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진 May 15. 2017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1. 준비와 실행

일을 쉬게 되면, 새로운 진로에 대한 고민과 별개로,
일상에서의 하루하루를 좋은 시간으로 보내기 위한 계획과 고민을 하게 된다.
소속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동안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별도의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성격, 새로운 국가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경험 외에,
영어와 같은 언어 능력도 활동 범위와 정도에 영향을 준다.

하루의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주어지면서, 내가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산책을 나간다. 햇빛을 받으며 뛰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다시 에너지를 얻는다.


일상을 위한 계획과 고민


휴직이어서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든 사직 후 다음 진로를 고민하고 있든, ‘미래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도 중요하다. 소연 씨는 휴직 후의 시간을 ‘백지’에 비유했다. “직장인의 꿈이 그거잖아요, 나 잠깐 쉬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주말은 너무 짧다. 누구나 바라는 소망이니까 막상 휴직을 했을 때 되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시간을 가지니까 백지장 같은 거예요. 제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이 가장 쉬기 적절한 타이밍이고 나를 위한 ‘me’ time을 갖고 싶고 뭔가 좀 더 배우고 싶어 휴직을 결정하니까, 그냥 빈 백지인 거죠. 그래서 두 가지가 계속 공존하더라고요. 그냥 막 편하게 쉬고 싶은 거랑, 지금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생각들 있잖아요.”


회사나 학교에서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일이나 목표가 없는 장기간의 자유로운 시간은 기회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목표와 일정이 분명하지 않거나 가사와 육아로 인한 부담이 큰 경우,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은 원래 기대와 달리 평범한 하루하루를 사는 시간으로 흐를 수 있다. 심한 경우, 하영 씨처럼 원하지 않는 괴로운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나에게 ‘좋은 하루’란 시간이 아깝지 않은 하루죠. 하루 종일 나도 모르게 시간이 갔을 때. 빈틈없이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그렇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빈 시간이 당연히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느낌은 내가 쉬고 싶어서 쉬는 느낌이었는데, 여기에서는 내가 쉬고 싶지 않은데 내가 행복하게 여기서 뭔가 즐기고 싶은데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정말 우울한 거죠.” 내가 만난 11명의 사람들이 각자 만나왔던 사람들 중에도 긴 자유 시간을 끝낸 후 그 시간에 대한 평가가 제각각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쉬는 시간 자체에 아니면 새로운 경험을 한 것에 만족을 표했지만, 또 어떤 이들은 시간 낭비였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쉬는 시간이 단순히 쉬는 시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니라, 휴식하며 경험도 하는 전략적 시간이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은 것이다.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한 계획과 노력


조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활동하는 경우, 매일매일을 어떤 시간으로 만들지는 온전히 본인에게 달린 일이 된다. 내가 팀이나 조직에 속해 있으면 일과 역할을 통해 능력을 발휘하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데, 장기간 개인적인 생활만 하는 경우 내 열정을 쏟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미국에서 3년 넘게 자유 시간을 보내며 진로에 대해 고민했던 혜원 씨는 지난 시간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고민을 털어놨다. “하루하루 제가 열심히 산다고 했지만 사실 누가 푸시하는 게 없으면 나태해지잖아요. 하루하루 자는 게 의미가 없는 거예요. 오늘도 열심히 살았나? 이런 생각 때문에. 자고 일어나서 내일도 힘내서 공부해야지 이런 게 아니라, 오늘 열심히 했나? 자는 게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디 놀러 가도, 열심히 살다가 놀러 가면 보상받는 거다 하는데, 놀러 가면 놀러 가는 게 정말 여행으로서의 의미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냥 그런 하루가 아니라 ‘좋은 하루’, ‘뿌듯한 하루’로 만들기 위해서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설계와 즐거워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해 보였다. 1년이라는 시간을 특별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던 소연 씨는 매일의 새로운 경험을 수첩에 기록하고 있었다. “저는 조그만 수첩이 있는데 거기에 매일매일 하나씩 쓰거든요. 새로운 데 갔다든지 그런 거, 그냥 오늘 영어 수업 잘 들었고 뭔가 새로운 하루였다고 느끼면 좋은 하루였던 것 같아요. 되게 얇은 수첩이고 별 거 아닌데, 내가  Trader Joe’s라는 슈퍼마켓을 처음 가봤으면 그냥 슈퍼마켓이지만 Trader Joe’s 이렇게 써놔요. 그러면 뭔가 하루가 채워진 느낌이 드니까 거기서 재미를 느낀 거 같아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스포츠 심리닥터인 조너선 페이더 Jonathan Fader는 그의 책 <단단해지는 연습 Life as Sport>에서 “과정의 즐거움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라고 말한다. 그에 더해, 과정 자체를 흘려보내지 않고 온전히 즐기는 노력은 과정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일상을 사는 능력의 제한


해외에서 잠시 머무르며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생활을 하게 되면, 생활인으로서 살고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기본적인 능력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미국에서 사는 경우, 미국 시스템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지역에 따라 이동 시 운전이 필수인 경우도 있다. 이런 능력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 활동하는 범위와 정도에 제한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 약사로 일할 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하던 혜원 씨는 미국에서 언어가 불편해지니 굳이 안나가도 되는 자리는 가지 않았다고 했다. 혜원 씨와 영어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혜원 씨의 영어를 배려해줘서 천천히 말하거나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배려는 오히려 대화의 깊이와 관계의 수준을 제한할 수 있다. 영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선 영어에 집중하겠다고 계획하는 경우, 영어가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 다른 활동들을 유보하면서 불확실한 진로와 함께 영어 부족, 자신감 부족, 경험 부족에 갇힐 수도 있다. 그래서 타지에서 하루빨리 제대로 된 일상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배우고 노력하고 생각을 바꿔야 했다. 은혜 씨는 우선 독립적인 일상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에서 했었던 것처럼 자유롭게, 남편 없이 하고 싶은데, 아직 제가 은행이나 이런 데 혼자 가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스템도 잘 모르고요. 빨리 나를 자유롭게 하고 싶고, 내 생활을 빨리 찾고 싶어요.”


일상이 도전이 되는 삶은 불편하다. 미국에 온 지 1년이 채 안된 민정 씨에게 좋은 일상은 ‘자신감이 있었던 하루’와 ‘영어가 술술 잘 터진 하루’와 같은 날이었다. 늘 자신 있고 싶고 잘 해내고 싶은 보통의 사람에게 새로운 나라에서의 일상은 성취감과 좌절감을 반복적으로 안겨줬다. 하지만 이런 약자의 시간을 통과하며 사람들은 용감해졌다. 그리고 이방인의 삶을 살며 유연해지는 법을 배워갔다.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2. 진로

    3.3. 가족

    3.4. 주위 사람들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