴 커피를 투과하면서 에스프레소가 추출된다. 굳이 커피를 추출할 때가 아니더라도 포터필터는 항상 머신에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따뜻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서 포터필터를 일부러 찬물에 담가서 차갑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가 정말 신선하다.


이전 글에서 우리가 커피에서 느끼는 단맛은 커피의 향과 질감의 복합적인 산물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커피의 향을 잘 살리는 것이 커피의 좋은 단맛을 살리는 것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커피의 향을 내는 섬세한 아로마 성분은 강한 휘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방치하거나 너무 높은 온도에 노출시켰을 때 빠르게 증발된다. 매우 섬세한 꽃과 시트러스 류의 향을 가지고 있는 고품질의 게이샤 커피를 사용한 Berg Wu는 그 커피가 가지고 있는 작은 향미 하나까지도 살리고 싶어서 포터필터를 인위적으로 차갑게 만들어, 아로마 성분이 증발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정말 독창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카페에서 이렇게 갑자기 포터필터를 차갑게 만들어서 추출하기에는 많은 실험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번 포터필터를 차갑게 만드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바쁜 매장에서 사용하기는 정말 어렵다.




커피를 만들고 있던 바리스타는 추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최소 4번 이상을 반복하며 테스트했다. 이 커피의 원두 판매 가격이 100g에 한화로 약 60,000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주문한 것이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같이 갔던 친구는 그 정도면 커피가 기대에 못 미쳐도 감사하게 먹어야 할 것 같다며 감탄했다. 그렇게 시간이 약 20분 이상이 지난 후에 드디어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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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만얼 | 20분만에 받았던 대회용 커피


커피의 향과 맛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재스민과 얼그레이를 연상시키는 향, 아카시아 꿀과 시트러스류의 단맛. 정말 생생하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함께 나온 카푸치노도 훌륭했는데 우유 자체의 단맛이 정말 뛰어났고 우유의 단맛과 커피의 향이 어우러져서 마지막에는 밀크티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마무리했다.


뒤이어 나온 친구의 커피 역시 정말 맛있게 마셨으며, 서로 감탄을 연발하며 총 4잔의 커피 모두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그 여운을 조금 더 즐기다가 계산하고 나가기 직전에 바리스타에게 질문을 했다.



"안녕하세요, 커피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일부러 찾아온 보람이 있네요!"


"고마워요, 이제 이 커피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맛있게 마셔주니 기분이 좋네요"


"사실은 대만에서 스페셜티 카페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혹시 추천해줄 만한 곳이 있을까요?"


"물론이죠! 금방 적어드릴게요. 좋은 카페가 많답니다."



고맙게도 카페 여러 곳을 추천해주었는데, 모든 곳이 만족스러웠다.


나가기 직전까지 커피의 여운이 입 안에서 춤을 춘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manall/28 (대만을 좋아하는 이유)>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manall/29 (커피의 단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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