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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pr 18. 2024

행운을 발견한 너에게

클로버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은 상대를 만났다. 자꾸 안 달라서 찾아가는 그는 바로 야생초들이다. 관심 없는 후미진 길가에  풀이 잔뜩 자란 덤불숲이 있는데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게 엉킨 작은 좋아한다. 풀멍이 딱 지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막 돋아난 이파리들이 제멋대로 뻗어나간 줄기를 따라가면 나의 꿈도 어디까지 뻗어갈지 막막하다가생생하게 상상이 되었다. 여름을 앞둔 야생의 장소에서 파릇파릇한  풀멍에 빠 나는 더 뜨거워지는 해방감을 느꼈다.

 꽃만 쫒던 나에게 흐드러지게 핀 풀숲은 침대처럼 푹 쉬고 자는 이다. 그곳에 표지판을 세워두고 찾아가 깜박 졸고 일어나면 새로워지는 기분이 좋았다.


보이는 대로 즐기는 풍경은 예쁘게 핀 꽃송이를 찾으려는 욕심도 잊어버리고 복잡한 걱정도 멈추게 했다. 야생의 풀색은 침침했던 시력도 선명하게 하고 뒤죽박죽 엉킨 우울감도 누그러뜨렸다. 아이처럼 어디로 튈지 불안하지도 않고, 바람이 흔들기는 하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내 앞에 있으니 나만 배신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았다.


얼마나 보았을까.

현실로 돌아온 듯 보이는 것들이 선명하게 구분이 되었다. 자각하는 것들은 모두 천연색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미워하거나 시기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었다.  시간은 늘 지나갔다. 초점 없이 보다가 주문을 외우듯  야생초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번뜩 정신이 들면 그제야 큰 눈으로 야생초를 하나씩 찾아본다. 꽃송이도 보이고 모습이 다른 이파리도, 막 여물어가는 열매도 보였다.

 질경이, 토끼풀, 뱀딸기, 종지나물 잎이 빽빽하게 나있다. 모두가 초록이지만 다른 모양으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확실한 특징을  보여준다. 작년에 몇 송이 없던 종지나물이 군락지가 되었고, 서로 다른 야생초들이  한 곳에서 어울려 자라는 모습이 아이들처럼 참 사랑스럽다. 하교시간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얼굴과 비슷하게 생긴 아이를 찾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고 작은 모습 그대로 충분히 멋스러운 야생초들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진을  보며 풀멍을 한다. 직접 풀 멍한 것 만 못하지만 멍 때리기는 금방 시작할 수 있으니 효과는 있다. 게다가 사진을 찍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에서 막 피어날 준비가 된 노란 괭이밥 꽃송이를 찾거나,  하나인 줄 알았던 빨간 뱀딸기가 여러 개 숨겨져 있었다.
마구 엉킨 풀숲이지만 그 안에 규칙들이 들어있다. 야생초들은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며 내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어쩌다가 사진 속에 네 잎클로버가 찍혔다는 걸 발견하기도 하는데, 즐거운 발견이기도 하고 곧 내게 올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언제나 풀 멍을 좋아하는 짝꿍은 아이들이다. 그리고 늘 멍 때리기의 승자는 아이들의 몫이다. 엄마의 무릎은 금방 쑤시고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좀처럼 풀멍의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다. 자든 아이들과 함께든 말이다.



모든 것을 멈추고 멍하니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풀멍이 알려준 침묵은 꽤 쓸모가 많았다. 침묵을 선택하면 내 머릿속도 고요해졌다. 두통이 날 때마다 입을 꾹 다물었다. 갈 곳이 있었지만, 침묵을 결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꽃이 있는 계절엔 달라진 식물발견하려다 보니, 산책은 잊어버리기 쉽다. 길을 따라 쭈욱 걷는 기분은 들지 않고, 산책 나온 강아지가 이리저리 킁킁거리듯 나도 길가를 이쪽저쪽 두리번거렸다. 그래서일까? 다른 계절보다 겨울에 하는 산책 한눈을 팔지 않고 발이 가는 대로  집중할 수 있다.

 

지난겨울,  새로움은 거의 사라졌고, 땅 위는 납작해져  어둡고 무거운 색으로 해버렸다. 뭉게구름 같던 나들은 날카로운 선만 남았고, 울창했던 화단지면을 드러내 밋밋해졌다. 

 산책하는 길 위에 풍경은 차분해졌는데, 내 머릿속은 반대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생각들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싹이 나 버렸다. 한번 올라온 새싹은 자라기만 하고 작아지지 않았다. 솟아 오른 생각이 불러온 감정들은 가지만 남은 나뭇가지처럼 날카롭 예민하게 갈래갈래 뻗으며 나를 괴롭.

