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여행과 흔한 사진

이번 여행에는 없는 것

by ON DISPLAY

<바쁜 여행과 흔한 사진>편은 이번 여행에는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홍콩 아파트, 그 후

작년 홍콩 사진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심포니 오브 라이트도, 딤섬도, 쇼핑도 아닌 독특한 아파트였다. 가이드북 볼거리만을 찾는 편안한 여행에서 벗어나 국내에 잘 알려되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능동적인 여행의 첫걸음이었다. 도전은 성공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공간을 마주했을 당시 나의 만족감, 이후 결과에 대한 주변의 반응. 모두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는 것보다 잊혀 가는 것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내 사진은 빠르게 소비되어만 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독특하다고 생각한 것이 생각보다 독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천천히 소비되어 계속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같은 홍콩 여행을 다룬 브런치 글이 그랬다. 비가 내리는 홍콩 밤거리 사진을 보면 그가 느꼈을 당시의 감정갑작스런 비에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새로운 거리를 설레며 찾아다니는ㅡ이 내게 전해졌다. 반면 나의 홍콩 사진을 본 사람들은 내가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느꼈을까? 또, 진주누나의 사진은 분명 거칠고 단번에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다른 사진과 구별되는 그녀만의 개성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반면 나의 홍콩 사진을 본 사람들은 다른 사진과 내 사진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500px 그리고 구글에서 제 사진을 찾아보세요.


정리하자면 그동안 나의 여행은 너무 바쁜 여행였다. 꼭 남겨야 하는 인증샷을 찍느라, 먹어야 하는 메뉴를 고르느라, 타야 하는 교통수단을 기다리느라 살이 빠질 정도로 바쁘게 여행하였다. 나 자체가 그런 바쁜 일정 속에 있었으니 나의 사진이 빠르게 잊혀져 가는 것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기대했던 홍콩 아파트에 다녀온지 1년이 지난 지금 그리운 것은 파스텔 톤의 이쁜 아파트도, 한 없이 아래로 뻗어있는 아찔한 아파트도, 영화 속 배경이 된 거대한 아파트도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가던 일상의 모습들이다.





바쁜 여행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바쁨'이 없다. 아래 사진들은 내가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에 던진 질문이다. 기존에 모르고 간과했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부족해'가 아니라 '적당해' 하는 생각에.



음식 없는 먹스타그램

맛집 찾기와 같은 식사 전 습관적인 관행을 없애고, 발 닿는 아무 곳에나 들어가 여유롭게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음식 '사진'이 없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얼굴 없는 셀스타그램

간직하고 싶은 배경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눌러대던 시도를 없애고 그냥 경치를 즐겼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얼굴 '사진'이 없고 웃는 얼굴이 있다.



고민 없는 선택

매일 다른 옷을 고르는 선택 자체를 없애려고 아예 같은 컬러의 옷만 가져왔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매일 같은 고민이 없고 매일 다른 생각이 있다.



스타벅스 없는 카페

멜번은 커피가 맛있다고 해서 굳이 알고 있는 브랜드를 찾아가는 불편을 없애고, 그곳에만 있는 카페를 찾는 재미를 느꼈다. 서울에서도 이 재미를 이어 나가려고 한다. 어쨌든 이번 여행에는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종이컵이 없고 이 나간 접시에 담긴 롱 블랙이 있(었)다.



카메라 없는 가벼운 걸음

멜번에서의 마지막 날 어깨에 든 짐을 없애고 야라강을 가볍게 걸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카메라가 없고 진짜 여행이 있다.





인스타그램, 그 후

나는 2013년부터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재미로 해왔던 사진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취미 이상으로 생각해보게 된 시발점이다. 좋게는 인스타그램 추천 사용자, 나쁘게는 인스타 일진까지. 인스타그램은 단순한 사진 앱을 넘어 좋든 싫든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 한 가지 문제가 찾아온다. 흔한 인스타그램풍 사진. 내 사진에 대한 언급은 아니지만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이 문구가 날 흔들어 놓았다. 이것으로 두가지가 변하였다. 나의 사진 스타일이 변하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내 사진에 더 이상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2016년이 왔어도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이전에 들었던 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는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왜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하니?"

"더 날것의 느낌으로 찍어보세요"

"저 사람은 또 그런 사진을 찍어도 깨끗하게 만들 거야"

또, Glenn Gould의 연주 앨범을 소개 받으면서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모든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연주한다"

어떤 의도인지는 이해했지만 쉽게 바꾸기는 힘들었다. 사진 이전에 성격에서부터 비롯된 거니까. 정리하고 분류하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대로 찍은 사진이 나름대로 개성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이것도 너무 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유행을 좇아가는 사람처럼도 보일 수 있겠구나. 흔한 인스타그램풍 사진 그래 인정.


이 사진이 사진을 비교해보세요.


그런 고민 중에 어떤 사진 한 장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단순한 구도 속에서도 제법 개성이 살아있듯한 사진ㅡ링크를 하고 싶지만 도무지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ㅡ이었다. 해결점을 찾은 듯 하다.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지 않더라도 지루하지 않게, 흔하지 않게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아직 다루지 않은 것을 조합해서 더 재미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스타그램으로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흔한 사진

그래서 이번 사진에는 '흔함'이 없다. 아래 사진들은 내가 사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에 던진 질문이다. 기존에 모르고 간과했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우와'가 아니라 '어라' 하는 소리가 나오게.



대칭 없는 사진

City of Melbourne



가위질 없는 사진

Fitzroy


정방형 없는 사진

Fitzroy


콘트라스트 없는 사진

Chapel Street


특별한 구조물 없는 사진

China Town


어제 좋아하던 것이 오늘 싫증 나고, 오늘 싫어한 것은 내일 좋아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아직 타투 문구를 못 정하고 있나 보다. 어느샌가 '계속 변한다'라는 것 외에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쁘게 여행하고 흔하게 사진 찍던 나의 어제를 깨기 위한 오늘의 과정이다.


Beenzino - Break






작년 말 사진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여 호주 멜번을 다녀왔다. 나의 4번째 사진 여행은 재미있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즐겁게 계획하고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싱가포르 항공과 더블트리 바이 힐튼 호텔을 제공받아 가벼운 마음으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전 여행과 차이점이 많은 여행이라 시간이나 공간별로 엮지 않고 다음 4가지를 기준으로 여행기를 정리하였다.


이번 여행에는 없는 것
이번 여행에는 있는 것
이번 여행에도 있는 것
이번 여행에도 없는 것


이번 여행을 만들어 준 것


이번 여행에도 없는 것


이번 여행에는 있는 것


이번 여행에도 있는 것


이번 여행에도 없는 것


다음 여행에도 있을 것


2009년 제주도, 2011년 도쿄, 2015년 홍콩에 이어 2016년 호주 멜버른 여행도 역시 즐겁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언제가 될지 어디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음 여행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여행 후 다시 시작된 일상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전히 저의 인스타그램을 찾아와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