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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Jul 12. 2018

책 보다 더 큰 책 이야기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 김진희_양산 화제초등학교 교사


『가나다라마을길 걷기』

 ‘이제 막 문자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또는, 두 세계의 경계선쯤에서 걸음마를 떼고 걸으려는 아이들에게 어떤 안내자와 길동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가나다라마을길 걷기 책의 일부


 ‘1학년 한글 첫걸음 - 가나다라마을길 걷기’


 ‘걸음’, ‘걷기’, 공교롭게도 이 책 제목에는 ‘걷는다’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간다. 누워만 있던 갓난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엉금엉금 걷다가 서랍장 모퉁이나 벽을 짚고 일어나 마침내 아장아장 걸음을 떼어놓을 때 엄청난 것을 본 것처럼 우리는 손뼉 치며 환호한다.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우뚝 서서 걷는다는 것.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
 나는 ‘걸음’ 또는 ‘걷기’에 방점을 찍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에는 미개를 벗어난 문명 세계로의 진입, 새로운 배움, 낯선 세계와의 조우, 도전, 이런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다. 걸을 때 심장은 가장 쾌적한 상태로 박동하고 주변 풍경은 적당한 속도로 스쳐 뒤로 밀리면서 우리에게 수많은 감흥과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는 말이 참 좋다. 


 이 책은 화제 마을길을 걸으면서, 주말에 가까운 산의 둘레 길을 걸으면서, 떠올리고, 두근거리고, 쓰고, 그리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태어나게 되었다. 길을 걸으며 만들어진 ‘길의 책’, ‘걸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한글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아이들과 마을길을 걷고 그 장면을 그림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아이들과 마을이 주인공인 책 말이다. 하지만 그림이 문제였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 이야기는 그럭저럭 꾸려나가겠는데 그림은 자신이 없었다. 삽화를 그려줄 화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미미하고 시간은 흐르고 책에 대한 마음은 간절하고.....


 내가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냥 그려보자고 했다. 화제와 우리 아이들에 대하여 누구보다 가깝고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어설픈 다짐을 부추겼다. 아이들 사진과 마을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열어놓고 연필로 그리기 시작했다. 제법 그럴듯했다. 창의성이 발동될 때 사람들은 행복하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림판에서 편집한 아이들 얼굴에 몸통은 펜으로 직접 그려 넣었다. 그 무렵 ‘이오덕 선생님’이라는 만화책을 읽었는데 만화로 그려진 시골학교 풍경이 친근하고 좋았다. 아이들 동작이나 자세는 그 만화책 도움을 받았다. 채색은 색연필로 했다. 처음 몇 장은 채색을 하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색칠할 수 있게 윤곽만 그렸다. 화제 마을과 학교 운동장을 그리고 채색을 하니 사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사진보다 아름다웠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주말에 출근해 교실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웠다. 아이들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되고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베껴 그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놀이였다. 이 책은 나 자신의 열정을 견디지 못하여 만든 책이다.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 좀 낯간지러운 말이다.

 

 친구들 이름과 마을길에서 본 것들로 한글을 익혔다. ‘가나다라’ 책을 들고나가 우리 학교, 화단, 텃밭 작물을 관찰하고 그렸다. 그리고 마을길로 나가 꽃을  보고, 강아지를 만나고, 아카시아 파마한 것들을 책에 담았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면서도 과제를 잘 해결했고 그림은 다양하게 나왔다. 글자를 아는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그림 옆에 글을 썼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다리에 힘이 생기고 넘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더 심하게 넘어지고 더 깊은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할지라도 어릴 적 무언가를 잡고 우뚝 일어섰을 때처럼, 별똥별처럼 가슴을 긁고 지나가는 신비한 한글 습득의 체험을 밑거름 삼아 다시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피고 바람과 꽃들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새로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가나다라마을길 걷기’ 책을 떠올리며 제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러한 감성의 밑바닥을 건드리며 아이들에게 오랜 친구처럼 기억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저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그 뜨거운 순간을 함께하고 응원한다는 것, 이 책의 의미를 굳이 찾는다면 그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지만, 이 책이 마을교육과정으로 확대되고 이어지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우리 마을 책을 들고 마을로 나가 삶과 밀착된 배움을 일구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팽나묵찌빠』


 1학기에 ‘가나다라마을길’책을 마무리하고 2학기엔 ‘팽나묵찌빠’책을 만들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2학기 교과서를 들추어보았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가 만든 우리의 책이 아니어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차, 팽나무 아래 묵찌빠 놀이하는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아이들로부터 나온 책이 되었다. 

묵-바위, 돌멩이 놀이, 돌멩이로 만들어진 물건
찌- 가위, 가위놀이, 쇠로 만들어진 물건
빠-보자기, 보자기 놀이로 연결하여 수업을 짰다. 

 주로 놀이 위주의 수업이 되었다. 이 책은 ‘가나다라 마을길’과 달리 여백이 중간중간 들어가 있다. 그 여백을 아이들이 채우도록 했는데 일종의 만들어가는 책이었던 것이다.

 첫 시간엔 ‘팽나묵찌빠’책을 들고나가 팽나무 껍질 탁본을 했다. 앞으로 재미있는 공부 잘하게 해달라는 신고식이었던 셈이다. 백 살 팽나무에 맞추어 ‘팽나묵찌빠’책 분량도 100쪽이다. 국어과와 통합교과를 재구성해 넣었다. ‘팽나묵찌빠’는 좀 더 본격적인 마을 책이다. 마을길을 걷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쓰는 시간을 많이 넣었다. 학기 말엔 활동을 정리하면서 책의 앞부분에 각자 차례를 써넣기도 했다.   
  


 ‘어두운 칠판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창을 내자.’  

 대학시절, 학교 현실에 대해 쓴 글의 일부다. 요즘 그 구절이 자꾸 생각난다. 갇힌 교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교육, 세상을 교과서 삼아 살아있는 배움을 일구고 싶다는 막연한 꿈, 다만 꿈이라고 생각했을 뿐인 그 말이 현실이 되는 뿌듯함을 나는 요즘 행복하게 누린다.
 
 책 보다 더 큰 책은 들판이고 봄바람이고 마을길이고 낮은 곳에서 꿈틀대는 지렁이일 테니까. 나아가 가장 큰 책은 사람 그리고 바로 우리 아이들 소중한 삶일 테니 말이다. 



교육과정운영계획 자료


 *위의 그림 파일이 잘 안보이시면 아래의 첨부된 PDF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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