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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y 18. 2017

3.2.1. 진로 재설정

3.2. 진로

퇴사 후의 쉬는 시간은 진로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된다. 지금까지 해온 일의 가치와 전망을 바탕으로 다음의 진로 선택을 고심하게 되고, 거주할 지역, 임신/육아와 같은 개인적인 형편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진로선택 기준으로 추가된다.

바람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한 연처럼, 직업도 시기와 상황과 장소를 잘 타야 하는 것임을 배우고 있다. © 남효진   


진로 재설정 (Career reset)


그동안 해온 일의 범위가 명확했어도 일단 직장을 그만 두면 다음에 어떤 일과 역할을 원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인터뷰에 참여한 11명 중 휴직 상태가 아니었던 9명의 경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휴직 상태에 있던 나머지 2명 역시 복직 외에 공부와 이직 등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었다. 


새로운 길에 대한 고민은 이전 직업에서 경험한 것들을 반영하여 더 나은 진로를 찾기 위한 기회가 된다. 하지만 또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경력단절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피할 수 없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S/W 엔지니어로 일하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온 후 4년 간 취업을 준비해온 진주 씨 역시 그랬다. “여기서는 영주권이 들어가면 취업 허가가 나오니까 일을 할 수 있는데, 대신 그때까지 공백이 길어지잖아요. 그 공백을 내가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이 됐어요.” 


이전과 다른 일을 찾으려 하거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관심사가 불분명한 경우, 직업을 찾기 이전에 진로의 방향을 찾는 것 자체가 고민이 된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경력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시 못할 부담감을 준다. 이전의 직업과 상관없는 새로운 진로를 찾고 있는 은혜 씨는 자신의 관심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오랫동안 흥미를 갖고 돈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길게 할 수 있는 게 정말 뭘까.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가 대학교에서 생각했던 거랑 업계에서 일하면서 괴리를 많이 느꼈는데, 그 5년이 여기 와서 또 단절이 되면서 그 시간이 저한텐 다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 일을 바탕으로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어떻게 보면 뭘 해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한 평가


새로운 길에 대한 고민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치열하고 어렵다. 새로운 나라에 왔다고 해서 새로운 길이 저절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에, 지금까지 해온 일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기본 답안이 되지만, 미래를 위해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과거의 답안이기도 하다. 더욱이, 새로운 나라에서 일을 찾고 그 일을 위해 새로운 공부까지 감행하는 경우, 그 직업의 가치, 전망과 함께 외국인으로서의 취업 가능성도 주의 깊게 검토하게 된다. 


한국에서 약사로서 일하다가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전향해서 학교에 들어간 혜원 씨는 약사의 전망에 대해 고민한 얘기를 들려줬다. “사실 지금 제일 큰 문제가 기계가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앞으로 없어질 직업 중 하나가 약사라는 얘기도 있어요. 제가 미국 약대 입시를 준비하며 정말 많은 서칭을 했는데 되게 흥미롭더라고요. 약대 교수님들은 약사의 미래가 앞으로 사람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상담이나 건강을 위한 연구로 갈 거다 얘기를 하시지만, 지금 약사가 하는 일에 비해 많은 사람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건 앞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왕 다시 시작하는 거 미래가 밝은 쪽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컴퓨터 공학과 약학을 접목해서 일을 할 수도 있고요.”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지금까지 일해 온 분야와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과 미래의 변화를 고려해 내 진로를 재조정하는 일이 됨을 알 수 있었다. S/W 엔지니어인 진주 씨도 일의 방향을 변경했다. “원래 전공이 로봇제어, 설비제어 이런 쪽이었는데 취업을 준비하며 웹 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어느 쪽으로 틀어야 취업에 유리한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웹 개발은 제게 새로운 분야인데 코딩의 기본은 같으니까, 방향을 여기서 틀게 된 거죠.”



다음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혼자만의 고민과 결심으로 밀어붙이기에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로 보였다. 혜원 씨의 경우 새로운 공부를 준비하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조차 말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가능한 길들을 찾고 좁혀가는 데는 주위 사람들의 역할이 큰 힘이 됐다.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 잘 아는 남편과 주위 사람들의 정보와 현실적인 조언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확신을 갖는 데 도움이 됐다. 무조건 새로운 분야가 아니라, 내가 관심과 열정이 있고 전망도 좋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 조언과 확신을  더해줄 수 있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경로로 보였다. 


새로운 기준


장서연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고학력 여성들은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취업을 시도하는 경우, “자녀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직업을 찾기 위해 이전 경력과 다른 새로운 분야로의 취업을 시도하는 경향이 크고, 이때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자녀양육과 직장 병행 및 ‘자신이 좋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주로 제시”한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있는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도 한국에서 처음 직업을 구할 때와 또 다른 기준과 일정을 고려하게 됐다. 자녀를 고려해야 하는 나이와 시기를 살며,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이전에 세워둔 일정과 계획을 조정하게 됐다. 육아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해 유연한 근무 시간과 근무 형태에 보다 높은 가치를 두기도 했다. 수정 씨도 임신과 육아를 준비하며 이전과 다른 선택 기준을 가지게 됐다. “저는 가족을 잘 서포트하면서 추가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수의사가 제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벌이도 나쁘지 않게 일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거든요. 일주일에 2~3일 정도 일 나가고 가족들 서포트하면서 다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미국 수의사 공부를 하는 거예요.”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2. 진로

        3.2.1. 진로 재설정        

    3.3. 가족

    3.4. 주위 사람들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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