작고 작은 야생초 꽃이지만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 친구에게 조언이라도 구해볼 참이었다.


 릿속이 시끄러우니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말없이 걷다 보니 본능적으로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큰 모과나무와 산수유나무가 있는 화단엔  제법 큰 토끼풀 군락지가 있다. 겨울 속에 풀멍은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 귀하다.


 얼마 전까지 눈이 소복했었지만 토끼풀 절반은 얼지 않고 아직 남아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단 시들해졌지만, 내겐 그곳이 내미는 야생의 초록 자연이 제법 괜찮은 위로였다. 깨진 벽돌 바닥을 촘촘하게 덮은 토끼풀 잎에 손바닥을 올려서, 새로운 피를 수혈받듯 초록빛 기운을 얻었다. 자연에 내 몸을 맡겨보고 싶을 정도로 손바닥은 자유로움을 빨아들였다. 손바닥을 통해 내 몸 끝도 없이 펼쳐진 자연의 신호가 전해진다고 믿었다. 초록의 힘이 온몸에 퍼지며, 개운함이 머리까지 올라가 맑아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엔 자연이 선물을 하나 더 내밀었다. 겨울바람에 잔뜩 오므린 토끼풀 잎들 중에 유독 다른 잎이 눈에 보였다. 네 잎 클로버였다. 보통은 사진으로 담기만 하지만, 오늘만큼은 욕심이 났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 그런지, 그곳이 내미는 한정판 선물을 그냥 받고 싶었다. 오래전에 어른이 되었지만, 운이 좋 아이들보다 먼저 크리스마스 선물이 받았다. 토실하게 생긴 네 잎클로버였다. 사진만 찍고 돌아섰는데, 갖고 싶었다. 결국 내 손에 들여온 클로버는 톨스토이가 그려진 책갈피에 붙여두고 책을 읽을 때마다 데리고 다닌다. 내 것이 된 클로버에게 나는 '소유'에 소중함을 배웠다.


활짝 핀 꽃처럼 네 잎을 하고 나를 빤히 본다.

'잠깐만' 같이 걷던 남편을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인지 아는 그가 이 동그래져 쳐다보는데,  나는 이 능력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키가 작아서 인지, 시력이 좋아서 인지, 자연의 전령이 알려주는지 알 수 없지만 난 가만히 앉아서가 아니라 그 곁을 지나다가 클로버와 눈이 마주친다. 뚱하게도 토끼풀밭에서 작정하고 찾을 땐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 걸어가다 클로버를 찾는'며 껄껄 웃는데, 다른 건 소질이 없지만 네 잎 클로버 찾기는 나도 신통하기만 했다. 야생화를 좇으며 꽃사진을 찍다 보니 생긴 기능일지도 모르지만,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네 잎 클로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네 잎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걷다가 한눈에 쏙 네 잎 클로버를 찾을 때면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내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잘하고 있어요.
계속하세요!


 클로버는 나씩 내 손에 이끌려 노트에 붙여진다. '참 잘했어요.'스티커를 모으듯 모으다 보면 불안한 시간도 흘러가고 계절도 바뀌어갔다. 잘하고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데 대답은 네 잎 클로버에게 듣는다. 운이 좋으면 늦은 가을에도 네 잎 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다음 클로버를 찾을 때까지는 오늘 찾은 신호를 잊지 않려고 클로버 옆에 날짜를 적어두었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지만, 소녀시절 보다 내 시간이 나지 않는다. 나 혼자 방을 가져본 적도 없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 들어간 기분은 안다. 종종 그런 시간이 내게도 오기 때문이다. 바로 아무런 일정이 없는 날이다.

치 지름길을 찾아낸 듯 속도가 난다. 자주 있지는 않지만 가장 멀리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초록의 힘을 빌린다. 네 잎 클로버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으려 말이다. 전부터 하고 싶던 계획을 다시 세운다. 용기가 없어서 숨겨둔 글을 꺼내 손을 본다.

용기는 반나절만에 사라지기도 하고, 며칠 씩 곁에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오래 붙잡을 수는 없다. 그럼 노트에 붙여둔 네 잎 클로버를 보면 된다.


지난번 네 잎 클로버를 찾고 나서 한 달만인 것 같다.

한동안 찾지 못했다. 늘 같은 산책로를 걷지만 클로버를 찾는 장소는 항상 다른 곳이다. 게다가 여름 내내 풀 깎는 기계가 다녀가고 또 잡초제가 하는 손이 많았다. 응달진 곳은 아직도 야생초의 그루터기가 선명한데, 토끼풀이 돋아날 시간이 귀했던 것이다. 칭찬받을 일이 없었던 아이처럼 클로버가 너무 반가웠다.


