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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운선 May 06. 2024

자연이 보이는 창문을 갖고 싶다

비가 와서 좋은 날.

전에 살던 집은 바로 앞이 북한산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소리가 좋아서, 또 비 오는 풍경이 보고 싶어서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곤 했다. 집은 오래돼서 문을 닫아도 건물 어딘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것도 좋았다.


그 집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나리나 진달래가 피었다 지고 나면 어느새 아카시아 향이 집안까지 밀어닥쳤다. 때론 산에 사는 곤충들이 날아들어서 기겁을 하기도 했지만, 나뭇잎이 푸르러지다가 물들면 물드는 대로, 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좋아서 자주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이들은 비탈이어서 자전거를 탈 수 없고 집에 오가기가 힘들다고 투덜댔다. 그때마다 "새소리 들으면서 잠 깨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을 거야.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미안하기도 했다. 산동네 사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집 값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그 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지금은 이사를 왔다. 이 집에서는 문을 닫으면 비가 오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창문을 열면 빗소리뿐만 아니라 도시의 소음도 함께 들린다. 현관문을 열면 앞집 현관문이 보이는 집. 대신 집은 쾌적하고 편리한 점이 많다. 산을 보던 풍경과는 달라 아쉽지만, 아파트에는 나무나 꽃들도 꽤 심어 놓아서 종종 나무나 꽃구경을 하러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재미가 있다. 내가 앉은 책상 옆 창문으로 아파트 빌딩 숲 사이로 인왕산 끄트머리가 살짝 보이는 것도 아쉽지만, 그래도 빌딩만 보이는 게 아니어서 고맙다.


온전히 자연을 품을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까?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속에 파묻혀 있었던 옛집이 떠오른다. 온기가 느껴지던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 나를 진정시키면서도 조금 흥분시켰던 빗소리, 더 깊게 내려가던 마음이 닿았던 시간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바쁘게 살았던 시절을 함께한 집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또 창문을 열면, 현관문을 열면 자연이 가득차 보이는 집에 살 날이 있겠지. 그동안 이 집과 잘 지내보자고 이 집의 곳곳을 돌아본다. 또 다른 모습으로 그리워질 풍경을.

붉은색 의자가 있는 창가(오일 파스텔 ⓒ신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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