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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백련강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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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May 27. 2023

작가노트

[산문] 백련강 - No. END(작가의 말)

[No. 1 진눈깨비 작가노트 - 가족을 위해서]

https://brunch.co.kr/@notcorrect/24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쉽사리 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진눈깨비'는 가족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는 과정을 담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가족이라는 단어로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사실은 처음 이 글을 썼을 때는 화자가 아버지였다. 가족과 담을 쌓은 채 지낼 때의 그리움. 신당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때의 벅찬 감정. 아들의 냉담한 태도를 보고 느낀 슬픔과 미안함. 하지만 아버지라는 인물은 내게는 너무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자식은커녕 어린 조카조차 없는 내게, 아버지로 쓴 글은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선택한 새로운 화자가 '나'였다. '나'라는 인물도 수십 번의 퇴고 끝에 겨우 자리 잡힌 인물이었다. 초고일 때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언짢은 기분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인물이었지만 글을 고칠수록 점점 담담하고 애증의 감정을 품으면서도 억누르고 있는 듯한 인물로 만들어졌다. 

    진눈깨비. 눈이라고 하기에는 가볍고, 비라고 하기에는 묵직한 상태. 글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진눈깨비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날씨의 상태와 인물들 간의 감정 변화를 대조해 가면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앞에서 했던 질문을 또다시 해보고자 한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쉽사리 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가족이니까.




[No. 2 붉은 노을 작가노트 - 우리가 살리기 위해서 수의사가 된 거지, 죽이려고 된 게 아닙니다]

https://brunch.co.kr/@notcorrect/25

    글 쓸 소재를 찾아 유튜브를 돌아다니던 중, 눈에 들어온 영상이 하나 있었다. 돼지 살처분 현장. 수만 마리의 돼지를,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한순간 땅으로 모조리 매장시키는 영상이었다. 단순히 땅에 돼지를 묻는 게 아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구덩이에 널브러진 돼지들. 그런 돼지들의 몸을 휘감는 잿빛 가스. 가스를 맡은 돼지들은 그 자리에서 빳빳하게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그랬다. 그 후에 이어진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가 분리수거날에 흔히 볼 수 있는 집게 포클레인. 산 채로 굳은 돼지들을 집게 포클레인으로 마구 잡아다가 매장될 구덩이로 옮긴다. 그 과정에서 마취가 덜 된 돼지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더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두는 거로 하자. 모니터로 들여다보는 것도 소름이 돋을 정도인데, 이 모든 걸 현장에서 직접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도 이 영상을 통해서 생겨났다. 

    살처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심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매일같이 귓가를 맴도는 돼지의 비명.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구역질을 일으키는 짙은 가스 냄새. 많은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지만, 심한 경우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노동자들도 여럿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조사하면서 우연히 살처분 현장에 참여한 수의사의 인터뷰를 읽었다. 우리가 살리기 위해서 수의사가 된 거지, 죽이려고 된 게 아닙니다.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었다. 나는 인터뷰를 읽고 난 후 홀린 듯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은 8번을 퇴고했음에도 만족스러운 마무리가 나오지 못해서 사실상 미완성으로 둔 글이었다. 특히나 위선자라는 마무리는 작가노트를 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봐도 아쉬운 마무리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꼭 좋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No. 3 월식 작가노트 - 운수 좋은 날]

https://brunch.co.kr/@notcorrect/18

    운수 좋은 날.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단편 소설이다.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언제 접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뇌리에 깊숙이 박힌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운수 좋은 날과 비슷한 글을 꼭 써보고 싶었다. '월식'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하지만 운수 좋은 날과는 다르게 '월식'에서 화자는 남의 집 개를 훔쳐 파는 개장수로 비도덕적인 인물로 설정했다.

    화자는 과연 본인의 직업이 잘못된 걸 몰랐을까?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 화자는 개를 훔치는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임산부인 아내를 계속해서 걱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다친 다리. 차로 친 고양이. 끝으로 아이의 죽음까지. 화자에게 있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겹친 하루로 남은 사건들이었다. 이 글은 운수 좋은 날을 생가하며 썼지만 전혀 다른 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운수 좋은 날에서는 사건들의 유기적인 연결성이 아이러니였다면, 이 글은 인간 그 자체의 모습에서 나오는 아이러니에 집중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하는 일이 범죄며,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가족만큼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화자. 참으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이지 않은가.




