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자유형.
나 요즘 수영 다녀,라고 하면 다들 같은 걸 제일 먼저 물어본다. “안 무서워?”
그렇다. 일단 이렇게 나뉘는 모양이다. 물이 무서운 사람과 아닌 사람. 그리고 수영에 대해 얘길 하자면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처음부터 물에 뜨는 사람과 아닌 사람. 수영장엔 물 공포증도 없고 물에 뜨는 사람만 올 것 같지만 나의 경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과거 전적을 비추어볼 때 나는 확실히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작은 벌레에 요란법석 기겁을 해도 희한하게 고소공포증이나 물 공포는 없다. 전망대나 출렁다리, 아래가 훤히 보이는 투명 관람차는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어릴 적 계곡에서 놀 때면 입술이 파래지고 몸을 덜덜 떨어도 어지간해선 물 밖으로 나오질 않았단다. 치킨도 라면도 몸을 반쯤 물에 담근 채 먹어야 제맛이다. 아, 그때 종이컵에 담아 먹던 라면과 카레는 정말 최고였는데. 이 어린이는 10년 후 라오스로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데 방비엥 계곡의 나무 위에서 겁 없이 다이빙을 한다. 당시 유행한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청춘>에서 본 고대로 말이다. 앞다투어 뛰어드는 외국인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처럼 훅 뛰어들면 퐁 하고 떠오를 줄 알았다. 아뿔싸. 열 길 물속은커녕 한 길 물속도 모르는 스물셋이었다. 친구들의 환호를 받으며 냅다 뛰어들었는데 어라? 물 밖이 보이질 않는다. 설상가상 왼쪽 샌들이 돌에 걸린 듯 하다. 몇 초쯤 흘렀을까, 내가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못 나오는 걸 알아챈 관광객 두 사람이 날 건져 올렸다. (중국인, 스위스인이었다. 이 와중에 이런걸 물어봤다. 선생님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았어요.) 그렇다. 나는 물에 뜨지 않았다. 인생 첫 다이빙을 하면서 머리띠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그대로 물에 뛰어들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패기 넘쳤다. 그런데도 몇 년 뒤 수영을 배우겠다고 나섰으니 처음부터 뜨지 않아도, 아찔한 흑역사가 있어도 수영! 배울 수 있다. 나를 보시라! (여러분도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많이 물어보는 게 “안 무서워?” (안무서워!) 였다면 두 번째는 “수친* 생겼어?”다. 수친이란 수영친구를 말하는데 원래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수친이고 수영장에서 만난 새 친구도 수친이다. 생겼다.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빨리. 이게 다 요란하고 귀여운 노란색 수영복 덕분이다. 자유형 연습에 한창인 어느 날 회원님 두 분이 슬쩍 내 곁에 오시더니 묻는다. (수영복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2cVa/71)
-수영복 어디 거예요? 너무 귀여워요.
-처음 보자마자 궁금했는데 조금 더 친해지면 물어보려고 했어요.
내 수영복 이야기로 말문이 트인 우리는 지금 완벽한 수친이 되었다. 일주일에 세네 번 같이 수영하고 수영이 끝나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 물론 먹고 마시는 내내 수영이야기다. 오늘 수업은 어땠는지, 새로 산 수영복과 수경은 어떤지, 유튜브에서 배운 발차기 비법은 뭔지 젖은 머리가 고슬고슬해질 때까지 수다가 마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 노란색 수영복은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복덩이가 분명하다. 어느새 전쟁 같은 샤워장도, 킥판 없는 수업도 익숙해지고 수친도 생겼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뜨고 싶었을 뿐인데 애정은 물론이요 이미 수영에 온 열정을 불사르는 중이다. 게다가 헐벗고 만나 물에서 생겨난 우정까지.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알기도 전에 서로의 나체를 먼저 본 사이랄까. 동갑이 아니어도 함께 허우적대는 동질감을 베이스로 이젠 매일 같이 수영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으니 동료애마저 생겨난다. 수영을 배운 것은 온갖 걱정이 무색하게 잘한 결정이었다. 물론 이건 무작정 덤볐으니, 일단 시작했으니 느끼는 바이지만.
