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얼굴 없는 당신이 내게 말했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아닌
땅으로부터 떨어진 구름이고 싶다고
그때의 당신은 그랬다
어디에도 시퍼렇게 멍든 어깨 한 짝을 기댈 수 없고
어디에도 부스스한 머리카락 한 올 닿는 게 힘들다 하였다
얼굴 없는 당신이 내게 말했다
마음에 먹물 섞인 웅덩이가 괴면
빗방울도 눈송이도 되어
무너진 형태로 잠깐 땅을 딛었다가
어느새 바싹 메말라
다시 하늘을 향해 부서져 버리는
그런 구름이고 싶다고
어쩌다 땅에 낯을 맞댄
나의 파편들이 한데 모여들면
그렇게 시내로 그렇게 강으로
마침내 바다로
누군지도 모르게 스밀 수 있는
그런 구름이고 싶다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겉껍데기와 불리는 이름을 바꿔가며
머무름이라는 걸 알 리 없는
그런 구름이고 싶다고
난
구름에게 발이 생기길 바랐다
유독 단단하게 여물어 있는 땅에
당신의 두 발이 올려지기를 바랐다
당신이라는 구름에 오른발 왼발을 그려
두 발이 땅에 닿기를 염원했다
머뭇거리는
흰 뭉텅이 한 뼘 아래 당신의 두 발이
땅에 닿는 잠깐의 순간,
그것은 염원의 종착
난 주저 없이 당신의 발을 낚아챌 거야
당신의 시퍼런 어깨를 감싸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줄 테니
당신의 피부가 내게 닿을 때
난 끝도 없이 당신을 토닥여 줄 거야
더 이상 땅으로부터 떨어진
구름 따윈 되지 않겠다고
당신의 입술 사이로 굵은 눈물이 터져 나오도록
그리고선 구름의 얼굴을 만날 테지
발이 생긴 구름아!
내게 닿은 구름아!
커버이미지 출처 : 사진: Unsplash의Jake Weir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