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이 많아서 힘들었던 날들~
아들이 10년 전에 자전거 사고로 중증환자가 된 이후로 우리 부부는 시댁 모임에 가지 못했다. 아들을 품고 살아야 하는 나날들이라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 시절이라 거의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특히 명절에는 우리 부부가 아들을 돌봐야만 하는 독박 간병을 하게 된다. 간병인이나 활동보호사들이 명절을 쇠러 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위드 코로나가 되었으니 얼굴 한 번 보자며 셋째 시동생이 가족 단톡방에 군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우리만 빼고 나머지 형제들은 휴가 때나 명절 때 나름대로 서로 만나보며 지내고 있었다. 형제들의 애틋한 배려를 생각해서라도 이번에는 시간을 좀 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시댁 식구들은 함께 모이기를 좋아했다. 그분들은 모이기 한 달 전부터 싱글거리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신혼 때 시댁에 가면 온종일 웃느라 눈물까지 찔끔찔끔 흘리곤 했었다. 그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개그맨이었다. 한 마디씩 툭툭 던지면 그냥 날 것의 개그 멘트였다. 원래 웃음이 많았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명절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일주일 넘도록 뱃가죽이 아팠다. 나도 모르게 아야, 아야 소리가 나오곤 했다. 몹시 많이 웃고 나면 한동안 뱃가죽이 아픈 것인 줄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웃음을 참으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많이 웃고 난 후에 뱃가죽이 당겨서 아픈 것보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도 고통이었다.
나는 원래 웃음이 많았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낙엽이 굴러가는 걸 본다면 당연히 웃을 사람이다. 낙엽이 굴러가는 것은 웃을 일이지 않은가?
마을의 사랑채에서 우리는 밤새 깔깔거리며 놀았다. 때로는 방 안에 모두 일제히 일어나서 손뼉을 치며 유행가를 부르기도 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노래를 그 당시에 많이 들었다. 산을 두 개 넘어서 당도했던 '웃터'라는 마을에도 갔었다. 말자와 희숙이는 듀엣으로 노래를 해댔다. 마치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는 그날 밤
천년을 두고 변치 말자고 댕기 풀어 맹세한 님아
사나이 목숨 걸고 바친 사랑 모질게도 밟아놓고
그대는 지금 어디 단꿈을 꾸고 있나 야속한 님아
무너진 사랑탑아~
그 애들의 노래에 우리는 장단을 맞추어 손뼉을 치면서 깔깔거렸다.
밤새 노래하고 떠들고 웃어댔다. 마을 사람들은 습격대같이 몰려와서 노는 우리들을 혼내지 않았다.
묵은 김치 훔쳐오자.
홍시 어디 있는 줄 아는데..
곶감도 가져오자.
마을 인심은 산 고개를 하나 더 넘을수록 좋았다. 산을 서너 개 넘어간 마을에서는 인절미도 들여보내 주고 동치미를 챙겨주기도 했다. 군불도 뜨끈하게 지펴주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솜이불 하나 가운데 두고 별의별 게임을 하며 웃으며 놀았다.
그렇게 웃으며 놀았던 다음 날이라도 우리 집 대문만 들어서면 일단 포커페이스가 되었다. 혹시 동생들과 약간 낄낄 대면, 아버지는 당장에 소리쳤다.
뭐가 좋아서 웃노?
웃을 일이 뭐 있노?
식사를 하다가 조용히 얘기를 해도 아버지는 우리를 혼냈다.
시끄럽다. 밥만 묵어라.
그래서 집안에서는 얘기를 도란도란해본 적도 없고 웃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때도 한창 학교 생활이 재미있고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면 웃음이 터졌다. 한 번은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얼른 대문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먼 곳까지 달려 나갔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무한정 웃었다.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집으로 되돌아올라치면 또 웃음이 나왔다. 웃음의 뿌리까지 다 뽑혀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 판이었다. 굳이 슬픈 생각도 하고 머리를 흔들어 보기도 했다. 그 웃음을 다 진정하려면 한참 걸렸다. 그렇게 웃음을 잠재운 후에야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지금도 나는 웃음이 헤프다. 사소한 것에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파안대소, 박장대소하고 나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그러다가 아주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어릴 때 맘껏 웃을 수 없었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이렇게 웃어도 되나? 하며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