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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ce magazine Nov 25. 2019

논숙자 #15. 하시은 논스 공동창업자 & CEO

비주류의 안전지대, 논스의 수호자 










시은아, 성공을 측정하는 방법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는가가 있고, 다른 하나는 일 이외에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3명만 생겨도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데이.

니가 물론 돈 잘 벌고 사업 확장도 하면 좋지만 2년 사업을 했는데 마음을 주고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1명이라도 없다면 그게 잘하고 있는 건지 생각해보면 좋겠데이.











아버지의 여러 모습을 존경해온 아들이었지만, 이 주장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다. 유한한 삶을 사는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 역설적인 일이다. 하시은으로부터 시작된 공동체 nonce는 서로를 쉽게 신뢰하는 무모한 이들이 모여 연대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nonce는 다른 곳에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비주류’들이 자신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존중받는 커뮤니티다.

이 이야기는 ‘비주류의 안전지대’를 지키는 자의 잠언이다.









열다섯 번째 논숙자 인터뷰는 우리의 정신적 지주, 논스의 공동 창업가 & CEO 하시은 님과 함께 했습니다.

이더리움에 박제된 시은 (https://bit.ly/2QC1PVY)







힙합


ㅡ 하시은은 자신을 비주류로 정의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는 않을 것 같아. 좋은 교육을 받았고, 어려운 기술 문서를 읽을 수 있고,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을 누가 비주류라고 생각하겠어?


맞아. 난 여러 혜택을 받았어. 그렇지만 내가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있지. 나는 늘 이방인으로 살아왔거든. 유년기 내내 한국인을 그다지 만날 일이 없는 곳에서 자랐고, 지금도 짐을 싸는 행위를 싫어해. 너무도 자주 이주하며 살았기 때문에.


다 부모님의 직업 때문이었어. 부모님이 종교인이셨거든. 부모님 직업 때문에 정말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좋은 일만은 아니었어. 한 곳에 살게 되면 길어봐야 2년이 못됐고, 몇 달 만에 떠날 때도 있었는데 그게 나에게 엄청난 혼란을 줬어. 방황의 씨앗이었지.


유년의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누구와도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지. 실제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고. 또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쉽지 않았어.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생각하게 돼.



ㅡ 비주류 소년 하시은의 주요한 관심사는 뭐였어?


힙합. 특히 을 정말 많이 췄지. 무언가를 읽으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영감을 바탕으로 춤을 추는 걸 끊임없이 반복했던 거 같아.



ㅡ 비보잉과 책은 언뜻 연관성이 높은 것 같지 않아.


사실 비보잉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 힙합의 4대 요소라고 불리는 MC, 디제잉, 그래피티, 비보잉 다 마찬가지야. 결국 중요한 건 그 기저에 깔려있는 ‘힙합 정신’이고, 그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메시지라고 생각하거든 나는. 정신은 춤뿐만이 아니라 좋은 생각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어. 책은 곧 생각이고. 아, 수단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 줘.



ㅡ 힙합 정신이 뭐야?


기성의 체제에 도전하는 저항 정신이지. 힙합은 미국 브롱크스에 살던 가난한 흑인들이 시작했어. 그들은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걸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거야.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맨 몸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경지에 이르렀지. 이걸 사람들은 ‘힙합’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야. 본래 억압된 자들의 스토리야.


이렇게 이야기하면 ‘힙합이 빌보드를 휩쓸고,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하는 시대인데, 뭐가 비주류고 뭐가 저항의 문화라는 거야?’라고 묻고 싶지?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측면도 분명히 있어. 모든 ‘시대정신’이 그렇듯이 처음 탄생했을 때에는 아주 전복적이고, 기성의 체제에 저항적이지만, 어느 순간 그 저항이 성공을 거두면 주류가 되고 표준이 되지. 고착화되는 거야. 계몽주의, 르네상스, 한국의 민주화 운동 다 마찬가지였어.



춤출 때 시은이라는 실명보다 더 중요했던 Unseen이라는 가명



ㅡ 그래도 아직은 힙합이 충분히 고착화되지 않은, 비주류의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맞아. 주류는 내가 왜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비주류는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증명을 해야 하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 그러다 보니 온갖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해.


