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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pr 11. 2024

생각이 바뀐 너에게

라일락

 작은 야생화들도 각각의 특징은 있만 향기를 맡기엔 우리의 눈과 코는 멀리 떨어져 있다. 발가락이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코를 박고 바닥에 누울 수도 없다.

시큼하거나 고소하거나 달콤하고 촉촉한 자연의 냄새가 있으니 봄 한철 어린싹은 제철 나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코로 맡는 향기보다는 맛으로 보는 향내가 더 익숙하지도 모르겠다. 은 그래도 괜찮은 듯 키가 큰 나무에선 꽃을 내놓고  우리를 더 꽃꽂이 고개를 들어 걷게 했다. 그래서 봄이구나. 그래서 나는 이 계절을 기다렸구나!

나서지 못하고 숨어있던 마음에 찾아온 - 섬세하고 다정한 향기를 품은 손을 내밀며 - 봄은 내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껴지게 했다는 걸 말이다.


 허름한 도시의 주택가에도 벚꽃이 퍼트린 봄기운이 채 가시기 전이었다. 나이가 몇이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 돋아난 라일락이 이어받는다.

봄이 키운 풀내음이 엉키고 덥수룩해지고 있는데, 어수선한 마음을 다독이듯 꽃나무의 손길은 너무도 향기롭다. 바닥엔 민들레가 갓털을 날리고 지금은 라일락의 시간이다.


 이렇게 선명한 향기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라일락의 향기는 코안으로 들어와 내게 질문하는 듯 간지럽혔다. 방금 맡은 향기가 또 기억이 나지 않아서 치발을 들고 꽃송이에 얼굴을 갖다 댔다. 아까 전 향기는 어디로 갔는지 향기는 더 흐릿하게 느껴졌다. 단마다 일제히 지치기를 많이 해서 인지 라일락은 올해 가장 볼품이 없었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퍼지던 나무는 심하게 살을 뺀 앙상한 줄기가 다 드러났다. 그래서일까.  

나의 일상도 시시해져 버린 듯 초라해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평범하고 시시한 삶 만이 확실하게 행복한 삶이지. 시시하면 당하는 것 같지만 시시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야.


채현국 선생이 생전에 하신 말씀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이 글을 늘 가까이에 써 놓았다. 그리고 이 문장을 단어로만  해석하고 살았던 것 같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주하는 삶이 시시한 것이 아닌 것을 잊어버렸다. 부고 기사를 보기 전에는 몰랐던 분이라. 생전에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해져 강의 영상과 인터뷰 기사들을 한참 찾아보았다. 써놓은 책이 있을까 검색했지만 없었다. 책으로 남을 만한 수많은 어록이 있지만 전혀 남기지 않으셨다니 놀라웠다.

 평소에도 책을 쓰는 건 뻔뻔한 일이라고 자신을 쓰다 보면 좋게만 쓰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스로 자신의 말을 실천한 분이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글을 쓸 만큼 인생을 사셨지만 법정스님도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으로 출간하지 말아 달라 하셨다. 문득 글을 왜 쓰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다스럽고 생각이 많아 글에도 티가 났다. 말이 많으니 글 길어져 시인이 되는 건 엄두를 못 내겠다 싶었다. 동안 아무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시시한 일상을 늘어놓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글을 써왔다. 내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한 글인데 완전히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흘러넘치는 것들이 진짜 글에 되어 나온다는 문장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 문장을 보면서도 나는 그 정도로 쓰는 일에 애착이 없구나 싶었다. 쩌면 내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쓰인 글자들이 좋은지, 쓰고 고치고 쓰는 일이 체질에 맞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입이 바빠서 인 듯하다. 낯몹시 가리지만 나는 아주 친근해졌다. 바로 나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지면 말이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도 주파수가 딱 맞으면 들뜨고 좋아서 말이 넘친다.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도배가 되어 갔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지니 글쓰기 곧바로 같은 곳으로 향해 나갔다. 쓸 말이 많았으니 글감이 되어 주었지만 타인의 입장이라기보다는 내 입맛이었다. 출의 욕구에 따른 서술형 잡담 같은 것인지도 말이다.



 일곱 살 아이처럼 실컷 놀이를 하듯 나는 꽃들과 날마다 만나고 싶었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꽃을 직업으로 삼지도 않으면서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일에 빠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의 오래된 결핍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라서도 영영 그런 기회가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시골에서 나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 나에게 주어졌던 역할, 매일 주어졌던 임무, 내 손으로 치워야 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알고 있다. 어른만큼 큰 손도 아니었는데, 나는 점점 더 능숙해져 갔다. 손에 익은 기술처럼 자꾸 내 안에 것들을 꺼내 쓰다 보니 그런 것들을 남김없이 단어로 옮기고 싶은 욕구가 글이 되고 싶다고 오락가락했다. 언젠가 소설로 다 써버리고 소설이라 '제 이야기는 아닙니다'라고 소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쓰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든 나든 누구든, 내 이야기로 쓸 수 있어야 했다. 내 글엔 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들레 꽃이 장미꽃인척 할 수 없고, 장미꽃인데 동백꽃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성미 때문인지, 내가 맞다고만 하는 고집 때문일 것이다. 꽃들이 내 허락을 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쓰는 글도 누구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꽃을 피웠다. 누가 봐주지 않는다고 해서 핀 꽃이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그럭저럭 버텨왔다.  


