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코로나 사태 이전 여행이 자유롭던 시절은 세계적인 관광지마다 각국의 관광객이 넘쳐났었다. 그런데 여러 나라에서 온 단체 관광객 중에서 한국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쉽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그 표정이 매우 엄숙하고 화난 것 같다는 것이다.
옛날 어른들 초상화나 사진을 봐도 기분 좋을 땐 무표정하고 그렇지 않을 땐 화난 얼굴이 대부분이다. 어쩌다 중, 고등학교 때 앨범을 꺼내보면,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젊은 얼굴들이 아니고 결전을 앞둔 탈레반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항상 유머와 위트가 번뜩이는 서양의 문화와는 매우 대조적인 것인 물론 골계, 해학, 풍자 등의 경쾌하고 유쾌하고 명랑한 분위기는 학살당했다. 공자가 웃자고 한 말을 엄숙하게 치장해 성현의 말씀으로 포장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중의 하나를 살펴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미생고(사람 이름 - 공자 친구)를 정직하다 하는가?
어떤 사람이 초(식초, vinegar)를 빌리려 하자,
그의 이웃집에서 빌어다가 주는구나! “①
공자의 지극히 사적인 이 말에 대해 정자(程子)는
"미생고의 정직하지 못함은 비록 작으나 정직함을 해침은 크다"②
라고 해석했다. 그의 학생들은 다 받아 적고 외웠다.
여기에 범 씨(范氏)는 한발 더나 가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며,
있으면 있다 하고 없으면 없다고 하는 것이 정직이다"➂
운운하며 식초 한 종지가 정직의 거대담론을 촉발시켰다. 결과적으로 유머, 풍자, 해학, 농담 등의 싹은 뿌리 채 뽑히기 시작했다.
뒤를 이은 주희는 이러한 해석들을 집대성해
"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뜻을 굽혀 남의 비위를 맞추고 아름다움을 빼앗아 생색을 냈으니, 정직함이 될 수 없다고 기롱 하신 것이다"④
라며 마치 공자와 인터뷰한 것처럼 단정해 미생고를 천하의 부 정직한 사람을 만들어 버렸다. 참으로 역사적 식초 스캔들이다.
미생고는 공자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친구였다. 그는 정직하다고 잘난 척하는 스타일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동네 친구로 보인다. 그는 공자에게
"구(丘-공자의 이름, 짱구의 뜻)는 어찌 이리도 연연하는가!
말재주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⑤
라며 날개를 턴 적도 있다.
공자 집에 식초가 떨어져 미생고집에 식초를 빌리러 사람을 보냈는데 마침 미생고네 집에도 식초가 없었다. 미생고는 기왕 온 사람 그냥 보내기도 뭣해 옆집에 가서 식초를 꿔서 들려 보냈다. 그 일을 안 공자가
"(미생고는)정직하다고 잘난 척하더니 식초 없다고 못하고 옆집서 꿔서 보내냐?
모든 일을 한 갓 정직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앞으로 입방정 떨지 말아라"
하고 놀린 것이다.⑥
친구 집에서 식초 빌리러 온 사람을 없다고 매정히 보내기 뭣해 옆집서 빌려 준 것을 정직을 해치는 위선적 행동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매우 지나친 일이다. 거기에 대해 "남의 비위를 맞추고 아름다움을 빼앗는다(曲意徇物 掠美市恩)"며 의미 부여하는 것은 차라리 왜곡과 다르지 않다.
내가 한심한 성적을 받았을 때 어머니는 그것을 보시고 "참 잘했다~" 하셨다. 그걸 누군가가 칭찬받은 것으로 설명하며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배워 외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참 깝깝할 것 같다.
① 리인 편 23번째 장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子曰, 孰谓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诸其邻而與之.
(자왈 "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저기린이여지"
② 『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p.100-101.
원문은 ; 程子月,微生高所枉虽小 害直为大 이다.
➂ ibid, 원문은 范氏曰, 是曰是, 非曰非, 有月有, 无曰无, 曰直。이다.
④ ibid, 원문은 夫子言此 讥其曲意徇物 掠美市恩 不得为直也。이다.
⑤ ibid, pp. 294(헌문 34.)
원문은 微生畝谓孔子曰, 丘 何为是栖栖者与 无乃为佞乎。이다.
⑥ 대체적으로 아래 부분을 참고해 짜깁기했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임옥균 등 역.『논어징(論語徵)』1. 소명출판 서울. 2010. pp.153-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