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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pr 21. 2024

다니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독일 대학의 단점


올 겨울은 길다. 따뜻한가 싶다가도 너무 추워서 어젯밤에는 난방을 틀어야만 했다. 그나저나 벌써 이 브런치북 연재가 6화를 맞이하다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글 6개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작심삼일이 특기였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벌써 두 배나 발전한 셈이다. 게다가 글감이 머릿속에 콰과광 하고 떠오를 때만 글을 썼던 나를 생각하면, 이렇게 꾸준히 매주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큰 변화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 페이지를 연 것만으로도 이번 주의 마무리에 성취감이 한 단계 올라간 기분이다. 하지만 꼭 브런치가 아니어도 이번 주는 정말 많은 것을 해낸(?) 한 주였다. 꽉 찬 일정 끝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났더니 너무 졸려서 책상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져 잠이 든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30대의 유학은 정말이지 체력 싸움이다. 


열심히 논문 작업을 했던 화요일 © 2024 noi


이번 주에는 논문 관련 수업이 콜로퀴움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방법 및 재료 워크숍 (Methoden- und Materialwerkstatt) 수업이었다. 논문을 쓸 때 내 주장을 뒷받침할 기존의 이론을 정하고, 연구에 사용할 방법과 재료를 정하도록 하는데, 콜로퀴움이 이론 중심이었다면 이번 워크숍은 방법과 재료 중심이었다. 또 논문 질문을 심도 있게 정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건, '이유(Why)'와 '동기(Motivation)'였다. 그저 졸업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보면 단순히 졸업 논문을 '통과'해야한다는 목적 의식이나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기 쉬운데, 이걸 한 번 되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왜 이 논문을 쓰고 싶은지, 어떤 동기여도 좋으니 한 번 심도있게 생각해 보고, 또 내가 계속 논문을 써나갈 수 있도록 나를 동기부여 해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학생들은 논문을 다 쓰고 난 후 떠날 여행이 동기부여라고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게임이라고도 했다. 역시 독일 학생들은 다 계획이 있다. 특히, 휴가에 진심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는 논문이 끝난 후, 시험이 끝난 후의 여행 같은 걸 계획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시험이 끝나면 바빴던 일상이 루즈해지면서 흥청망청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하며 쉬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 여행만큼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내게 졸업 논문이나 과제라는 건 그냥 해야하니까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지금 내게 졸업 논문은 해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이고 보상인 것 같은 대상이다. 그래도 나도 여행이라는 보상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는 졸업 즈음에 졸업 여행이라고 해서 다같이 세부로 여행을 갔었다. 그런데 독일 대학에서는 그런 게 없다. 졸업 학기가 되면 논문으로 비상이 걸릴 뿐이다. 대신 조금 비슷한 게 있다면 Exkursion라고 해서 초반에 현장 학습을 가는 게 있었다. 다같이 몇 박 몇 일로 멀리 떠나지만 단순히 여행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 답사와 보고서 발표 등이 동반되는 연수나 현장 학습에 더 가까웠다. 당시에는 독일 대학에 적응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빡세서 신청 기간인지도 모르고 지나쳐 버려서 나는 못 갔다. 아니, 어쩌면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하는 바로는 추가로 지불해야하는 비용이 있었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다 지원을 해줬다는 데 요즘은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꽤 있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Exkursion이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던 때였다. 이게 뭔지도 감이 안오는데 돈까지 내라니 이메일을 읽고도 그냥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독일 유학 예정인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Exkursion에 일단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리 보고서를 써야 하는 현장 학습이라 해도 이렇게 다같이 멀리 여행을 떠나 몇 박 몇 일을 동고동락 하고 나면 추억도 많이 만들고 서로 친밀해져서 돌아오는 건 세계 어디서나 공통인 것 같다. 학교 친구들뿐만 아니라 교수님과도 친분을 쌓기 정말 좋은 기회다. 내게는 좀 아쉬운 기억이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이미 지난 일이다.