[No. 4 가면 속의 마돈나 작가노트 - 가면]

https://brunch.co.kr/@notcorrect/26

    저 사람 정말 잘생겼다. 저 사람 정말 예쁘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외모지상주의. 요즘 현대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 중 하나이다. 사실 이 글의 작가노트를 쓰기 위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내 한 마디가 어떻게 작용되고,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내가 어떤 인상으로 남을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은 작가노트를 통해 '가면 속의 마돈나'는 절대로 외모를 비하하거나 특정 인물의 외모에 대한 기준을 잡으려 한 건 절대로 아니란 걸 밝히고 싶다.

    외모지상주의를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글이 바로 '가면 속의 마돈나'였다. 가끔은 사람이 전부 똑같이 생겼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해본다. 약속 장소에 가도 전부 같은 얼굴. 식사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사람도 나와 같은 얼굴. 심지어 집에 와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같은 얼굴이라면, 질려서 구역질이라도 나올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작가노트를 쓰는 지금 이 순간,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외모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예민한 주제인 만큼 대충 얼버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외모는 참 악독한 녀석이다. 




[No. 5 매화 작가노트 - 편견]

https://brunch.co.kr/@notcorrect/15

    매화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가장 먼저 피어올라 봄을 알리는 꽃. 매화는 그런 꽃이다. 언뜻 보면 제목이 매화인 이유가 누나라는 인물을 일컫는 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매화가 지칭하는 인물은 누나의 아이이다. 물론 누나를 포함하여 약간의 중의적 의미도 담겼지만, 그래도 매화라는 건 아이를 뜻하는 제목이었다. 

    미혼모. 미혼모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굳이 말을 안 해도 다들 여러 가지 모습들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매화'에 등장하는 누나라는 인물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도 많이들 생각할 것이다. 유튜브나 휴먼 다큐, 요새는 여러 프로들을 보다 보면 미혼모의 사연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미혼모들은 힘들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불현듯 들곤 한다. 나는 존경심이 들 때쯤, 깊게 뿌리 박힌 관념으로 비롯된 편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사실 편견을 받는 당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자신이 놓인 상황보다도 주변의 시선일 가능성이 높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주변의 시선이니깐 말이다. 나 역시 살면서 많은 편견과 문제 상황에 놓였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힘들었고, 나 자신이 문제가 있어서 괴로운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아직 이런 걸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면 정신이 멀쩡하구나,라고. 




[No. 6 레디, 액션 작가노트 - 이상주의자]

https://brunch.co.kr/@notcorrect/9

    촬영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면 항상 내게 날아드는 질문이 있었다. 너는 뭐가 되고 싶은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심오한 질문인 것 같지만, 당시의 나는 간단명료하게 답을 했던 거 같다. 전부 다 하고 싶어. 욕심이 넘쳐 나는 답변이다. 하지만 내가 한 답은, 거의 모든 거이 진심이 담겨 있는 진솔한 대답이다. 촬영. 연출. 편집. 시나리오. 하나라도 빠짐없이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늘 나를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했다. 당연스럽게도 모든 파트에 뛰어들어 일을 하게 되면 허점이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이상주의자 앞에 좋은 동료들이 있었던 건,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막연하게 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인생에 다시없을 행운이고 고마운 나날들이었다고 가슴속에 여러 번 새기곤 했다. 이 글은 그런 내 경험을 토대로 쓰인 글이다. 비록 글에서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암울한 느낌의 글이 되었지만, 마무리 부분에서 대본을 다시 챙기는 것으로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촬영이 힘들고, 환경도 열악했지만 무언가라도 해보겠다고 매달릴 수 있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상주의자인가? 그러면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주변에 머물러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해라. 이상주의자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열정은 있어도, 현실을 보는 감각은 없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No. 7 오후만 있던 일요일 작가노트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https://brunch.co.kr/@notcorrect/5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작가노트의 제목부터 꼰대 느낌이 나지 않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은 분명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아서 떠올려낸 문장이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린 모두 식어버린 붕어빵이 아닐까. 속에 꽉 찬 팥앙금을 가지고 있음에도 매서운 날씨에 식어버리는 붕어빵처럼 말이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는 제목은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제목 중 하나였다. 글을 읽다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여기서 오후란, 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제과제빵에 매달리면서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신세. 헛된 꿈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일손이나 도우라는 어머니 손님들을 전부 빼앗아간 프랜차이즈 붕어빵 가게. 화자는 암울한 상황에 빠져 있다. 요즘 우리와 같은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했다. 꿈과 현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항상 고민하는 문제일 테니 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참으로 불행하지 않은가. 원하는 꿈을 꿀 수도, 편안하게 현실을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사실 어느 시대에 태어났어도 우리 나이 때의 사람들은 다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을까. 쉬운 건 지금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몸을 직행시키는 것 말고는 없는 거 같다. 고작 이것밖에 안 살고 이런 글이나 끄적이고 있다는 게 웃기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게 너무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다.