 겨울 내내 한 계획을 세웠다가 늦더위에 조급해져서 용기가 증발해 버렸다. 이럴 땐 저 멀리 미국에 살던 에밀리 디킨슨처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싶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펼쳐 말려둔 식물표본을 정리하거나, 며칠 전 쓴 시를 깨끗한 종이에 옮겨 적으며 단어를 고치면서 말이다.


오늘 찾은 클로버를 노트에 붙여두며 여름을 맞이한다.

클로버의 응원도 얻었고, 내편으로 만들어 볼 작정이다. 읽을 책 목록을 들고 밀린 약속을 지키듯 차례차례 쌓아 올렸다. 운이 좋게도 목록에 적어둔 책들이 서가에 다 꽂여 있었다. 또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른 일들이 들이닥치면 또 글 쓰는 시간은 멀어질 테니까 말이다. 행운이 내편이면 좋겠다.


"잘하고 있요. 계속하세요!"


 들리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  한숨 소리가 마스크 안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불행을  곳을 찾고 있었다.


 아름다운 일상을 갖고 있는 사람 사이에서 나도 풍경처럼 섞이고 싶었다. 얼굴을 때리듯 차가운 봄바람이 불더니 정신이 들었다. 전의 초록 풀 바다가 그리웠다. 혼자인 채로 바다로 향했다.


 겨울을 다 흘러 보낸 바다는 새로 돋아난 토끼풀로 초록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겨울에 익숙해버린 내 눈은 금방 초점을 잡지 못한 채 흐릿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네 잎 클로버 잎이었다. 

새로 돋아난 행운이었다.

불행은 숨길 필요가 없었다. 이미 겨울이 다 데리고 갔으니....


흠뻑 내린 비는 촉촉하기도 했지만 힘을 조절해주기도 한다. 흔들려도 되지만 쓰러지지 말라고 북돋아 주는 것 같았다. 빗물에 젖은 네 잎클로버가 눈앞에 보였다. 발아래 흙을 깊게 파고들어 단단히 딛고 서게 해주는 듯 나는 어느 때보다 당당해졌다. 내가 수집한 꽃들처럼 사진 속에서 겨울을 나고, 꽃이 피는 봄이 되면 세상밖으로 나갔다. 나에게도 급진적이면서 새로운 시간은 봄이었다. 변하고 싶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망설임을 떨쳐낼 시도는 매년 봄 야생화의 도움을 받았다. 평소에 쓰던 표지판을 치우고 다른 표지판을 세웠다. 매년 핀 봄꽃을 갱신하듯 사진을 찍고, 나의 감정을 발견하면서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고 다짐했다. 꽃은 종류가 넘치게 다가오지만 내 감정은 하나로 피어났다. 용기!


라일락 향기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날 전화를 받았다. 다시 돌아가는 장소가 정해졌다. 도시의 야생화 지도는 나를 근원으로 데리고 갔다. 뿌리가 어디인지 찾아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어두운 곳에 숨겨둔 비밀을 만났다. 아직 돋아나지 못한 나, 어린아이 인 채로 따사로운 태양을 모르는 씨앗이 남아 있었다. 다정한 태양은 어떤 것도 해치지 않고 어떤 꽃도 아프게 하지 않는다. 나에게 희망은 태양이었다. 날마다 새로 뜨는 태양, 구름 뒤에 있는 태양이야 말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가끔은 따끔따끔하게 주의를 주지만 태양만큼 나를 지지해 주는 존재는 없었다.  봄을 따라 걷다 보니 내가 흙인지 돋아난 야생초인지 나무인지 뒤엉켜버렸다. 내가 가진 보물은 네 잎클로버 같은 발견이었다. 충격적인 경험도 수치심도 모두. 촉촉이 내린 빗방울에 클로버 잎은 새로워졌다. 네 잎을 쫙 펼치고 나를 기다렸나 보다. 행운을 발견했다. 도시 야생화 지도는 네 잎클로버와 함께 기록된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고, 내가 보는 것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어서 늘 허공을 떠돌았다. 소설의 첫 문장처럼 발견을 하고 싶었다. 나의 표지판을 세우고 삶의 주도권을 갖는 날을 꿈꾸면서, 무한한 가능성이 담긴 흙을 흙이 풍기는 향내를 탐냈다. 어떤 것도 덮어버리는 표용의 아우라를 말이다. 다시 솟구치는 생명을 만들기 위해서 흙이 하는 일은 사랑이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아이는 이제 사랑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걸 안다. 언젠가 나는 흙이 될 테니까. 그리고

나의 모든 발견은 행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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