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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16. 2024

인헌시장

가죽 재킷을 입은 마네킹 뒤로 잠든 그가 보였다 

전기난로 불빛 때문에 얼굴이 붉어 보인다


갈색 가발을 착용한 패딩이 지나가고 

야채를 실은 트럭과 빈 택시가 지나간다

택시는 계속 지나갔고 갈색 가발은 꽁초를 팔에 비벼 끈다


난로에 가까운 쪽 다리를 반대로 꼬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셔터가 내려가면 가죽 재킷을 입은 마네킹들이 그의 손에 노란색 고무장갑을 끼운다 


차곡차곡 쌓인 접시가 천장에서 내려왔고, 가죽 수선을 맡긴 아주머니는 음식이 절반 이상 남은 접시를 놓고 사라졌다

슬리퍼 차림으로 어정쩡하게 선 그는 재봉틀 사이에 솟아난 수도꼭지를 틀어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의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든다 

갈색 검정색 회색 겨자색 양피 우피 악어가죽 코트와 가죽 바지도 점점 붉은색으로 

물든다 

쪼그라든다

접시를 실은 트럭이 멈추고 빈 택시 문이 열리며 와르르 접시가 쏟아진다 


앞으로 하게 될 일에 어떤 기대도 없었다 

불면의 밤과 새벽, 졸음이 쏟아지는 낮을 지나 어둠이 오면 난로 스위치를 끄고 천천히 일어난 그는 천장 스위치를 끈다 

밖으로 나와 셔터를 내렸을 때

패딩 주머니에서 붉은 가발이 떨어져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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