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못(안)하는 이유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공부를 도와야(시켜야x) 할지 생각해보아야겠죠.
먼저 나의 바람을 잘 들여다봅니다. 나는 왜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는지...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이미지도 떠올려보시고, 아이가 공부를 잘했을 때 나중에 갖게 될 미래의 모습도 그려봅니다.
거기에 혹시 내 욕심이 들어가 있지는 않나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가 대신 이루어줬으면 하는... 이것에 관해서라면 김미경 강사님이 강의에서 아래와 같이 시원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죠.
"어머님, 아들이 왜 한의대 가기를 원하세요?"
"어릴 때 제 꿈이었어요."
"그럼 어머님이 지금 공부해서 한의대 가세요."
"저는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 해요."
"어머님이 머리가 나쁜데 어머님 아들이 어떻게 머리 좋기를 바라세요?"
"...... (좌중 웃음)"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희망은 내려놓습니다. 그거 계속 들고 있다간 아이도 부모도 힘들어집니다.
자기 욕심이 아니라도 아이가 좋은 직업을 얻어서 안정된 삶을 꾸렸으면 하는 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대 커트라인이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까?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서 어떤 직업이 살아남고,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리고 더 분명한 건,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어요. 모두가 의대에 갈 수는 없습니다. 각자 타고난 자질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아이의 강점이 그게 아닌데 세상 기준에 좋은 직업으로 내 아이를 몰아간다고 해서 아이가 그것을 얻지도 못할뿐더러, 설령 얻는다고 한들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아이 공부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아이 스스로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어쩌면 그렇게 조각을 잘할 수 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조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 안에 이미 있는 형태를 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녀교육은 이런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정해서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을 발현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강점에 관해서는 '강점을 찾는 나만의 방법'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자아, 이제 내 마인드를 바꾸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순위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쌓는 것입니다. 관계의 중요성은 앞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부모와의 관계가 좋을수록 아이는 부모 말을 듣습니다. 시키는 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모의 말을 경청하고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의사결정에 반영한다는 뜻입니다. 이래야 아이가 헤맬 때 방향을 제시하고, 잘못될 길로 갈 때 바로잡아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안전 기지가 되어주세요. 힘들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전 기지가 있는 아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누릴 수 있지요. 우리가 이렇게 자녀 교육 고민하면서 열심히 사는 건 다 행복하자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다음에는 아이를 관찰하고, 어떤 사람인지 이해합니다. 요새 부모님들 참 많이 힘드시죠. 직장 다니고, 애도 키우고, 집안일도 하고, 짬짬이 양가 부모님께 자식 된 도리도 해야 하고... 가능하면 맡은 짐들을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만, 내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내 아이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아는 것은 부모 외에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를 믿고 지켜보는 것과 방임하는 것의 차이는 내 아이의 현재 상태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사는 도우미를 쓰고, 공부는 학원이나 과외를 붙이더라도 아이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은 내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그러므로 그 외의 것들은 최대한 아웃소싱으로 돌리고, 나 자신에게 아이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에너지를 허락해주세요).
관찰한 결과에 맞춰 아이에게 많은 체험의 기회를 주세요. 나 보기에 좋은 것 말고 아이 기질에 맞을 것 같은 것, 아이가 원하는 것을요. 저는 여태 한 사교육 중에서 단연코 잘했다고 생각되는 게 하나 있는데, 덤블링을 배우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아크로바틱 학원을 찾아 준 거였어요(너의 마음에 머물러 줄게). 단 12번의 수업으로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못하는 덤블링 기술을 익힌 아이는 자기 효능감이 상승했고, 그 뒤 초등 1, 2학년을 매우 즐겁게 보냈습니다. 저것은 아이의 기질과 니즈를 파악해서 적절한 체험의 기회를 준 대표적인 예였어요. 그리고 아이가 생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서 2년 연속 아쿠아리움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데리고 다녔던 것도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저학년 때에는 공부보다 비인지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사실 저도 이것을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아니 애초에 내가 개발해주려고 애쓰는 영역이 맞는지 고민입니다만, 아이가 단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은 가정, 그다음은 학교입니다. 학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사실 부모로부터 본받는 면이 큽니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께서 제 아이를 보고 '성품이 참 좋다'라고 칭찬하셔서 저도 모르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성품 좋은 아이로 자라나서 다행이다'라고 했더니 그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이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아이가 가진 좋은 성품 중 어떤 것은 저를, 어떤 것은 아빠를 닮았는데, 그것들은 또 제 부모님, 남편의 부모님으로부터 온 것이더라고요.