[No. 8 마지막 여름 작가노트 - 여름의 끝]

https://brunch.co.kr/@notcorrect/17

    '마지막 여름'의 작가노트는 제목에 대한 해석으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글에서는 여름에 대한 언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물론 나는 쓴 입장이라 당연히 알고 있다. 제목을 이렇게 지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지막 여름'에서 '여름'은 청춘을 뜻한다. 화자는 청춘을 바쳐 조각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수많은 목각 인형을 만들어 냈음에도 남은 건, 가난과 갈등이었다. 글의 마무리 부분에서 결국 화자는 청춘을 바쳐온 조각을 접으면서 끝이 난다. 마지막 여름. 결론적으로 화자의 청춘을 태운 꿈이,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평소에도 조각에 대한 멋진 환상을 가지곤 했다. 투박한 나무 한 토막을 깎아내려, 인형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조각은 꼭 다뤄보고 싶은 주제 중 하나였다. 사실은 '마지막 여름'외에도 조각가를 화자로 쓴 글들이 많았지만, 영 별로였다. 아마 내가 더 발전한다면 조각이라는 소재는 꼭 다시 사용할 것 같다. 조각은 글과 비슷한 거 같다. 모난 부분이 있으면 깎고, 모양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잘라내야 하니깐 말이다.

    꿈과 현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걸 선택한 사람일까. 어떤 선택을 하였든, 후회가 없다면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나도 화자처럼 꿈을 버려야만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종종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결론은 같았다. 어차피 나는 나를 이길 수 없었다.




[No. 9 모노드라마 작가노트 - 이면]

https://brunch.co.kr/@notcorrect/8

    모노드라마. 혼자서 하는 일인극을 지칭하는 말이다. 화자가 독백으로 전달하는 글에 나름 어울리는 제목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노드라마'는 정말 무언가에 홀린 듯이 써 내린 글이다. 끔찍한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사용하게 되면 어떨까,라는 의문에서 이 글을 구상했다. 글 속의 화자는 오디션장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주제를 받았고, 우연히도 화자의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는 시한부 인생이었다. 어쩌면 화자에게 있어서 아버지가 떠오른 건 당연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기 연습 외에는 종일 보는 게 중환자실의 아버지일 테니 말이다. 결국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다는 화자의 욕망이 이면을 드러낸 것이다. 기쁘지만 기쁠 수 없는 현실. 화자가 처한 상황 자체가 참으로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모노드라마'는 내가 써온 글 중 굉장히 빠르게 써낸 글에 속한다. 다 쓰는데 고작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화자의 입장을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글이 완성되어 있었다. 독백체로만 이어가는 실험적인 문체를 사용했는데, 앞으로 글을 쓰면서 종종 사용해보고 싶은 문체다. 몰입감과 묘사, 인물의 설정만 완벽하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문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모노드라마'는 꼭 이 책에 남기고 싶은 글이었다.




[No. 10 초연 작가노트 - 방아쇠]

https://brunch.co.kr/@notcorrect/23

    방아쇠. 원래 글의 제목이 방아쇠였다. '초연'은 제목을 정할 때까지 상당한 고민을 했다. 나와 할배의 관계. 할배와 아버지의 관계. 세 사람은 각각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인물로, 관계성 역시 글 속에 뚜렷하게 드러나게 적으려고 노력했다. 세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는 방아쇠가 당겨진다는 의미에서 방아쇠라는 제목을 붙였었다. 하지만 퇴고를 거치면서 총을 쏘고 난 후 남는 초연 향이 더욱 좋은 소재 같아서 제목을 바꾸게 된 케이스이다. '초연'은 이 책에 있는 글 중 가장 마지막으로 쓴 글이었다. 급하게 썼고 많이 고치지 못해 본 것이 아쉬운 글이지만 기억에 남은 글이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슬슬 작가노트에 대한 의미를 알아차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잡생각이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생각하는 엉뚱한 생각들을 써둔 걸 그대로 옮겨온 내용들이다. 사실 작가노트를 쓸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책 속에 수록된 글들이 전부 규격에 맞춰 쓴 산문이며, 나를 제대로 보여준 글들이 아니기에 재미없고 딱딱한 글이 대부분이다. 자부심이나 애정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글들도 아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풀어 보기 위해서 작가노트를 억지로 넣은 것도 약간 있다. 하지만 작가노트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No. 11 백련강 작가노트 - 아버지]

