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집보는 백수는 월요일이 가장 신난다. 주말 내내 복작거리던 집이 드디어 평화로워지는 월요일 오전이면 집안 모든 공기를 독차지하는 은혜를 누린다. 물론 주말을 버텨낸 집은 엉망징창이지만 청소마저 나와 함께 고생한 집을 위로하는 힐링 루틴이다.
청소광 브라이언님 처럼 oh my god, I hate people 을 외치며 구석구석 땅따먹기 하듯이 한 구역씩 점령해 나간다. 그러면서 마주치는 아이들의 개구짐과 반려인의 게으름을 눈으로 쓸어 담으면 주말의 피곤함은 사라지고 모성애마저 샘솟는 기분이다. 천성이 느긋한 사람을 다그쳐 분리수거도 시키고 설거지도 시켰는데 군말 않고 커다란 덩치를 움직거리면서 치워놓은 뒷자락에는 무뚝뚝한 반려인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표현이 묻어있다. 그리고 잊을만 하면 사방천지에서 튀어나오는 레고조각은 첫째의 동선을 따라 남겨진 그림자들이다. 주말 내내 레고를 거실 한 가득 펼쳐놨었는데 놀이 후에 아이가 직접 정리하는 바람에 꼼꼼하게 치우지 못 했다. 자기는 손이 작아서 치우는데 오래걸긴다며 도와달라고 볼맨소리를 했지만 못 들은 척 자기 일을 하게 두었는데 그래도 제법 보이는 것은 다 치운 것 보면 대견하다.
월요일엔 여지없이 늦잠이라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데워서 (아침부터) 짜글이 밥을 먹였는데도 군말없이 한 그릇 비우고 가는 아이들이 고맙다. 물론 나는 여유롭게 브런치를 해 먹을 생각이다. 요즘 쌀바게트로 만드는 샌드위치에 빠져서 온갖 치즈와 베이컨을 잔뜩 사놨다. 이제 주말 빨래를 걷어서 세탁기에 넣고 아침 설거지를 걷어서 식기세척기에 넣고 나면 아침 일과가 끝난다. 그럼 여유롭게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빵을 굽고 야채와 치즈를 잔뜩 넣은 샌드위치를 해 먹어야지.
일을 그만두고 나서 당연히 수입이 줄었기 때문에 둘째 말이 늦어서 다니던 언어치료 센터도 주1회로 줄였고 다음학기에는 첫째 방과후 수업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간식도 더 많이 해먹고 더 자주 외출을 하기 때문에 사실 지출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돈버느라 바빠서 돈을 주고 보내던 시간을 돈을 쓰면서 보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니까 아마도 저축은 물건너 갔다. 대신 더 중요한 것들을 차곡 차곡 쌓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억지로 주말에 쉬더라도 피곤에 쩔어 아이들의 표정을 읽을 줄 몰랐던 날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떠난 자리까지 살펴보고 널부러진 아이 책이 지금 쓰는 책인지 다 쓴 책인지 구분할 줄 안다.
첫째 아이는 네살 때까지 호텔에서 생일밥을 먹었다. 양가 조부모님과 함께 선물도 열어보고 생일 노래도 부르면서. 그 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모일 수 없었지만 아마 가능했다면 그 전통을 둘째까지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기억하는 최고의 생일은 잠옷을 입고 집에서 만든 못 생긴 초콜릿 케익의 촛불을 끈 일곱살 생일이다. 내가 과로로 몸이 안 좋아 쉬던 시기라서 파티장식은 커녕 케잌을 다 만들 때까지 앉아있기도 버거웠는데 케익만들기 세트를 주문해서 반죽부터 초콜릿 장식까지 제 손으로 만든 매력적인 케익이야기를 아직도 한다. 어쩌면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좋은 차를 끌고 좋은 동네로 이사하고 비싼 음식을 먹으려고 죽자고 살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영화 패밀리맨에서 잭이 큰 도시에서 일자리를 제안 받고 성공의 기로에 섰을 때 케이트가 그를 만류하면서 말했듯이. (오 마이 갓, 왜 항상 여자들은 옳은 말만 할까.)
I choose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