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한 바퀴는 1.4킬로! 세 바퀴 반을 뛰면 5킬로가 된다. 길은 좁지만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뛰는 데 불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나무가 많은 둘레길을 좋아하기에 뛸 때 기분이 좋다. 지금처럼 만물이 피어나는 봄에는 알록달록 꽃들로 눈이 더욱 호강한다. 어느새 벚꽃이 뻥튀기 터지듯 흐드러지게 피었다. 놀이터를 지나 넓은 주차장으로 나오자 어제의 경비원 아저씨가 들고나는 차량 지도를 하고 있다. 이 시간 근무 장소인가 보다. 며칠 마주치다 보니 서로 익숙해진 모양새로 인사를 한다. 앞쪽으로 중학교, 초등학교가 붙어있어서 초, 중등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중학교 1학년 교복인 회색 후드를 보면 알밤이 생각이 난다. 중학생이지만 아직은 초등티가 나는 딱 알밤이 같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야, 너 000랑 사귀지? 헐? 어떻게 알았어? 놀이터 앞에 중딩이들 대화가 귓속에 훅 들어온다.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한 바퀴를 돌아 뛰다 보니 다시 주차장이다. 경비원 아저씨가 같은 자세로 서 있다. 또 인사를 해야 하나? 그냥 지나가야 하나? 혼자서 별 걱정을 다 한다. 가까이 가면서 눈이 마주치면, 사실 안경을 안 껴서 눈이 마주쳤다고 느끼면 미소로 화답을 하자고 결정한다. 이번에는 나를 보지 않고 있어서 그냥 지나친다. 처음 출발했던 횡단보도가 얼마 안 남았다. 여기서도 나는 횡단보도 200미터 전 놀이터를 끼고 회전한다. 아파트 두 바퀴를 찍었다. 3킬로를 찍고 나면 다리가 조금 무겁지만 한 번 돌기 시작한 톱니바퀴처럼 일정한 리듬을 탄다. 이제부터는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달린다. 세 번째로 경비원 아저씨를 마주친다. 멀리서부터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 이번엔 모른 척 지나가면 안 되겠구나 필이 온다. 아저씨는 나한테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다. 속도를 조금 늦춘다.
"서울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데 참가해 보세요!"
이거였구나.
"아, 네~하하" 좀 더 확실히 웃으며 대답을 하지만 한 번 붙은 발걸음을 멈출 수 없어 죄송하지만 말꼬리를 남기고 계속 나아간다.
나를 볼 때마다 얼마나 말해주고 싶었을까? 어쩌면 아저씨는 왕년에 풀마라톤을 완주한 러너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특하게 나를 바라보고 계셨을 수도 있다. 경비원 아저씨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침 시간에 나처럼 뛰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람마다 루틴이 있을 테니 다양한 사람의 행동을 마주하게 되겠지. 그에게 나는 아침 풍경중 하나일 거다. 매일 마주치다 보니 경비원 아저씨의 이면이 궁금해져 내게 글감이 되는 것처럼 그에게도 내가 지인과 나누는 이야기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 나를 뭐라고 묘사할까? 세수도 안 하고 부스스하게 뛰는 내 모습이 이쁘진 않을 텐데, 앞으로 좀 예쁘게 하고 뛰어야 하나?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하면서 뛰다 보니 드디어 5킬로를 찍었다. 드디어 말이다. 멈추어 앱을 캡처하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안경을 다시 끼고 꽃나무를 구경하며 천천히 집까지 걷는다. 등과 목에 맺히는 땀이 기분 좋은 아침이다.
여러분, 앞으로 저를 러너라고 불러주세요!
뛴 시간만 기록/나이키 앱
미야작가 / 연은미
만화가 &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을 그릴 때나 그리지 않을 때나 삶은 계속됩니다. 먹고 자고 싸고 청소하고 지지고 볶고 일하고 사랑하며 하루가 지나갑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지만 내 눈으로, 내 몸으로 보내는 날들입니다. 까먹기 대장이라 시작한 미야일상툰, 가볍게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