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백련강 1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정 May 24. 2023

백련강

[산문] 백련강 - No. 11 

    화덕에서 거센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숨이 막힐 듯한 공기가 콧속을 맴돌았다. 눈이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길이 스치는 뺨에는 끈적한 땀이 흘렀다. 나는 집게로 반투명하게 빛나는 쇳덩이를 집었다. 한 손에 든 망치로 쇳덩이를 내리치자, 단단한 쇠가 엿가락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탁. 탁. 망치로 쇠를 내리치는 소리가 대장간을 가득 메웠다. 멀리서부터 들려온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대장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희끗하게 삐져나온 턱수염. 두툼한 작업용 장갑을 들고 있는 탄탄한 팔뚝. 또렷한 눈동자. 아버지였다. 나는 손에 든 망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아버지를 응시했다. 

    

    왜 네가 여기서 설치고 있어. 여기 오지 말라니까.


    아버지의 성난 목소리가 대장간에 울려 퍼졌다. 나는 만들고 있던 백련강¹을 바라봤다. 고대 제철 방식. 가열한 쇳덩이를 접어서 수만 번을 두들기는 고된 작업으로, 아버지는 이 방식을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도검장이었다. 아버지의 표정은 왈칵 일그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다가와, 내가 만들고 있던 백련강을 빼앗아 화덕으로 쑤셔 넣었다. 이제 막, 선명한 결이 생기기 시작한 쇳덩이였다. 나는 얼굴을 구긴 채 아버지를 바라봤다. 단지 아버지 같은 도검장이 되고 싶을 뿐인데. 옅은 한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망치로 쇳덩이를 두들길 때의 쾌감. 생각한 대로 변하는 쇳덩이를 봤을 때의 성취감.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나는 화덕 앞에 앉아, 아버지의 작업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화덕에서 꺼내며 망치를 들었다. 이내, 아버지가 망치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화상 흉터처럼 뻗은 결들이 쇳덩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의 백련강에 나타난 선명한 결은 마치, 실을 수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 만들던 백련강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버지의 구레나룻을 타고 굵직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탕. 탕. 아버지가 둔탁한 망치질을 계속했다. 아버지는 망치질 하나로 나를 홀로 키워냈다. 가정을 지탱해 온 아버지의 널찍한 등판에는 도검장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처럼 될 수 있다면, 나도 몇 번이고 망치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도검장이 되겠다는 말을 싫어했다. 대장간에 자주 드나드는 것도 언짢아했고, 내게는 망치 잡는 법조차 알려주지 않을고 했다. 


    고된 일이다. 그렇다고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단호한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아버지가 화덕에 넣어둔 쇳덩이를 꺼냈다. 가열된 화덕 안에서 퀴퀴한 잿더미 향이 풍겼다. 나는 입 안에 오랫동안 머금고 있던 한 마디를 뱉어냈다. 


    제가 도검장이 된다는 말, 장난 같으세요?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가열된 쇳덩이를 살펴보던 아버지의 손이 멈칫했다. 아버지는 쇳덩이를 다시금 화덕에 넣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까처럼 화를 내고 있지도,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손에 낀 장갑을 벗어던지고는 손바닥을 펼쳐서 내게 내밀었다. 아버지의 손은 굳은살로 가득했다. 하루 종일 망치와 쇳덩이를 잡아서 그런지 손에 시커멓게 그을린 자국이 꼭 오래된 지도 같았다.


    물려줄 게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이런 걸…


    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가 뇌리에 박혔다. 아버지는 투박한 손을 꽉 쥐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의 뭉툭한 손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 하나 없이 여린 내 손과는 다르게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있는 거 같았다. 고개를 숙인 아버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문득 화덕 안에서 타오르는 백련강이 보였다. 선명하게 드러난 결들이 마치 아버지의 주름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깊게 팬 주름이 오늘따라 더 짙게 보였다. 나는 아버지의 주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왠지 이제야 아버지의 주름과 백련강의 결, 그 둘의 공통점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버지한테서 하얗게 타버린 잿더미 냄새가 훅, 풍겨왔다. 


1) 백련강 : 15번 이상 접쇠하여 수만 번 단련한 것으로 칼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강철.

이전 10화 초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