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빛바랜 필름 속에 각인된
흑백의 기억들이 일렁이다 녹아버리면
더이상 추억할 거리도 없어진
텅 빈 카메라 롤을 응시하다 울어버려
기억조차 희미해진
이름 모를 얼굴들과
아스라진 낙엽 사이 떨어진
저 멀리의 이름들을 그려
조용히 그려본 그 얼굴들은 아직 어려
그립다가 그립다가
더이상 내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잊어버리면
새 필름을 꺼내 갈아끼워
나로 하여금 내가 아끼던 것들을 잊게 하는
이 시간을
나는 그저 살아가
내가 잊은 그 빛바랜 필름의 순간들은
여전히 아름다운지
나를 망각하게 하는 이 세상을
나는
그래도 여전히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