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카드 상품3팀 윤수진 (10)
1화: 간식 창고와 바퀴벌레
2화: 새벽의 일일실적 보고서
3화: 회사원이라는 페르소나
4화: 갈색 벨트를 차고 갈색 구두를 신은 직원들
5화: 특명 수진의 도전!
6화: 윤대리, 니가 해
7화: 나 교양있는 남자야
8화: 내이름은 윤수진
9화: 두 여자
매일같이 일일 실적을 보내다 보니 시간을 참 빠르게 지나갔다. 예상한 대로 태성마트 카드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일 따위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마도 이제 와 내가 고백한다고 해도 팀장님은 그래? 라는 한마디를 한 뒤 다시 파티션에 붙여둔 퇴사자들의 명패만 아련하게 바라볼 것이다. 태성마트 카드의 실적이 꾸준히 잡히는 것을 보면 그녀의 어머님은 잘 지내시는 것 같았다. 미국의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와 내가 카드를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이제 한 달 남았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일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일이 또 하나 생겼다. 한 달 뒤면 상품 3팀을 떠나게 된 것이다. 사내에 새로 생긴 팀에 좋게 보면 선발, 나쁘게 보면 차출되어 이주 후 부터는 상품실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맡게되었다. 태성마트 카드의 유효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회사 생활의 1막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1막에서 2막으로의 이동이 주체적인 미래 설계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어떻게 보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3년간 가득 찬 짐을 미리미리 정리했다. 모니터 앞에 놓인 태성마트 카드도 이제는 보내주기로 했다. 결국 내 밑으로 후배는 들어오지 않았고 일일 실적 보고는 다시 옆자리 선배에게로 넘어갔다. 인수인계는 필요 없으시죠? 나는 환하게 웃었고 선배는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안그래도 바쁜 팀에 나까지 빠지게 되어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니트조끼 차장님의 야근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에너지 드링크는 적당히 드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퇴사 선물로 비타민을 준비했다. 차장님은 피곤에 찌든 얼굴로 활짝 웃어주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더 안쓰러웠다. 팀장님께는 퇴사선물로 상품 3팀 윤수진 내 이름이 적힌 명패를 전달했다. 반쯤은 농담이었는데 팀장님은 의외로 진지하게 명패를 건네받았다. 이내 내 명패를 퇴사자들의 명패 밑에 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명패는 총 7개가 되었다. 8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금쯤은 미국에 있는 그녀의 삶에도 한결 여유가 생겼길 바란다. 어머니와 자주 통화를 할 수 있기를. 어쩌면 그사이 한국에 한번 들렸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엄마와 밥을 먹으며. ‘아니 글쎄 니가 만들라고 했던 태성마트 카드를 해지하라지 뭐야?’ ‘아니 그 카드를 아직도 쓰고 있었다고? 버려버려.’ 따위의 대화를 나누기라도 했다면 나는 기쁠 것 같다.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나의 늙은 컴퓨터도 웅 하는 소리로 나의 시작을 응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