힙합을 봐. 다른 문화를 어마어마하게 흡수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조합하고 또 재조합하면서 전에 없는 가치들을 창조해내잖아. 여전히 유연하고 여전히 융합에 관대하다고 생각해. 흡수와 조합을 통해 기성과 다른 것을 생산하는 것이 비주류의 생존 방식이고, 나는 힙합을 통해 비주류의 생존 방식을 습득한 거야.





블록체인



ㅡ 이제 보니 nonce는 ‘하시은의 힙합’이구나!


그렇게 볼 수 있네. 블록체인 기술은 가장 강력한 기성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기술이니까. 화폐와 금융의 패권에 도전하고,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지.



ㅡ nonce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줘. nonce에 앞서 ‘블록체이너스’가 있었지? ‘대한민국 블록체이너스에게 가치에 가치를 더하는?’


맞아, 그게 우리 슬로건이었지! 하하하. 기억하고 있네. 어느 날이었어. 친구 어머니가 리플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거야. 본인이 신용대출을 받아서 리플을 샀다면서 말이지. 2017년 초였던 거 같은데, 그분은 알지도 못하는 걸 대출까지 받아서 산 거야. 이런저런 소문만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찾아보니까 한국어로 블록체인에 관해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많지가 않더라고. 블록체인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블록체인을 다루는 유튜브 방송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 기지. 그래서 나에게 비트코인을 알려주었던, 이미 블록체인에 미쳐있었던 영훈이에게 연락을 했지. “뭐해 영훈아? 잘 지내?”하고. 그게 블록체이너스의 시작이었어. (현 '스튜디오 디센트럴')



ㅡ 그리고 두 달 뒤 블록체이너스 오프라인 모임에는 300명이 모였지.


나와 영훈이는 블록체인이 좋았고 블록체인에 대해 공부하는게 즐거웠어. 즐겁게 각자 공부한 것을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에게 설명했을뿐인데, 수만 명의 사람이 반응한 거야. 심지어 우리 콘텐츠는 친절하지도 않았고, 당시 유행하던 투자 정보 채널도 아니었어. 기술과 철학에 집중하는 채널이었지. 그런 걸 보고 300명이 모인 거야. 너무 신기했어.


당시 영훈이랑 같이 광교에 있는 원룸에서 같이 살고 있을 때였는데, 파티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이 그 원룸으로 놀러오기 시작했어. 영훈이랑 둘이 있을 때도 블록체인에 대해 리서치하고, 남는 시간에 블록체인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았는데, 다른 친구들까지 더해지니까 그 즐거움이 배가되는 거야. 같이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밤 새 술을 마시고 해장을 위해 맥도널드에 갔던 어느 새벽에 우리는 그 집에 nonce라는 이름을 붙였어.




초창기의 유튜브 체널 '블록체이너스'. 시은과 영훈을 많이 닮지 않았나요?





안전지대



ㅡ 그때 찾아온 사람들도 ‘비주류’가 많았어?


꼭 그런 건 아니었어. 당시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을 때여서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찾아왔던 것 같아. 비주류에 한정되지는 않았고, 비주류성을 쇼핑하고 싶어하는 주류들도 많았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결국 오래 남는 사람들은 ‘비주류’가 많았다는 거야.



ㅡ 비주류라고 하면 하시은처럼 좋은 교육을 받고,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책을 즐겨 읽으며 몇 시간씩 춤을 출 수 있는 그런 사람들?


하하, 꼭 그런 건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유형의 ‘사회부적응자’들이 nonce에 고이기 시작했어. 외부에 알려진 nonce의 이미지는 ‘똑똑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 것 같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생각에는 정확하지 않은 정의야. ‘사회부적응자가 많다’가 더 정확해. 특히 한국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남 눈치를 많이 봐야하고,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는 한국이 안 맞는 거야.



ㅡ 꼭 ‘비주류’가 아니어도 누구나 조금씩은 세상과 ‘불화’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비단 한국에 사는 어떤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야?


