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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 Feb 18. 2024

어떤 어른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

직업에 대한 장래희망 말고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던 적이 있었다.

인생을 복습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어서 요즘 특히 과거와 마주하는 일이 잦은데 뭐든 글로 적어놔야 안심이 되던 시절 온갖 플랫폼에 기록을 남겨놓은 탓에 가끔씩 잊고 있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된다.

구정 연휴가 끝나는 날이었나 하루종일 어딘가에 앉아서 그렇게 발견된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들을 읽었다. 일기 마냥 남겨놓은 단상들 속에 행동하지 않는 예술가를 경계하던 감독 지망생이 보였고 이제는 기억하려 애를 써야 하는 과거의 취향과 그 시절의 취미들, 옛날에 본 영화 장면처럼 아스라한 여행 사진들이 모두 담겨있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뭐가 그렇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 느꼈는지 날 선 글들을 마구 뱉어냈던 과거의 기록 속에서 어떤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들까지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덜커덩했다.


늘 운동권, 연설가, 시위대처럼 대범한 사람들을 동경하면서 주섬주섬 해석한 세상을 글로만 노심초사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소심한 마음을 글로만 풀었었는데, 어떤 괴력에 가까운 마음으로 돈에 지지 않는 어른이 되겠다고 쓴 글이 보였다.

도대체 무엇에 얼마나 화가 나서, 분노에 휩싸여서 썼길래 욕만 없었지 랩 가사 같기도 했다. 나에 대한 다짐인지, 세상에 대한 경멸인지 모를 글을 쓰고 어쨌든 10년 남짓 지난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미래를 꿈꿀 때 돈에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내가 꿈꿨던 것이 ‘돈에 지지 않는’, ‘어른’ 두 가지였다면 ‘어른’이 되는 것 역시 실패한 것 같다. 정신이 궁핍해지는 게 두려웠던 어린 시절보다 경제적인 선택으로 삶이 가난해지는 것이 더 두려워지고 말았으니.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시시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날이 풀리는가 싶어서 갑자기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봄이 오려는 듯 따듯한 바람 하나에도 겨울이 다 갔나 싶어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러면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자. 2024년의 나는 이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을까.


형평운동을 평생 실천하며 살아오신 김장하 선생, 그분처럼 감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른이 되고 싶다거나 시대의 정신이 되겠다거나 하는 대단한 포부는 없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말씀 속 평범한 인간으로서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고민한다.

얼마 전 우연히 다녀온 강연에서의 김영하 작가도 모든 사람들이 창의적일 수는 없고 창의성은 때로는 너무나 위험해서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건 그것보다 성실함과 꾸준함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평범함, 성실함, 꾸준함 같은 말들에서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따분하고 지루한 느낌 때문에 나 역시 그 가치를 터부시 했었는데 세상을 지탱하고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라는 말에 동의되면서 퍽 강인하고 아름다운 덕목처럼 느껴진다.

봄이 오면 이대로 느리게 흐르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민첩하게 세상을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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