그러고보니 한국 대학에서 흔히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하는 MT도 없는 것 같다. 대신 학교 건물이나 캠퍼스 내에서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한다. 대부분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정보성 이벤트가 많고, 함께 술을 마시며 어울릴 수 있는 소셜 이벤트도 있기는 한데 한국의 MT처럼 멀리 떠나 동고동락 하는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참여율이 들쑥날쑥하고 본인의 성향에 따라 재미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사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는 애초에 코로나 때문에 이런 이벤트도 없었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2미터의 거리를 두고 앉아 학교에 대한 안내를 들었던 하루의 이벤트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그 이벤트 이후로 거리두기 규칙이 강화되어서 오랜 기간 서로 만나지 못했다. 신입생들의 이벤트에는 재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어서 내게도 몇 번인가 기회는 있었지만 낯선 사람이 많이 모인 사교의 장을 어려워 하는 편이라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물론 독일에서는 한국과 달리 선배고 후배고 이런 개념이 없고 신입생이든 재학생이든 모두 평등하게 어울리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적극 추천한다. 


한국과 독일 대학의 엠티, 졸업 여행 문화 차이에 대해 적다보니 또 하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졸업식 문화이다. 최근에 같이 학교에서 일을 했던 친구 중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우리 학교에서 건축과 학사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서 학사를 마치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없었는지에 대해 내게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다. 각자의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다같이 모인 행사장에서 멋진 졸업 가운을 입고 모자를 쓰고 졸업장을 받고 꽃다발을 받는, 어쩌면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한국의 이 졸업식 장면이 독일에는 없다고 했다. 이 친구는 한국에서 교환 학생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졸업식 문화에 대해 들었다고 했고, 너무나 부러웠다고 했다. 물론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는 해도, 몇 년 간 열심히 공부한 끝에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인생에서 하나의 큰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인정을 받는 이 의식이 그저 허례허식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체 독일 대학은 어떻다는 걸까? 물론 독일에서도 학교마다, 또 같은 학교 안에서도 과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일단 우리나라처럼 졸업식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 건 확실해 보였다. 내 친구의 경우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고 했다. 



1) 졸업장을 집에서 우편으로 수령

2) 졸업장을 학교에 와서 직접 수령



우편으로 받을지 직접 받을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 한 장의 종이를 수령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했다. 조금 충격이었다. 적어도 우리 과는 졸업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조그마하게 축하 파티를 하는 풍습 정도는 있는 것 같았는데 (가 본 적은 없지만 이메일로 초대를 받은 적은 있음) 같은 학교인데도 건축과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았다. 이 친구의 여동생은 그나마 상황이 더 나았다고 했다. 여동생은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졸업을 했는데, 거기는 최소한 졸업생들끼리는 모여서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으니 졸업생 본인 외에는 아무도 초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애인도, 가족도 아무도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을 아무도 부를 수 없다는 사실에 이 친구의 여동생은 아주 크게 낙담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과에서 해주는 축하 파티도 학생들끼리 모여 축하하는 조촐한 규모일 뿐 외부인까지 부르는 파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갑자기 한국 대학에서 가졌던 졸업식의 추억이 아주 소중하게 느껴졌다.


만약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바로 독일에서 유학을 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겠다. 이거야말로 직접 다니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독일 유학의 단점이다. 아무리 내성적인 나지만 그래도 내게는 한국 대학에서 가졌던 엠티와 졸업 여행과 졸업식의 추억이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면에서는 종이 한 장 딸랑 쥐어주는 독일 대학의 졸업은 정말 차갑기 그지 없다. 아무래도 나도 혼자서라도 나만의 졸업 여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광합성 중인 나의 초록이들 © 2024 noi



한 주의 마무리


이번 주의 성공

V 모든 수업에 출석했다.

V 모든 과제를 빠지지 않고 클리어했다.

V 모든 아르바이트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V 무리해서 약속을 만들지 않고 나의 컨디션을 돌보았다.

V 아직 안 친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독일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시도를 했다.

V 고장난 서랍을 스스로 고쳤다. 

V 7일 중 4일 중 20분 가부좌 명상을 했다.

V 변기 청소를 했다. 뽀득뽀득.

V 7일 중 3일 운동을 했다.

V 식물들이 죽지 않고 잘 자라 주고 있다.



이번주의 실패

X 독일 일반 마트에서 파는 야채 만두(교자)를 사먹었는데 반도 못 먹었다. 그냥 모양만 똑같았다...

X 블로그를 계획한 만큼 쓰지 못했다.

X 골고루 균형있는 식사는 원하는 만큼 달성하지 못했다.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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