맞아. 인간은 다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 하지만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니면서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접해보고 내린 결론은, 한국인이 유난히 남 *눈치를 많이 보고 산다는 거야. 좋은 점도 분명 있어. 배려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 부작용은 ‘남들 다 사는대로’ 살기가 싫거나 살 수 없는 부적응자들에게서 나타나.

*‘한국인의 눈치’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참조


사회부적응자들이 기성 사회에 속해 살아가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해. 끊임없이 충돌하고 맞서 싸워야 하니까. 또 그러다 보면 상처를 많이 받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위로해야해. 그러려면 지치기 십상인데, nonce엔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좀 나은 거야.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ㅡ 안전하다.


nonce가 ‘멋있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에게 ‘멋있음’은 부차적인 거야. 안정감을 주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는 ‘멋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보다 ‘안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이 훨씬 가치 있다고 믿고있어.





사랑



ㅡ 비보잉에 심취했던 소년은 커뮤니티 공간의 운영자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


응. 일단 nonce는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인데 나는 이런 사업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사람이야. 하드웨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글로 쓰면서 정리하고,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하는 법을 훈련해왔어. 동시에 몸을 가볍게 만드는 훈련을 꾸준히 해왔지.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했으니까. 그게 부모님의 삶의 방식이었고, 그 가르침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를 중시하게 된 거 아닐까 싶네.



ㅡ 그런데 왜 일이 이렇게 됐을까?


요구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 모든 일의 시작이 됐던 유튜브 채널 ‘블록체이너스’는 되게 소프트웨어적인 기획이었어. 근데 하다 보니 사람이 모였고, 그들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어울리기를 원했는데 그러려면 누군가 ‘살 공간’을 마련해야 했던 거야. 그 상황에서 영훈이가 먼저 큰 건물을 구해서 함께 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걸 다들 좋아했어. 비주류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연대할 수 있는 터전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봐.



ㅡ nonce를 하는게 하시은에게 맞는 길이 맞아? 하시은은 내성적인 사람이잖아. 다섯 명이 넘는 무리에 속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게다가 하드웨어를 거추장스럽다고 여기는데, 하드웨어가 중요한 비즈니스를 하는게 행복한 삶의 방식이 맞아?


네 말이 맞는 면이 있는게 나는 사실 고요한 삶을 선호해왔어. 그게 내성적이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내게 맞아.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 가서 원격으로 일하는 엔지니어의 삶. 의식주도 단촐하게. 그렇게 살지 않을까 오랫동안 생각해왔어.


그런데 나는 나의 선호보다 주변의 요구에 충실하도록 훈련되어있어. 부모님 ‘덕분에’ 또는 ‘때문에’. XXX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직업이야. 매우 불안정하고, 목표 달성도 너무나 어렵고 퇴근이란 개념도 없어. 그래서 늘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아.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내가 다가갔을 때 늘 100%의 관심을 보여주셨어. 항상, 항상 그랬지.


그게 부모로서 좋은 태도였음은 물론 종교인의 본질과도 맞았다고 봐. 기독교의 본질은 곧 사랑이니까.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다 보니 어떤 역할을 요구받으면 고민을 별로 안 하게 돼. 누군가 필요하다고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면 하는 거지.



ㅡ 아버지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너에게는 믿을 수 있는 친구 세 명이 있니?’ 내 생각에 꽤 여러 논스 멤버들이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게 될 것 같아. nonce처럼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안전한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세 명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아. 그래도 하시은은 아직 타인을 믿는 일에 회의적이야?


유년에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이별 탓에 나는 믿음을 억제했어. 너무 신뢰해버리면 나중에 나 자신에게 타격이 크니까 ‘100% 가까워지지는 않을거야’라는 생각으로 나를 보호해왔어.


그런데 요즘은 좀 겁이 나. 정말로 믿어버릴까봐. 특히 nonce를 함께 꾸려가는 nonce foundation 멤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얘들 중에는 나와는 달리 타인을 신뢰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애들이 많단 말이야. 자꾸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는데 어떻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도 가끔 내 민모습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러다가 정말 내가 좋아하고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 3명이 생기면 어떡하지?




논숙자 인터뷰 #15 하시은 편

비주류의 안전지대, 논스의 수호자


 작성 이대호

 편집 정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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