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City Life : 男2 女2 시트콤
사소한 킬러 21화
20화에서 계속,
박서우가 조안나에게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니 말이 맞네. 아무 친구 사이라도, 일은 일, 의뢰비는 의뢰비니까."
"고롬, 고롬."
조안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죠. 곧 닥쳐올 불행은 조금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래서 말인데, 친구 사이라도 월세는 월세, 빚은 빚, 낼 거 내고, 갚을 건 갚아야겠지?”
"오잉?"
곧바로 조안나의 폰에 메시지가 날아왔어요. 거기에는 조안나의 밀린 월세와 그동안 빌려간 돈의 액수와 날짜가 상세히 적혀 있었죠.
"그동안 정이 있으니까 이자는 안 받을 게. 그럼 오늘 중에 입금해 줘. 나도 의뢰비 줄 게."
조안나, 긴급 태세 전환,
“생각해 보니까 우리 사이에 의뢰비는 필요 없는 것 같다.”
“그런가? 아무래도 그렇지? 친구사이인데.”
“당연하지.”
조안나는 박서우의 눈에 띄지 않게 잽싸게 사라졌니다. 휘리릭~
몇 시간 후
박서우는 근무시간 중에 조안나의 긴급호출을 받고 강남 모처로 달려왔습니다.
“왜 이제 와? 전화한 게 언제인데?”
조안나 특유의 호들갑.
“대한민국 공무원이 오후 3시에 갑자기 빠져나오기가 쉬운 줄 아니?”
“됐고, 저기 봐. 보이지?”
조안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캘러한과 잘 차려입은 여성이 다정하게 걸어갑니다.
“여기서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뭘 몰라? 딱 보니 바람났는데.”
“내 말은 여자가 별로 안 섹시해 보인다고. 저 정도야 나랑 비슷한 정도라고 해도.. (조안나의 같잖다는 표정을 보면서 톤다운) 그렇잖아. 명품을 걸치긴 했다만, 너무 싼 티 나고, 나보다 골반이 좀 큰가? 섹시골반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다리가 안짱다리라서 그럴 수도 있고.”
박서우는 이리저리 자기의 골반을 돌려보며 캘러한의 바람녀와 비교했습니다. 그러다가 캘러한 쪽으로 불쑥 가려했죠.
“어디가?”
조안나는 캘러한 쪽으로 다가가려는 박서우를 잡아당겼습니다.
“가까이 가야 잘 보이지. 나보다 얼마나 섹시한지.”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몰래 따라가야지! 넌 경찰이라는 게 언더커버의 기본도 몰라?”
“몰래? 왜?”
“이보세요. 박서우 양. 우리가 여기 왜 왔어? 바람피우는 현장을 잡으려는 거잖아.”
“그거 잡아서, 어쩔 건데?”
“그거야.. 일단 딱 잡고 나서.. 잠깐 움직인다. 따라가자.”
박서우는 내키진 않지만 조안나가 시키는 대로 몰래 둘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곧 캘러한과 바람녀는 고급 맞춤 양복점 앞을 기웃거리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길 왜 들어가지? 호텔에 갈 줄 알았는데.”
조안나가 갸웃. 박서우는 조금 짜증.
“아주 캘러한 바람피우라고 고사를 지내지? 너 은근 바람피우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아니, 은근히 아니라 노골적으로 바래.”
“그건 또 왜?”
“네가 아까우니까.”
“어이구 그러셔?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땡이가 뭐 아깝다고. 살아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써야지.”
“그래도 쓸 데를 봐 가며 써야지 아무 데나 쓰냐? 어디서 뭐 하다 온 지도 알 수 없는 저런 인간하고 연애하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고 그래?”
“걱정은.. 너 요즘 걱정이 늘었어.”
그러던 중 캘러한과 바람녀가 양복점에서 나왔습니다.
“나온다! 어, 저, 저것 봐라. 저 인간, 정말 빼 입었는데.”
조안나의 말이 맞았습니다. 양복점에서 나온 캘러한은 차콜그레이 슈트로 갈아입고 있었죠.
“저 인간이 제 돈 주고 샀을 리는 없고, 여자가 해준 거네. 이거 보니 여자한테 용돈도 타 쓰고, 완전 제비였어! 재수 없고 돈만 밝히는 치사한 왕제비!”
확실히 수상합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에게 새 옷을 선물하는 게 예삿일은 아니었죠.
“또 간다. 이번에는 어디로?”
이때 여자가 캘러한의 팔짱을 가볍게 꼈습니다. 자연스럽네요. 조안나의 눈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불똥이 튀었습니다. (왜 또 네가? 박서우는 가만있는데)
“저게 팔짱을?”
“말은 바로 해야지. 저건 여자가 낀 거잖아.”
“저 인간이 허용해 준 거잖아.”
“그걸 뭘 허용까지…”
“야, 지금 저 인간 여자 친구가 너야? 나야? 왜 나만 흥분하는데?”
계속 남일인 것처럼 관전 평하던 박서우가 조금은 정신 차렸습니다. 말은 맞으니까요. 조안나는 그녀를 위해 착실한 언더커버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니 말대로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짜증은 난다.”
