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심플라인 베트남사업팀장
"논숙자들"은 논스 멤버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인생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논스 입주하기
#1. 박민서 중앙대 블록체인 학회장: 태생부터 공부와 맞지 않았어요 인터뷰 보기
#2. 서광열 코드박스 대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하면서 훌륭한 코드를 많이 보세요 인터뷰 보기
#3. 박재원 코드박스 사업개발팀장: 남자랑 손 잡으면 대학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인터뷰 보기
#4. 이윤우 에어블록 블록체인 리서처: 하이테크 시대를 정통으로 맞아버린 문돌이의 이야기 인터뷰 보기
#5. 박상현 서강대 블록체인 학회장: 네트워크와 암호학에 관심이 많은 블록체인 코어 개발자 인터뷰 보기
#6. 박창규 스튜디오 디센트럴 에디터: 비주류일지언정 후회는 없다 인터뷰 보기
#7. 최수범 ab180 SDK 개발자: 어떤 꿈이라도 응원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 보기
#8. 송범근 디콘 파트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블록체인 컨설턴트 인터뷰 보기
#9. 이승은 Foundation X 프로젝트 매니저: 세상을 아름답게! 인터뷰 보기
#10. 정의준 한양대 국제학부 & 무용학과: 웃음과 사랑, 영감을 주는 만능 엔터테이너 인터뷰 보기
열두번째 논숙자 인터뷰에서는 베트남과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사랑하는 김한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나는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해.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크게 없는 편이야. 베트남과 바이크를 좋아하고 협상과 거래, B2B비즈니스를 좋아하고 하드웨어 장사로 돈 버는 것을 좋아해. 예를 들어 한국 화장품을 중국에 공급하는 계약을 따내고 커미션으로 1%씩 받는 것처럼 말이지. 취미로는 서핑과 승마를 하고 있어.
나는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해.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크게 없는 편이야.
내가 좀 무모한 스타일이라서 원하는 것은 해야하는 성격이야. 처음에는 2009년 학교에서 골프 수업을 듣는데 골프장이 멀어서 100만원짜리 스쿠터를 샀어. 타보니깐 재미있더라구. 2014년에 2,500만원짜리 BMW 바이크를 사기 전까지 오토바이를 50대 정도 바꿨던 한 것 같아. 100만원짜리 스쿠터를 점점 비싸게 바꿔갔지. 튜닝해서 비싸게 팔고, 협상을 잘 해서 좀 싸게 사기도 하고, 감성팔이로 비싸게 판 적도 있어. 2014년에는 BMW를 팔고 비트코인에 몰빵하기도 했어. 그때 그게 내 전재산이었거든.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마다 팔아서 크게 벌지는 못했고 조금만 벌었지.
내가 좀 무모한 스타일이라서 원하는 것은 해야하는 성격이야. 2014년에 2,500만원짜리 BMW 바이크를 사기 전까지 오토바이를 50대 정도 바꿨던 한 것 같아.
21살 때 몬태나(Montana) 주립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갔어. 어렸을 때 환경운동가가 꿈이었는데 다양한 야생동물이 자연 그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몬태나에 있더라고. 그래서 무조건 거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몬태나는 아시아인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동네였어. 스시나 커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도 많았지. 국립공원과 자연에 매력을 느껴 간 거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지.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말 타고 사슴사냥을 하더라고. 한때는 기숙사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데 친구가 덫으로 잡은 다람쥐를 들고 들어오더라고. 그리고 그 다람쥐를 구워 먹었어. 완전 와일드하지. 사실 다람쥐 정도는 약과야. 키 높이가 3m에 달하는 엘크와 야생늑대가 도로 위를 활보하는 곳이었으니 말 다 했지 뭐.
어렸을 때 환경운동가가 꿈이었는데 다양한 야생동물이 자연 그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몬태나에 있더라고. 그래서 무조건 거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아시아인을 별로 본 적이 없다보니 무지에서 나오는 차별 같은 것이 있었어. 약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제천에 파푸아뉴기니 사람이 왔다고 생각해봐. 그런 느낌이었을 수 있을 것 같아.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도 가봤는데 미국은 용광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오히려 서로 안 섞이고 따로 살아가는 샐러드 보울이랄까. 대부분 같은 인종끼리만 어울리는 것을 보며 내가 생각했던 미국의 이미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 아무래도 내가 아시아인이다보니 미국에 눌러앉아도 인싸가 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아시아 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됐지.
아시아인을 별로 본 적이 없다보니 무지에서 나오는 차별 같은 것이 있었어. 약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미국은 용광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2012-13년 군대를 다녀온 후 2014년에 남아시아(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 네팔, 히말라야)로 3개월 동안 여행을 갔어. 당시에는 미국과 군대를 다녀온 뒤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길을 잃은 상태였어.