워낙 유명했고, 이효리가 얘기해서 더 유명해진 말이 있습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돼라'고요. 이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면 부모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본을 보이면 됩니다. 참고로 비인지 능력에 관해서는 이영숙 박사님, 김연수 코치님의 책을 읽어보셔도 좋아요.
아이에게 명문대 진학을 강요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공부를 등한시하면 안 되는데요. 첫 번째 글에서 쓴 것처럼 학교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학교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자기효능감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준은 학교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 수업을 무리 없이 이해하느냐, 그래서 '이 정도 공부는 내가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 들게 하느냐를 기준으로 잡고,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되겠습니다. 각종 장애에 관한 접근법은 앞에서 다루었습니다.
만약 내 아이가 학업적으로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보인다면, 이것 저것 시키지 말고 양을 확 줄이세요. 그리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익히도록 도와주세요. 무슨 학원, 어느 교재가 좋다더라... 이런 말은 제쳐두시고요. 누가 그 학원 가서 서울대에 갔다면, 그 교재 보고 의대 갔다면, 그건 그 학생에게 그 타이밍에 적합했던 것이기 때문일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지금 하는 것보다 더 줄이는 건 불안한데'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겠지요. 한번 냉정히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 상태로 계속 가는 것이 승산이 있는지...
공부 정서에 관해서 예전 글(숙제와의 전쟁) 등에서 몇 번 언급했는데요. 왜 공부 정서가 중요할까요? '사람은 무의식에 저장된 체험을 반복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실제로 인간의 감각계는 1초마다 1100만 비트의 정보를 뇌로 보내는데, 그중 16~50비트의 정보만 의식에서 처리하고, 나머지는 무의식에 저장된다고 해요. 어떤 체험이 무의식 중에 좋은 기억으로 저장되면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려고 들고, 나쁜 기억으로 저장되면 그것을 회피하려고 들지요.
저는 스스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제가 언어감각이 좋은 편이라서 영어를 익히기에 매우 유리하거든요. 근데 현재 영어 실력은 형편없어요. 저에게는 '영어=입시'로 기억되어 있고, 그 입시기간 동안의 기억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영어공부에 손이 잘 안 갑니다. 제가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어에 대한 좋은 기억부터 만드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영어가 별로 필요 없는 직업을 택해서 다행이지만 누구나 이렇게 운이 좋은 건 아니지요.
어떤 학생들은 부모의 바람대로 대학까지는 잘 갔는데 그 뒤에 미친 듯이 방황하면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떠돕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싫은 것을 억지로 참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부모님들께서 '우리 애는 의지력이 없어서...'라고 한탄하시는데요. 의지력 드립은 뇌과학적 관점에 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의지력이 강해서 잘하는 것 같으세요? 사람 의지력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다들 '공부 너무 좋아~' 이런 상태는 아니지요. 이런 애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모범생들에게도 공부보다는 노는 게 더 즐거울 거예요.
그럼에도 즐겁지 않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공부 너무 싫다'는 정서가 없기 때문이에요. 너무 힘든 목표를 강요당하고, 못하면 혼나고, 다들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고... 이런 경험이 반복해서 쌓이면 너무 싫어지겠죠.
'딱히 재밌는 건 아니지만 하려면 할 수 있고, 하다 보면 성과가 나고, 주위에서도 인정받고, 내 삶의 목표에도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이 정도 정서를 가지면 공부할 수 있습니다. 즐겁지 않은 걸 참으려면, 참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아야 하고, 참았을 때 보상이 확실해야겠죠. 그러니 내가 아이에게 뭔가를 시킬 때,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를 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의지력은 원하는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만 기능하면 충분합니다.