캘러한과 바람녀는 잰걸음으로 또 장소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가자.”
“그만해. 됐어.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
박서우는 대인배 마냥 관심 없는 척 경찰서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사정은 무슨! 내가 아는 남자의 사정은 하나뿐이야!"
"???"
"남녀가 저렇게 빼입고 갈 데야 뻔한 거 아니야? 밥 먹고 하러 가든가, 하고 밥 먹으러 가든가.”
“넌 어떤데?”
“나야 당연히 먼저 하는 편이지. 배부르면 느낌이 영.. 잠깐,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왜 하지?”
“니 말은 저 둘이 이제 하러 간다는 거지?”
“백퍼지. 저 연넘이 호텔로 들어간다는데 내 이번 달 PT월급과 왼쪽 손모가지를 건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좋아. 따라가!”
조안나와 박서우는 은폐/엄폐하며 캘러한과 여자를 미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서우는 경찰대에서 배웠던 언더커버 기술을 이런 데 써먹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죠.
한 두 블록쯤 걸어갔을까요? 조안나의 말대로 둘은 제법 삐까번쩍한 부티끄호텔로 들어갔습니다.
“저봐. 저봐. 내 말이 맞지. 어서 들어가자! 잘못하면 방 번호 놓쳐.”
“호텔까지 따라 들어가게?”
“그럼 여기서 멈춰? 걱정 마. 호텔방 문 정도는 간단히 따고 들어갈 수 있어. 남녀가 호텔에 들어가서 옷 벗고 샤워하고 전신합체 시도할 때까지 얼마나 걸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넌 알아?"
"평균 11분.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지! 현장 포착은 타이밍이거든. 캬캬. 만약 돌입했는데 아직 옷 안 벗고 안 하고 있었다? 이러면 손잡고 얘기만 했다고 변명할 수 있잖아. 또 너무 늦어서 그 짓이 다 끝나고 샤워 중? 이래도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 거니까."
수학은 지질히 못 하면서 이런 거 하나는 기막히게 추론해서 계산합니다. 게다가 조안나는 뭐가 기분 좋은지 싱글싱글 웃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그리 좋아?”
“짜릿하잖아! 그 순간 확 덮치면 연놈들 얼굴 표정이 어떤 줄 아셈?”
“헐. 난 그만둘래. 너 혼자 실컷 보고와. 남 하는 거 보는 게 뭐 좋다고.”
“야. 지금 가면 어떡해? 내기는?”
“니가 이겼으니까 이번 달 월세 안 내도 돼.”
“그거야 기본이고, 더 없어? 야, 야, 박서우! 어디가?”
호텔을 나서는 박서우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뭐가 부족하다고 캘러한은 바람까지 피우는 걸까요?
‘돈 때문인가? 돈은 나도 많은데.. 내가 무슨 생각을. 지금 연애질에 질투나 할 때냐? 이게 다 조안나 저것 때문에. 됐어. 아무 생각 말자. 지금은 코앞의 내 일만도 힘들어.’
그래도 사귄 지 얼마 됐다고 바람을 피우는 걸까요?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에이, 관두자. 진짜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결혼할 것도 아니고.’
사실 박서우도 연애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캘러한이라는 패를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유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미인계라면 미인계. 더블타깃이라면 더블타깃!
그러나 아무리 합리화해도 기분 나쁜 건 사실입니다. 마음속에서는 캘러한에게 이렇게 따져 묻고 있었어요.
“이봐요. 캘러한 씨. 우리가 다른 이성하고는 절대 ‘하면’ 안 되는 배타적 섹스관계는 아니지만, 상도의가 있지 않나요? 나랑 섹스하고 최소한 며칠간은 자정 하는 기간이 있어야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죠.”
틀렸습니다. 이런 말로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나로는 만족 못해? 내가 안 섹시해서 그래? 골반 빵빵하고 섹시한 여자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 그럼 진작에 말하지? 나도 가슴은 제법 되고, 나머지는 현대의학의 성과를 빌어서라도 만족시켜 줄게!”
미친, 이런 말은 절대 안 됩니다. 마지막 남은 수단은 이것!
“얼마면 돼? 네 몸 전부, 털오라기 하나까지 전부 나한테 담보 맡기려면 얼마 주면 되냐고?”
슬프게도 이게 제일 잘 통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중 어떤 말도 실제로는 하지 않겠지만.
됐습니다. 남자가 캘러한 하나도 아니고, 어차피 돈만 주면 누구든 죽여준다니까 나중에 필요할 때 돈으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정리 끝! 극~복!
박서우가 미친 망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경찰서로 돌아가는 길에, 조안나는 호텔에서 캘러한이 타고 올라간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확인하고 비상계단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제아무리 빨라도 8층까지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따라잡는 건 결코 쉽지 않죠. 8층에 도착한 조안나가 헉헉대며 캘러한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 앞에 캘러한이 짠 나타났습니다.
미행은 다 틀린 거죠. 오히려 몰래 뒤따라온 것을 들켰으니 변명을 늘어놔야 할 순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캘러한이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