다른 것은 쓰고 싶지 않다. 내 이야기 말고는 다른 누구의 이야기도 말이다. 내가 겪지 않은 것을 쓰는 상상만으로 짜인 완벽한 허구도 만들어낼 재능도 없지만, 온전히 쓰는 일에 매달린다면 쓰는 일은 나의 치유를 위한 도구일 거란 기대를 품고 산다. 나의 상처가 희미해지고 두려움으로 꽉 찬 죄책감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 하는 날이 온다면 글도 완성되지 않을까?


 구절절 늘어놓는다고 사연이 사라지지도 않지만, 또 밝히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이 공상으로 쓰인 글 같았다.

나의 글쓰기는 무턱대고 시작한 놀이 같았지만 치유의 과정이 사는 법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최종목적지에 다다르기까지는 다르지만 결국은 이 시점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 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나는 체험한 것만 쓴다"라는 작가의 말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이제야 다른 작가들도 나와 같은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거짓이 있을 수 없고, 내가 아닌 척 살 수 없었다.  

작가가 되기도 어렵지만 글을 쓰며 사는 삶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척하는 마음으로 들통날 것이 뻔했다. 글 말보다 더 예리. 글을 쓸수록 나의 익숙한 감정 중에 부족한 것과 약한 것부터 먼저 드러났다. 숨기고 쓰려면 감정들도  뒤로 숨었다. 점가지지 못했던 감정에 끌리는 나는 결핍이란 이유로 나를 흔들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나는 절대적인 애정을 가진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바로 자연 그리고 꽃들은 그 존재로 아름답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예민한 나, 감정적인 나, 냉소적인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쓰고 싶었다. 맥주잔이 이나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마음을 터놓고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을 내뱉는 순간 냄새처럼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분명 감정이 복잡해서 하소연을 하고 싶었는데, 감정은 그대로 있고, 사연만 쏟아내고 만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을 받고 싶었는데 말이다. 결국 사연을 노출하며 분노만 쏟아내게 한 것이다.


분노의 말은 향기가 나기보다는 썩은 냄새를 풍겼다.

분노가 모이면 터진 폭탄처럼 산이 무너져 내리고 시끄러웠다. 말로 퍼부은 분노를 연료로 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자신만 상처가 덧나게 할 뿐이었다. 내가 표현하려던 것은 분노가 아니라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전에 생긴 절망과 슬픔 같은 있는 그대로 마주한 것들이었다.

" 그래 힘들었겠다."

" 정말 충격을 받았겠네."라는 말로 위로를 받고 싶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를 모두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글로 쓰면 되니까 말이다.

그럼 나는 "어쩔 수 없지 뭐."라고 담담하게 대답하고 싶었다. 너그럽게 넘길 수 있을 만큼 나는 위로받은 샘이 이까 말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자신과 마주할 용기는 멀어져 갔다. 감정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사연이 길어지면 일기장 보다 못했다. 글을 쓴다는 건 채우기가 아니라 비우기였다. 사연은 감추고 감정만 남겨두고 싶었다.

 

사연은 감추고 우아하고 교양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나를 아는 건 나쁜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세상 억울한 사람처럼 큰 목소리로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나는 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너무 믿고 있었나 보다. 확실하지 않고 불편한 것을 싫어해서 기분이 상하면 쉽게 잊지 못했다.


 길가에 꽃을 보며 꿈을 꾼다. 꽃이 잠시 머물다 사라지듯, 이 불편한 감정도해결해 주리라고 말이다.


 동네만 산책해도 그럭저럭 살아졌다.

향기 좋은 꽃들이 피우는 향기는 더 강력해지고 있다. 앞으로 연이어 여러 가지 꽃향기를 맡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은 풀내음도 꽃향기만큼 건강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지만 라일락만큼 그윽하게 붙잡는 향기도 없는 듯싶다.


 우리 부부는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 산책했다. 작년엔 벚꽃이 만개한 길 위를 걸으며 같은 다짐을 했지만, 다시 핀 벚꽃도 이미 지고 없었다.

남편도 요즘은 꽃과 나무이름을 곧잘 외운다. 그러고 보니 나와 산책을 다니면서 들은 풍월이 3년되나보다.  봄꽃을 보는 눈도 나보다 더 깊고 예리해졌다. 가지치기를 하고 일제히 살을 뺀 나무들 사이로 라일락 꽃가지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키 큰 남편 라일락 향기를 잘 맡는다. 꽃 향을 맡는 편안한 얼굴을 보며, 가족 안에서 역할과 나 사이에 늘 투닥거리고 갈팡질팡하는 나 선을 긋고 싶어졌다.


 채현국 선생은 노년의 나이임에도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라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에 늘 갇혀 자유롭지 못한 걸, 엄마 노릇하느라 그런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었다. 실망으로 가득해진 감정들이 밖으로 나가라고 등 떠미는 것 같았다. 길가의 꽃처럼 세상 밖으로 가라고 하는 듯했다.


 다시 라일락 향기를 맡으러 홀로 나왔다. 남편과 걷던 산책로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난 길이다. 도서관 가는 길에 만난 키가 작은 라일락 나무는 꽃으로 탐스럽게 웃는다.

라일락 향기를 남몰래 맡고 나니, 앞으로 두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두 달 뒤면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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