여행 후 한국에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베트남 쌀국수 냄새가 생각나기 시작했어. 원래는 안 좋아했는데 베트남 음식 향이 계속 생각났어.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런 것 같아. 또한 마치 한국의 김치 같이 쌀국수도 종류가 엄청 많아. 30가지가 넘어.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 각기 다른 쌀국수를 먹고 고수와 향료도 많이 먹었지.
베트남 오토바이 소리도 생각이 많이 났어. 한국은 오토바이를 다른 차량들이 오토바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타면 불편해. 그런데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90%이고 차가 10%이니깐 오토바이 운전하기가 엄청 편해.
베트남의 역사도 매력적이었어. 베트남은 자주적으로 독립을 이룬 나라거든.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놔주기 싫어서 1945년 다시 군대를 이끌고 침략했어. 그런데 프랑스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에게 대패하고 물러남과 동시에 미국이 그 자리를 다시 들어갔지.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 공산당에게 과도한 적대감을 가졌기 때문이었어. 결국 베트남은 불리한 국제 정세 탓에 1945년부터 1991년까지 프랑스, 미국, 캄보디아, 중국과 연이어 전쟁을 했고 당시 베트남에 쏟아진 폭탄의 양이 세계 1, 2차 대전때 사용된 폭탄의 총합보다 많았다고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이제는 경제성장까지 이루고 있지.
나는 베트남 사람들, 음식, 역사, 자연이 좋았고 그 당시부터 경제발전 붐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라 미래도 밝아 보였어.
그래서 대학을 1학기 당겨서 졸업하고 정부의 해외 취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베트남에 1년 좀 넘게 있었어. 그때 내 인생에서 첫 해외 사업도 시도해봤어. 오토바이에 사용하는 그물방석을 파는 사업이었는데, 현지 기후패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 베트남에는 하루에 2번씩 예고없이 비가 와. 내가 제품을 팔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바로 우기가 시작되었고 결국 그물망이 젖은 다음 안 마르더라구. 처음에는 베트남이 세계 4위 오토바이 시장인데 왜 그물망이 없지 생각하며 사업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왜 없는지 알겠더라구.
결국 2016년 말쯤 되어서 내가 좋아하는 장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가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 삼성물산, LG상사 등에 지원하고 대우인터내셔널에 합격해서 약 2년 넘게 일하면서 중국 화장품, 블록체인, 철강 트레이딩 등 다양한 업무를 했어.
내 꿈은 내 우주선을 사서 우주의 광물을 싣고 항해하면서 개인무역을 하는 거야. 지구, 화성, 금성을 돌아다니면서 아비트라지를 하며 인생을 즐기는 거지. 세레니티(Serenity, 2005)라는 영화를 제일 좋아해. 밀수하는 캡틴이 우주 제국과 싸우는 것을 다룬 영화인데 그 선장처럼 살고 싶어. 대금의 지불은 비트코인으로 하면 재밌겠지? 탐험가, 사업가적 성향이 강한 것 같아.
내 꿈은 내 우주선을 사서 우주의 광물을 싣고 항해하면서 개인무역을 하는 거야. 지구, 화성, 금성을 돌아다니면서 아비트라지를 하며 인생을 즐기는 거지.
동아리나 논스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모이는 건 비슷한데 논스는 같이 사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가치가 충만한 것 같아.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일수도 있고 큐레이션을 잘해서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의 70명에 가까운 멤버들이 함께 사는데 이렇게 큰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도 신기해. 구성원간의 신뢰가 있는 것 같아.
논스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사일런트 디스코를 했을때야. 내가 첫 아이디어를 내긴 했지만 논스 덕분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만약 논스에 살지 않고 개인으로서 하려고 했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 논스 멤버들과 영세 (논스 COO), 의준이와 함께 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지. 모두 커뮤니티 덕분이었던 거지.
논스에서 많은 도움과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송이 누나는 논스 반상회 당시 진행을 잘 리드해주셔서 멋있다고 생각했어. 주연이는 현미밥과 샐러드를 통해서 논스 멤버들의 웰빙을 챙겨주는 점이 항상 고맙고 또 JJ한테서도 영감을 많이 받아. 천진한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많이 받지.
나는 논스와 베트남을 왔다갔다 하면서 베트남에서 프로젝트나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실제로 이번 8월에도 ‘한스투어’라는 것을 하는데 베트남의 각 분야 전문가들과 네트워킹도 하면서 베트남을 여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야. 현재의 베트남은 90년대 한국의 고도발전시기와 비슷하고 한국의 유교/정 문화와도 유사점이 많아서 놀라게 될 거야. 그게 내가 베트남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나는 논스와 베트남을 왔다갔다 하면서 베트남에서 프로젝트나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베트남에서도 투자 기회를 찾아봅시다!
논스의 인간 베트남, 한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으시다면?
논스는 아래 세 가지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인생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논스 입주하기
1. 도전정신(Challenging the Status Quo):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
2. 다양성(Diversity):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진심을 다해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
3. 공유(Sharing): 나의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