잠깐 덧붙이자면, 아이가 '싫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게 전부 진짜로 싫은 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저희 아이는 7세 때 사고력 수학학원을 다니다가 싫다고 그만두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것은 그만두는 게 맞았습니다. 그때 저희 애는 당시 그러한 지식을 받아들일만한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처음부터 좋아하고 잘하는 태권도 학원을 어느 날부터 가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아이의 상태를 아무리 살펴봐도 싫다고 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학원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아이가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여태까지 잘해왔는데, 어려운 품새 외우기에 들어가고 나서는 승급심사를 부담스러워하더라는 거예요.
저희 아이는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서 자신이 남들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행위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데, 과제가 점점 어려워지니까 다른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못해낼까 봐 자신감을 잃었던 거였어요. 이런 경우에는 아이에게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라고 말하면서 독려하는 게 필요합니다. 오히려 두려워했던 것을 극복함으로써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결국 그 부담을 이기고 무사히 잘 승급한 다음 국기원 심사에서 상대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자신감의 정점을 찍었지요.
독서교육에 관하여, 독서량이 많으면 문해력이 좋아지는 것은 대부분은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독서교육에 그렇게 목을 매는 것이고요. 하지만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문해력이 좋은 경우도 있어요. 지능이 높거나, 독서량이 많지는 않아도 주로 읽는 소수의 책에서 문해력을 배우는 경우가 그러하지요.
그리고 반대로 책을 많이 읽어도 문해력이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맨날 할리퀸에 꽂혀 있던 친구들 기억나시죠? 그렇게 책을 읽어대는데 그 친구들이 다 언어영역 점수가 훌륭하냐... 아닙니다. 감각적인 콘텐츠를 단지 책이라는 형태의 매체로 소비하는 경우에는 문해력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책을 많이 읽히되, 아이가 거부하면 너무 억지로 하지는 마세요. 저는 7세부터 지금까지 활자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책을 읽어댔지만 누가 읽으라고 하는 책은 못 읽습니다. '크라센의 읽기 혁명'에서도 아이 스스로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고, 한 번 고른 책을 끝까지 다 읽도록 강요하지 말라고 했어요. 책을 읽히는 행위 이전에 책에 대한 감정을 좋게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독서에 관해 추가 내용은 이전 글(도저히 이해 안 가는 내 아이 - MBTI의 S와 N)에 있습니다.
크리스천이신 부모님들을 위한 별도의 팁을 드립니다. 솔직히 크리스천이면 이 모든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책도 있듯이 일순위는 무조건 기도입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다른 노력들 아무리 기울여도 소용없고요.
아이에게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기 이전에 매일매일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지시고, 아이 안의 성령님께서 아이를 직접 가르치시도록 맡기시면 됩니다. 솔직히 저는 신앙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의문이에요. 앞에서 말씀드린 거 다 우리가 배우고 익혀서 최고의 부모가 된다 한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외부적 변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지만, 이것도 성공하기 쉽지 않지요. 반면 기도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상황까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화).
그리고 신앙교육을 일 순위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성경 읽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주일성수를 지키는 등의 행위를 통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하고 영원한 가치를 가르쳐주세요. 상황상 그런 신앙의 가르침을 주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각종 문제집에 앞서서 매일 큐티책이라도 한 장씩 풀리세요. 책 안 읽는 아이들은 성경만 매일 조금씩 읽어도 문해력이 좋아집니다.
아이의 강점이 뭔지 모를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로 여쭤보면 되지요. 강점은 결국 '내가 어떤 존재로 이 세상에 왔는가' 하는 문제인데, 내 아이를 지으신 이에게 묻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겠습니까.
많은 말씀들을 드렸는데, 저는 교육전문가는 아닙니다. 그저 아이에 대히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하고 이래저래 좌충우돌한 경험을 지닌, 한 엄마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제 얘기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취하시고 나머지는 버리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