https://brunch.co.kr/@notcorrect/27

    '백련강'은 내게 오래도록 기억될 글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내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담겨 있는 글이니깐 말이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누구에게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참 어려운 존재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아니다. 절대로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신 휴일이면 재미있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함께 TV를 보면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낮에 종종 안부를 묻거나 오늘 밤에 치맥이라도 하는 게 어떻냐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사실 아버지라는 말도 텍스트로만 사용할 뿐, 거의 현실에선 아빠라고 편하게 부르는 편이다. 그런데 대체 왜 어려운 존재일까. 아마 그때쯤이었다. 아버지의 젊었을 적 꿈을 들었을 때. 

    친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굉장히 발고, 말도 재미있게 하면서 모임이 있다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친구. 무엇보다 내게 고민이 있을 때, 누구보다 진지하게 들어주면서 힘이 되어 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사실은 위로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암울한 이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 아마 가장 친했던 친구였어도 대하기 조심스럽고, 괜히 안쓰러우면서 함께 지내기에 묘한 불편함이 생길 것이다. 오히려 아는 게 많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 같은 느낌이다. 내게 아버지는 항상 그런 존재였다. 감히 지금의 나로는 표현조차 할 수 없는 단어. 아버지.


    '백련강'은  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오로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써 내린 글들 중 가장 덜 부끄러운 글을 모은 것입니다. 살면서 어딘가에 꼭 남기고 싶은 서투른 글이기에 애정을 가지고 올려봅니다. 벌써 백련강에 수록된 글들을 쓴 지 3년 정도가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읽으면 부족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다시 퇴고하여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때의 내가 쓴 날 것의 글로 남기고 싶어 그냥 남기기로 했습니다. 

    창작은 너무도 어렵고 만들어도 매번 실패작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재능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가진 거라고는, 앉아서 피를 쏟아가며 퇴고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마저도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는 늘 지고 맙니다. 어쩌면 평생을 밑바닥에서 아득바득 악착같이 버티다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노력이 재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력은 재능이 아닙니다. 의지이고 정신력이고 필사의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저히 가만히 있다가는 억울할 거 같았습니다. 지는 거요? 아닙니다. 제가 쓴 글이 재미가 없고 별로라는 게 억울하다는 겁니다. 저는 초고도 별로고 퇴고도 별로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작가님들이라면 누구든지 그럴 거 같습니다. 그래도 퇴고를 하고 나면 그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언젠가는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다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항상 제 주위에는 이상주의자라고 멍청한 꿈이나 좇고 있다며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지만, 저는 제 목표에 도달한 저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라이벌은 그토록 바라는 재능도 있고 능력도 있고 다 가진 사람입니다. 열심히 하는 제가 아니라, 잘하는 모습의 제가 라이벌입니다. 저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 잘하는 사람으로 남은 적은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지고만 살 수도 있습니다. 근데 뭐 어쩌겠냐는 생각으로 삽니다. 사실 태어난 거 자체가 세상한테 진 거 아닐까요. 힘들 거 뻔한데 태어났으니

    지면서 시작하고 지면서 끝나고 싶습니다. 미래의 내가 꿈에 다가가 있다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한테 지는 거니깐 제가 이기면서 지는 게 되는 거겠죠. 조금은 근사한 엔딩인 거 같습니다

    당시의 저는 이 글에 애정도 없고 자부심도 가질 수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제가 가려는 길의 시작이 되어준 소중한 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글을 썼을 당시에 제게 힘이 되어준 지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다음 브런치북은 꼭 새롭게 현재의 내가 쓴 글들로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이 글들을 다 쓰고 나서, 과거의 내가 남겨둔 말이 있습니다. 


    오늘만큼은 아주 즐거운 꿈을 꾸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초록색 들판 위에 여유롭게 누워서 라면이라도 먹는 꿈 말이죠.


    3년이 지난 지금, 저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꼭 아주 즐거운 꿈을 꾸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초록색 들판 위에 여유롭게 누워서 라면을 먹는 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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