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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y 11. 2017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미국 유학생 와이프’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들의 복합적인 고민과 경험을 들여다보기 위해, 서로 다른 시간을 살며 각자의 진로를 준비해 온 11명을 찾아 인터뷰했다. 본인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미국에 오기 위한 준비 과정부터 현재까지의 경험에 대해 질문했다.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매일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리고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와 계획을 하고 있는지도 물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4년 가까운 시간을 ‘미국 유학생 와이프’로 살고 있는 11명을 따로 또 함께 비교 분석하면서, 동시에 관찰되는 이슈와 이를 통한 배움, 후회, 아쉬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겪어 온 이슈와 그로 인한 영향과 결과를 종합하여 10개의 인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인사이트들을 통해 각자 고군분투해온 시간의 전후좌우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대안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일을 쉰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이나 ‘다른 진로’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당장의 안정을 내려놓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 이로 인해 쉼을 결심하더라도 '사직 후의 새로운 진로'나 '원래 직업으로 복귀 후 입지' 등과 같이 추후의 불확실성을 계속적으로 염려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운 경험과 기회를 가지게 될수록 후회, 억울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줄어들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감사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늘어나게 된다.  


몇년 전 만화학원을 다닐 때 그렸던 자화상. 잃을 게 많아질수록 떠나는 결심은 어려워지는 듯 하다. 


고민과 결단


다니던 직장이나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일은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더 이상 일을 할 생각이 없는 경우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어느 정도 쉬는 시간을 가진 후 해오던 일이나 새로운 일 혹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면, 내게 휴식과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필요한지, 지금이 멈출 바로 그때인지, 그리고 지금 쉬는 것이 내게 충분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과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직장인의 삶을 중단하며 그로 인한 파급효과를 속단할 수 없는 ‘미국 유학생 와이프’의 경우, 진로에 대해 걱정할수록 고민은 더 깊어졌다. 휴직이냐 사직이냐, 그래서 돌아갈 곳이 있는지 여부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결단의 크기를 요구했다. 계속 걸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걸어가던 속도를 줄이고 멈추는 것은 아무래도 커다란 용기로 보였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이란 책을 소개하며 “휴식은 창조적 과정의 일부”라고 격려한다. 근면, 성실이라는 덕목은 따라갈 길이 앞에 있을 때에만 유효하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는 빨리 뛸 것이 아니라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멈춘다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선생의 말대로 “급한 물살에서 한번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는 그 급류에 올라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준다. 따라서 쉬는 시간이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 잠시 유보된 시간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걷는 시작이 되려면 급류를 벗어나는 단호함과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 결단력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이 있어야 하고, 가족을 이해시킬 수 있는 명분 또한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며 결심한 선택이어도,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었다. 미래는 늘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선택한 평범하지 않은 삶이 다시 자리를 잡기까지 긴 시간의 불안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지금은 박사과정을 하고 있지만 2년 동안 ‘미국 유학생 와이프’의 삶을 살았던 지현 씨는 몇 년 전의 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냥 그때는 제가 마음이 너무 불안하니까. 제가 아무것도 된 게 없으니까요. 너무 불안했어요. 시간이 가는 게 너무 불안했어요.”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여도, 같은 일에 익숙해지고 관리 업무가 늘어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는 고백도 있었다. 소연 씨에게 휴직은 조직에서 잠시 나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렇지만 같은 팀으로 복직을 하게 되면, 돌아간 후 자신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회사 안에서도 내가 간다니 내 역할을 대신할 사람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한 요소가 어느 정도 있어요.”


그리고 직장을 떠나 있는 동안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 일의 숙련도가 떨어질까 봐 마음을 놓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머무르게 되면서 하던 일을 잠시라도 이어서 할 기회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염려를 줄일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연진 씨도 그래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들이 하는 말들이 걱정이 되기는 하죠. “그렇게 해서 여기 와서 다시 일할 수 있을 것 같냐” “걱정하지 마라, 치과 의사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얘기는 하죠.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도, 여기 와서 다 까먹고 있고, 제가 오래 일했던 것도 아니고, 저도 걱정이 되는데, 부모님이 그런 말을 하면 더 걱정이 돼요.”


억울함과 감사함


해외에 오는 것이 본래 자신의 계획이 아니었던 경우, 억울함이란 감정도 무시할 수 없는 듯했다. 아무리 배우자를 위해 한 선택이었다고 하나, 해외 이주는 결국 내 삶과 진로를 바꾼다. 그리고 내 삶과 진로에 생긴 변화는 내가 적응하고 소화해야 하는 내 일이 된다. 놓아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데는, 계절이 바뀌어야 나무의 색깔이 변하 듯, 마음을 가라앉히고 관점을 바꿀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약사로 일하다 미국에 와서 다른 전공을 공부하고 있는 혜원 씨는 그러나 처음의 억울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함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한 게 억울했어요. 한국에서 그대로 살았어도도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도 괜찮았을 거잖아요. 그러나 미국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부끄러웠어요. 지금은, 미국에서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더 좋은 경험도 하고 공부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2. 진로

    3.3. 가족

    3.4. 주위 사람들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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