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Aug 29. 2021

하고 싶다는 그 일, 좋아하는 거 맞아요?

세 번째 이직 일기

2021년 7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세 번째 이직을 준비하며 쓴 일기를 공개합니다.

혹시 채용 담당자가 볼까 봐 숨겨두었던 6개월 간의 기록을 이제야 꺼냅니다.

2021년 7월 12일 <하고 싶다는 그 일, 좋아하는 거 맞아요?>
2021년 7월 30일 <꼭꼭 숨은 내 키워드 찾기>
2021년 8월 6일 <면접에 합격했는데 왜 기쁘지 않지?>
2
021년 8월 12일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다름아닌 용기>
2
021년 8월 19일 <제자리 걸음과 도움닫기 사이에서>
2
021년 8월 20일 <불안과 조급의 쳇바퀴를 타고 노는 법>




2021년 7월 12일



/

왜 스타트업에

가고 싶을까


스타트업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3~4년쯤 전부터였다. 대기업에서 경력이 쌓이고 일이란 게 뭔지 대충 감을 잡아갈 때였다. 앞으로 1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혔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였다. 웬만큼 일도 손에 익고 회사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도 알겠는데 재미가 없었다. '누가 회사를 재미로 다녀? 월급 주니까 참고 다니는 거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나 또한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왔다. 회사는 취미로 다닌다는 글을 브런치에 올려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커리어 코칭 전 정리한 [스타트업] vs [대기업] 비교


퇴근 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발전되면서 [재미없는 회사][생기 넘치는 퇴근 후 일상]의 괴리가 더 심해졌다. 나도 몰랐던 용기와 열정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회사에서 영혼을 최대한 숨기며 일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당장 전업 작가나 프리랜서가 될 만큼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생각하고 나니 더욱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들면 습관적으로 이직 앱을 켜서 스타트업 채용 공고를 본다. 그날도 그랬다. 평소처럼 심드렁하게 채용 공고를 손가락으로 슥슥 넘기다가 갑자기 어떤 '느낌'이 왔다. 네이버 검색창에 관심 있던 스타트업을 검색해서 홈페이지의 채용 공고를 눌렀다. 어? 마치 공고가 떴잖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마케팅 직무 채용 공고를 보고 부리나케 반차를 썼다. 서재 책상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6시간을 내리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그리고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런 경험을 일 년에 한두 번 해왔다. 그러다 지쳐있을 때, 회사 선배의 추천으로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대기업 유통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 좁은 시장 안에서 돌고 돌며 이직을 많이 한다. 옆자리 동료도, 뒷자리 동료도 안면이 있는 익숙한 새 회사였다. 이직을 한 이후에도 스타트업 공고가 뜰 때마다 지원하곤 했다. 결과가 좋으면 조건이 안 맞았고, 꼭 가고 싶은 곳은 잘 되지 않았다.


쓰린 마음을 달래며 멍하니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스타트업 이직 지원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이것도 알고리즘의 영향이겠지. 전문가의 시선에서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싶었다. 스타트업 이직이 정말 나에게 좋은 선택인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사전 설문을 제출하고 또다시 기다렸다. 이직 지원 프로그램도 합격, 불합격이 있다니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

커리어 상담에

합격 했다


며칠 후 이력서가 통과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1:1 온라인 커리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에게 주어진 20분을 잘 활용하고 싶어서 어떤 질문을 할지 미리 정리해두었다.


** 사전 설문에 기록한 내용 중 일부

2019년 11월부터 개인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프로그램 기획, 홍보, 운영, 정산, 기록물 발행에 이르는 전체 흐름 경험하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몰입해서 탐구했습니다.

1년 반 동안 진행했던 여러 갈래의 프로젝트를 돌아보니 각각의 점처럼 보이던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티(tea) 워크숍, 독서모임, 글쓰기를 매개로  <진짜 나를 탐구하는 어른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었어요. 저라는 사람을 플랫폼으로 만들고 제가 만드는 가치에 동의하는 어른들을 모아 서로를 연결했습니다.

함께 모여서, '나는 누구이고, 이 사회는 어디이고, 우리는 함께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시간은 단순히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글을 쓰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신뢰할 만한 동료를 찾을 수 있도록, 내면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꺼내 보일 수 있도록,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대입시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시대의 새로운 어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장(place)을 만들고, 규칙을 함께 만들고, 에너지와 분위기를 나눴습니다.

퇴근하고 새벽까지 독서노트를 만들고, 함께 공부할 자료를 작성하고, 커뮤니티에서 나눈 대화를 매거진으로 기록하며 생각했습니다. '왜 이것은 일이 될 수 없을까?' '돈이 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이 돈이 되는 것 아닌가?' 하고요. 제가 가진 에너지를 몰입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타트업 취업 플랫폼을 찾다가 조인스타트업을 알게 되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좋아하는 게 맞아요?


소비자로서 좋아하는 마음과 생산자로서 좋아하는 마음은 달라요. 멋진 호텔을 이용하면서 '호텔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호텔 직원의 일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족스럽게 이용하는 것과 그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인 거죠.

 

커리어 상담이 끝나고 코치님의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계속 소비자였을 수도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커뮤니티 '호스트' 역할을 했던 것을 생산자라고 여겼고, 좋은 피드백을 수익화 가능성으로 인식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호스트 또한 커뮤니티 서비스 입장에서는 소비자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게 맞을까? 안 돼도 될 때까지 밀어붙일 만큼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 혼란스러워졌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뭘까?

스타트업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커리어 상담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돈'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기해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일'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해왔던 일 자체가 그렇게 싫었나? 생각해보면 아니다. 인정받지 못했나? 그것도 아니다. 어쩌면 내가 몇 년 동안이나 망설였던 이유는 이 일을 버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졌다.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업무를 확장할 수는 없을까? 나는 왜 커뮤니티 서비스 기업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추적해보았다.


이 욕구 흐름을 보면 결국 나는 영향력을 확장하고, 콘텐츠를 얻고 싶은 것이다. 커뮤니티, 교육 분야의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 그 동기를 충족할 수 있는 게 맞을까?


반대로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시간을 연결하는 방법으로는 절대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걸까?



/

두 가지 길을

모두 가 보면 어떨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두 가지로 앞으로의 방향이 나뉘게 되었다.   


교육 / 커뮤니티 스타트업으로 전직 → 새로운 일을 새롭게
e커머스 스타트업에서 사이트 운영/마케팅 → 하던 일을 새롭게


둘 중에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둘 다 가보기로 했다. 가보다 보면 정말 내가 원하는 쪽과 가까운 것이 어디인지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상대 쪽에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어느 한 쪽이 나를 거절할 수도 있고, 양쪽 모두 거절할 수도 있다. 괜찮다. 모두에게 거절당하면 지금처럼 있는 자리에서 계속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영향력을 확장해나가는 방법도 있다.



'일'하는 나 vs 일 하는 '나'


일하는 사람으로 10년 가까이 살아왔으면서 일과 나에 대해서 그동안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그 일의 주체인 '나'에 대해서 앞으로 치열하게 고민해볼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5배 작은 회사로 옮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