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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Sep 26. 2022

남의 집 살이

엄마의 이름

열한 살, 무더운 여름방학이었다.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몇 십리 먼 곳에 사는 오촌 친척 아줌마가 찾아왔다.

“딸 없는 게 항상 아쉬웠어. 내가 아들놈만 셋이잖어.”

오촌 친척 아줌마는 나를 데리고 가서 잘 키워 학교도 보내주고 시집도 보내주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영숙아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는 걸 봐라. 궁색한 집보다 공부도, 먹는 것도 괜찮지 않겠니?”

나를 잘 부탁한다는 엄마를 뒤로 하고 친척 아줌마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눈치가 백 단인 나는 불 때서 밥하고 집안일을 거들었다. 작은 손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힘에 부쳤고 오촌 아줌마는 그것들을 어느새 당연하게 여겼다.  엄마는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다.  

외롭고 힘겨운 날들이 한 달 가까이 지나갈 때쯤 고모부 한 분이 친척 아줌마 집에 잠깐 일이 있어 들리셨다. 난 이때가 기회다 싶어 고모부 옷자락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엄마는 동생 영자를 보냈다. 영자는 그곳에서 집안일을 억척스럽게 해내며 2년을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동안 아무도 영자를 보러 가지 않았기에 집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자가 보고 싶어 몇 십리를 걸어서 찾아갔다. 동생은 집에 다녀오고 싶다고 내 뒤를 따라나섰다. 아줌마한테는 꼭 다시 온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줌마는 혹시 다시 안 올까 싶어 말끔한 옷은 주지도 않고 허름한 옷을 입혀서 보냈다. 뭐 하나라도 그냥 주기 아까워한 남보다 못한 친척이었다. 집에 온 영자도 그 집에 가지 않았다. 영자를 데려갔다고 한동안 친척 아줌마가 나를 미워했다.


열다섯 살 겨울 즈음 엄마는 동네 둘러둘러 소개받은 식당 하는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팍팍한 가정 형편에 한 입 덜면서 그렇게 벌어먹고 살라는 뜻이었다. 반항도 못하고 살이 에이는 추운 날씨에 식당에 도착하니 마침 김장하는 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배추를 리어카에 실어서 나르고 김장하는 것을 거들었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그 집 자식들은 편하게 쉬는데 나만 뼈 빠지게 일을 하는 게 억울해서 한 달도 못 되어 집에 돌아와 버렸다.


난 죽어도 남의 집 식모살이하면서는 못 살 것 같았다. 당연한 순서처럼 엄마는 영자를 그 집에 보냈다. 내 동생은 순하고 착해서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왔다. 그렇게 식당 집에도 잘 붙어 있었다. 남의 집 살이가 자기가 살아야 하는 삶이라고 받아들인 듯했다. 그 뒤로 영자는 여기저기  남의집살이를 옮겨 다니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모은 돈을 큰오빠가 빌려갔다가 홀라당 말아먹었다는 얘기를 한참 나중에 들었다. 영자는 흘러 흘러 부산으로 갔고 배를 타는 남편을 만났다.


영자가 불쌍했다. 나도 불쌍했다. 화가 났다. 왜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하지 않는 남의집살이를 해야 하는가.  왜 아들은 쌀밥을 주고 여자들은 꽁보리밥에 잡곡밥을 주는가. 

차별과 찬밥 취급받으며 자라면서  엄마에 대한 원망도 함께 커졌다.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https://brunch.co.kr/@miyatoon/20

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https://brunch.co.kr/@miyatoon/37

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https://brunch.co.kr/@miyatoon/38

4.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https://brunch.co.kr/@miyatoon/41

5. 와야국민학교

https://brunch.co.kr/@miyatoon/43

6. 뽕따러 가세

https://brunch.co.kr/@miyatoon/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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