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고, 유난히도 내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내 사람들을 아끼고 중요하게 여기는 게 좋은 거 아닌가?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내 사람만을 중요시한다는 말이기도 하다.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끔찍이도 아끼면서 그 외의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업무적으로 대하는 깍쟁이 같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조, 우리 팀, 우리 동아리 등에 열과 성의를 다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어떻게서든 소속된 사람들을 챙기고 잘 되도록 이끄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에서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꾸밀 수도 있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글 앞에서는 솔직해진다. 그리고 그 진솔한 글이 언젠가는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솔직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위에서 말한 대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엄청 티 나게 챙기는 사람이 뭐가 문제인지 잘 몰랐다. 작은 구성원조차 챙기지 못하면서 다수를 어떻게 챙긴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어떤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음대를 못 가서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곧 반장으로써 가출한 날라리 친구들을 담임선생님과 찾으러 다니기도 했고, 틈틈이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공연도 했고, 유난히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내가 찍은 오빠를 결국은 내 남자 친구로 만드는 등 지루하게 말 잘 듣고 공부만 하는 범생이 과는 아니었다.
공부 잘하는 범생이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반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날라리 친구들을 유독 챙겨서 다시 집을 나가지 않도록 구슬렸고, 숙제를 안 해서 맞지 않도록 틈틈이 도와주기도 했다. 그날도 그냥 평범하게 쉬는 시간에 숙제를 돌려보며 베끼기 바쁜 날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한 친구에게는 보여주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다 보여주면서 신모양에게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결국 노트를 보여주지 않았다. 뭔가 코드가 안 맞았던 나와 신모양은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는 그런 사이였었다.
숙제를 걷어서 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서 나는 반장으로써 정해진 시간에 숙제를 걷어서 냈고, 결국 신모 양은 숙제를 제출하지 못했던 것이 억울해서 갑자기 쉬는 시간에 나에게 책상을 세게 밀어서 내가 뒤로 넘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실 나는 싸움을 잘 못한다. 깡다구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지만 티를 냈지 않았고 싸울 일이 없었기에 그걸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내가 평소에 챙겼던 랄라리중에 대빵이 나를 대신해서 싸웠고 나는 뒤로 물러나 있게 했었다. 열정이 많고 젊은 남자 담임선생님이 평소에 아끼고 신임하던 반장인 나의 편을 들으니 신모양 입장에서는 한번 더 억울했을 것이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어찌어찌 화해를 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숙하기 짝이 없는 나였음을 고백한다.
속으로 싫어도 겉으로 잘 지내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얼굴에 마음이 다 드러나는 편이다. 지금도 포커페이스가 잘 되지 않아서 많이 노력 중이지만 고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 한번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딱 선을 긋는 깍쟁이 기질이 기본으로 깔려있기에 고민이 많았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고, 관계가 논리적인 것과 일처리보다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던지 일을 못해서가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빠서 무심코 내뱉은말 한마디에 삐지는 사람, 내가 너무 빡세서 같은 팀을 못하겠다는 사람이 생기면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목표지향적이라서 일은 너무 재미있지만 관계에서 자꾸만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이것의 실마리를 디퍼런스에서 또 풀게 되었다.나는 완전 일중독자 유형이고, 일 중심이기 때문이기에 사람의 감정이나 관계보다도 처리해야 하는 일, 성공시켜야 하는 과업이 우선시 되었던 것이다. 경주마처럼 일의 완성이 중요하다고 여기니 사람의 감정을 어루만져주지 못했고, 결국 일은 잘하지만 팀원들을 성향에 맞게 대하지 못하고 내 기준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두부처럼 말랑말랑한 사람들은 충분히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나는 어느 정도 나와 대화가 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가치관이 잘 맞지 않거나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과는 마음을 주고받지 않고, 적정선만 유지하고 가까워지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일을 잘해도 관계에서 무너지면 사람이 붙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나는 행동을 어떻게 하면 수정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 중심의 나는 바쁘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무심코 내뱉는 말투가 친절하지 않았고, 배려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을 좀 천천히 수행하더라도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을 키우려면 일단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나는 단순히 눈앞에 있는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고, 그 일을 성공하고 나면 더 큰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기에 디퍼런스 연구소에서 이런 나의 약점을 오픈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 조언도 많이 구했다. 왜냐하면 이전의 모습대로 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변화를 하긴 해야 하는데 워낙 나의 성향이 강하다 보니 쉽게 고칠 수는 없었다.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끊임없이 구하고, 관계에 대한 책도 많이 읽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내 안에 힘을 빼려고 애쓰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보다는 관계지향적인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나에대한 선입견이 생길수도 있다. 매정한 것...이러면서말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글로 나를 오픈하는것은 그만큼 약점을 고치고 싶다는것이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직도 이것을 알지 못했다면 글로 표현하지도 않았을테고, 얼마든지 가면을 쓰고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 뼘 성장하기위해 과감하게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혹시라도 내가 또 이런 약점이 들어난다면 살짝 나에게 워워해주기를. 만약 내가 이렇게 약점을 오픈하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너 같은 타입은 싫어!"라고 한다면 나는 할말이 없지만말이다.
참 글이라는것은 신기하다. 친구의 친구에서 나온 약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나의 손이 다른 글을 막 쓰고 있다. 부끄러워서 숨기고도 싶지만, 강점 뿐만 아니라 약점 또한 나의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노력하고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나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도 너는 변하지 않아!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면 정말 슬플 것 같다. 나는 수면 밑에서 엄청나게 발장구를 치면서 노력하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