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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Oct 31. 2024

수자기 휘날리며

지난 9월 10일 국회에서 외교, 통일, 안보 분야 대정부 질의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내년에 부산에서 열리는 광복 80주년 국제관함식(군 통수권자가 직접 바다에 나가서 군함의 전투태세와 장병들의 군기를 검열하는 해상 사열 의식)에 일본이 참석하는지 물었다. 만약 참석한다면 욱일기와 거의 똑같은 자위함기를 달고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들어오면 대한민국 해군이 그것을 향해 경례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김 장관은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자위함기를 게양하고 입항하는 것은 국제적 관례라고 답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을 비롯해 모든 나라가 인정하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도 승인했던 것이라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그러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말은 거짓이었다. 2018년 제주에서 국제관함식이 열렸다. 물론 일본도 초청국이었으나 일본 공식 해군기가 욱일기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일출봉함에 수자기帥字旗를 게양하기로 한다. 이를 알게 된 일본은 돌연 참가를 취소한다. 수자기는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 했고 이순신은 일본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배에 수자기가 걸렸던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수자기를 이순신 장군기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전범국으로서 반성도 없이 감히 욱일기를 걸고 들어오겠다는 일본은 수자기 게양이라는 사실만으로 우리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수자기는 이순신 장군만 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 시대 각 군영에 걸었던 ‘대장기’다. 사실 2018년 일출봉함에 휘날리던 깃발은 노란 천에 검정 글씨로 장군 수帥가 쓰여있다. 그것은 어재연魚在淵(1823년~1871년) 장군의 수자기다. 조선 후기 회화를 보면 조선 수군은 검정 바탕천에 흰색 또는 빨간색 글자로 장군 수帥가 쓰인 깃발을 쓰고 있다. 아마 이순신 장군 수자기는 검정 천에 흰색이나 붉은색 글씨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수자기가 바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다. 그러나 어 장군의 수자기는 현재 미국 아나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다. 어째서 조선의 수자기가 미국까지 건너갔을까?     




1871년 신미년에 미군의 침략, 신미양요辛未洋擾가 일어난다. 조선을 개항시킬 목적으로 6월 10일에 강화도 초지진을 점령한 미군은 다음날인 6월 11일에 덕진진과 광성보까지 무너트린다. 미군은 남북전쟁에서 얻은 풍부한 전투 경험과 신형무기로 공격했다. 반면 조선의 무기는 미군이 박물관에서나 봤을 법한 불을 직접 붙여 총알을 발사하는 화승총이었다. 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350여 명의 조선 수비군 대부분이 전사했다. 이에 비해 미군은 전사자 3명, 10명이 중경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미군은 광성보 전투에서 수자기를 포함한 50개의 깃발을 탈취하고, 481개의 대포 외에 많은 화승총도 노획했다.

가로 415㎝, 세로 440㎝의 거대한 수자기 재질은 황색 삼베다. ‘帥’라는 글씨는 별도의 천을 검은색으로 염색해서 안으로 접어 바느질한 것이다. 이후 미군이 탈취해 간 수자기는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됐다. 그 이유는 1849년에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미 해군 장관에게 “전쟁 중 적의 군기를 몰수하고 보관 전시를 위해 미 해군사관학교를 관리기관으로 정한다”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결과라고 한다. 

이후 수자기는 2007년까지 137년간 후손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멍석처럼 말려 방치되어 있었다. 한국사를 전공한 미국인 토마스 듀버네이Thomas Duvernay 교수는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수자기에 대해 처음으로 반환 운동에 나선 인물로, 그가 아니었으면 수자기는 현재까지 박물관 구석에 계속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2007년 수자기가 강화 역사박물관에 ‘10년 장기 대여’라는 조건으로 돌아왔다. 조건대로라면 2017년에 대여 기간이 끝나지만 2년씩 세 번을 연장해서 올해 2024년 3월 뉴스 보도도 없이 허망하게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 해군사관학교 측은 내년부터 3년간 진행되는 '동아시아 특별전'에 어재연 장군 수자기를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협상을 재개해서 다시 돌아올지는 현재 미지수다.      

한국인의 정서로 볼 때, 수자기는 미군의 약탈품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멋대로 우리 국토를 침범한 미국이 빼앗아 간 것이니 돌려받는 것이 마땅하다. 반면에 미국은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본다. 법률용어로써 전리품은 ‘전시에, 적으로부터 압수, 억류와 동시에 소유권 취득의 효과가 발생하는 물품’이라는 뜻이다. 수자기가 전리품이라 소유권이 미국에 있고 따라서 한국에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토마스 듀버네이 교수에 따르면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얻는 것이 국제적으로 합법화된 것은 1907년 헤이그협약 이후라고 한다. 

수자기는 영구 대여 형식이든 영구 반환이든 고국의 품에 돌아와야 한다. 그 방법을 미국의 시혜에 기대하거나 일방적인 우리나라만의 논리를 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치밀한 외교적 협상이 필요하며 국민 또한, 과거의 무지와 무관심을 현세대에서 끝내야 한다. 수자기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로 수자기를 만나야 한다. 아이돌 가수가 장군 수帥가 쓰여있는 점퍼를 입고 다니고 보석 공예 작가는 수帥로 은목걸이를 판매하고 있으며 수자기는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변신 중이다. 우리 국민이 수자기를 잊지 않고 153년 전 떠났던 그곳, 강화도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안다면 미국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처럼 겁만 주면 개항하리라 생각했던 미국은 압도적 화력으로 승리했지만, 조선에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갔다. 미 해군 제독이었던 W. S. 슐리 Winfield Scott Schley는 전근대적 무기로 한 명의 탈영병 없이 악착같이 싸우던 조선군에 오히려 경의를 표했다.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는 그저 하나의 장군기가 아니다. 그 깃발에는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총알에도 화승총에 불을 붙이던 조상들의 공포와 다급함이 서려 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적의 얼굴에 흙이라도 던지며 스러지던 조선군의 용맹함이 있다. 6월의 더위에 13겹 면갑(무명을 여러 겹 겹쳐 만든 갑옷)에 불이 붙어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던 그들의 고통이 맺혀있다. 

약육강식의 요동 치던 세계정세 속에 침몰하던 조선이라는 배. 무능한 군주와 아첨배 대신들 아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음하던 백성들. 2024년 현재와 비교하면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것 같다.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는 대한민국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것이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수자기를 이 땅에 모셔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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