자유형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일주일, 어느새 새로운 욕심이 꿈틀거린다. 욕심이라 해봐야 아직은 단순하다. 오래 떠 있으면 좋고 바닥에 발이 닿으면 성질이 난다. 발이 안 닿아야 오래 뜰 수 있으니 발을 세차게 뒤로 뻥 차 본다. 하지만 세게 찬만큼 몸이 급하게 가라앉고 급격하게 기분이 안 좋아진다. 이 악순환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25m 레인 끝에 도착한다. 그래서 방금 내가 수영을 한 거야 걸은 거야 아니면 그냥 떠서 온 거야 대체 뭐야! 할 때쯤엔 여지없이 다시 출발해야 하는데 정확히 방금의 상황이 반복된다. 한 바퀴 갔다 오긴 했는데 영 머쓱하고 더 어이없는 건 이 와중에도 숨이 찬다는 것이다. 나 참. 나는 걸은 것도 아니고 (분명 떴으니까!) 그렇다고 수영을 한 것도 아니고 (수영이라기엔 발이 자주 닿았으니까!) 둥둥 떠서 온 것도 아니다. (킥판이 없었으니까) 굳이 비슷한 생물을 떠올리자면 해마랄까. 분명 물에서 사는 친구인데 헤엄을 친다기엔 콩콩 뛰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보다 자주 뛴다. 한번 콩 뛰면 지느러미가 팔랑팔랑 열심히 펄럭이는데 얼마못가 다시 뛰거나 해초에 잠깐 기대선다.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시작! 하고 몸을 띄우면 두 다리는 곧바로 바빠지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서버린다. 좀 더 잘 될까 싶어 다시 콩! 하고 뛰어보지만 뛴 만큼 가라앉는다. 가라앉은 만큼 발차기는 거세지는데 발차기가 세면 셀수록 힘은 빠진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냐고? 어쩌긴! 해마처럼 다시 콩! 뛰던가 바로 앞에서 나처럼 숨을 고르는 언니의 해초처럼 미끌거리는 등에 살포시 기대 본다. 그리고 다시 나아가야지.
이쯤 하자니 해마한테 미안해서 찾아봤더니 실제로 해마는 수영을 잘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지해 있는 물체에 꼬리를 감아 휴식을 취하는 채로 발견될 확률이 높다고. 우리도 숨을 헐떡이며 쉬어보려다 강사님께 늘 발각되고야 만다. 이쯤 되면 해마와 나는 운명공동체가 아닌가. 어쨌든 미안하려다 말았다. 바다 해에 말 마자를 쓰는 친구가 말이야. 말 같이 생기기만 했지, 말처럼 달리지는 못한단 말이지. 이 친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이름을 지어줄 때 딱 외모만 본 게 분명하다. 이래서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까 해마한테 조금 미안하다.
나를 해마라 치고 우리 반을 멀리서 본다면 해마 집단 서식지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직접 확인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영장에 빨리 도착한 어느 날,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요란하게 몸을 풀며 레인에 들어서는데 일찌감치 수영하고 있는 언니들이 보인다. 배운 게 자유형뿐이라 자유형이 분명한데 전혀 자유로운 느낌이 아니다. 콩 뛰고 엎드려 어푸어푸 다시 콩 뛰고 발차기 시작! 다시 콩. 해마다! 해마가 분명하다! 머리에 딱 맞는 각기 다른 수모를 쓰고 있어 한층 더 동그랗고 알록달록해진 해마. 나를 발견한 해마들, 아니 언니들이 빠르게 콩콩 뛰며 다가오자 웃음이 나오려는 입을 가까스로 가리며 손을 흔들어본다. 여기 막내 해마 왔어요. 우리 반이 해마집단 서식지라는 게 분명해졌고 나도 들어가자마자 해마 대열에 합류를 할터인데 방금 전 요란하게 몸을 푼 나 자신이 떠올라 또 한 번 머쓱해진다. 얼마전부터 레인에 들어설때면 자유형 하는 나, 약간 멋있는데라는 생각이었는데 현실은 그저 알록달록 노란 수영복을 입은 해마일 뿐. 잠깐. 해마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친구들도 거의 노란색이었다. 해마도 엄연한 바다생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출발해 보지만 3월의 나는 그저 요란하고 신난 점프왕 해마일 뿐이다.
해마면 뭐 어때, 나에게는 해마 친구들이 있는 걸.
시작은 분명 적당히 뜨고 싶었을 뿐인데, 해마씩이나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