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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8. 2024

9. 시골 아이들 3.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진주가 지아와 함께 읍내에 간 후 진우는 할 일 없이 방안에 누워있었다.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여자 아이들 뒤를 따라다닌다는 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놀기 좋아하는 진주와 함께 다니면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말을 보태는 게 싫었다. 


“진주는 한국사람처럼 생겼는디 진우는 워째 다르게 생겼다냐? 진주는 아빠 쪽이고 진우는 엄마 쪽인갑다.”

“아따 진우 니는 외국인같이 생겼구만. 느그 아빠 아들 맞냐? 이거 친자확인 해봐야 되는 거 아니여?”


사람들은 농담으로 던지는 말이었지만, 진우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어렸을 적에는 이국적인 외모 덕분에 사람들이 예뻐해 주는 것이 마냥 좋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귀엽게 생겼다며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10대가 된 후 자신은 한국사람인데 외국인 취급을 받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진우는 자신은 누구이고,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찾을 순 없었다. 여긴 시골이고, 아빠는 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나이가 많고, 자신은 장남이기 때문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런 진우에게 “네가 빨리 커서 늬 엄마, 아빠 먹여 살려야지.”하며 말했다. 엄마가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낯선 나라의 시골로 시집을 온 것처럼, 진우 역시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 같았다. 하지만 동생 진주는 그런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자유분방한 진주는 그런 어른들의 말에 “가족을 위해 결혼을 선택한 건 엄마예요. 그건 우리에게 강요할게 아니라고요!”하며 대들었다. 그리고 뜬구름 잡듯 가수가 되고 싶다며 그렇게 노래방을 들락거리는 것이다. 진우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당당하게 말하는 진주가 부러웠다. 학교에 들어간 후 이주민여성 아이들에 대한 편견은 더욱 심해졌다. 시골학교엔 일반적인 한국 아이들과 진우처럼 혼혈 아이들이 반반 섞여 있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귀촌한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로 전학을 왔을 때 이주민여성 아이들 때문에 오히려 적응하기 힘들다는 말이 매스컴에 나온 후엔 사람들의 편견은 더욱 심해졌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기 시작했다. 진우는 이 아이들 사이에서 징검다리와 같은 존재였다. 이쪽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저쪽 아이들과도 잘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게 모두 훈훈한 외모 덕분이라는 걸 진우도 알고 있었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 준서였다. 

“야, 니 동생 코노 가던데?”

“응, 알아.”

“야 근데 지나가는 길에 보니까 수아 무리들이 읍내 돌아다니더라.”

“그래?”

“그 싸가지들 네 명이서 몰려다니면서 아주 읍내를 휘졌고 다니드만. 니 동생 조심하라 그래라. 안 그래도 걔가 너 찍었다든데.”

“찍긴 뭘 찍어. 내가 나무냐? 찍게.”

“야 니가 하도 저쪽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니까 질투 나서 그런 거 아니야.”

“왜 이쪽저쪽 편을 나누고 지랄이야.”

“암튼 난 말했다.”

“그래, 고맙다.”

진우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침 시골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어, 언니.”

"야, 언니를 봤으면 정중하게 인사를 해야지.”

“언니, 안녕하세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여자아이가 룸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쟤는 누구야? 니 똘마니냐?"

“어, 우리 동네 언니예요.”

“뭐? 너네 동네에 언니가 어딨어, 니네 오빠만 있잖아. 날 바보로 아냐? 야, 넌 어떤 년이냐? 가만 보니 저쪽 이구만.”

지아는 너무 놀라서 눈을 끔뻑이며 수아를 쳐다보았다. 

"뭘 꼬나봐? 확 그냥.”

“꼬나 보는 게 뭐지?” 

지아가 진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말에 노랑머리 아이들 무리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야이 씨발 우리나라 말도 모르냐? 너 외국인이냐?”

“응, 맞아. 나 외국인이야.” 

“와~ 얘 봐라. 어디? 중국? 일본? 어디 나라 사람인데?”

“나? 이탈리아. 나 밀라노에서 왔어.” 

지아의 말에 무리들이 또 한 번 깔깔거리며 웃었다. 

“근데 넌? 넌 어디 나라 사람이야?” 

“나? 난 당근 한국 사람이지. 보면 모르겠냐?  와 이거 또박또박 말대꾸하네.”

“말대꾸? 이건 그냥 대화잖아. 너가 물어봐서 대답하는 건데.” 

진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아의 옷을 잡아당기며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언니, 그만해….”

“진주야, 왜?” 

“야! 흑진주. 니네 동네 언니, 완전 또라이네. 너가 일어나 봐.”

“네?” 진주가 멈칫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문이 열리며 진우가 들어왔다.

“야, 노진주. 나와.” 

갑작스러운 진우의 등장에 지아와 진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노진우 납셨냐? 너 자꾸 내 톡 씹더라. 야 같이 놀자~”

“내가 너랑 왜 노냐? 정신 좀 차려라. 야 얼른 일어나.” 

진우의 말에 지아와 진주가 쭈뼛쭈뼛 일어났다. 

“야, 같이 좀 놀자는데 왜 그렇게 뒤로 빼고 난리야? 야~ 반장. 그럼 언제 놀아줄 건데? 응? 언제 우리랑 놀 건데? 저 외국인 애랑 같이 놀려고 그래? 쟤 이탈리아 사람이래. 야, 웃기지 않냐? 큭큭큭큭” 

그런 수아를 진우가 쏘아보며 말했다. 

“넌 이렇게 생겼는데 한국 사람이잖아. 나도 그렇고. 너네들도 그렇고. 생긴 걸로 맨날 차별한다고 말하면서 지금 너가 그러고 있는 거잖아. 그리고 얘 금자 할머니 손녀야. 그러니 조심들 해. 야, 일어나. 노진주 너도 얼른 일어나.”

“금자 할머니 손녀면 뭐? 어쩌라고?”

“몰라서 물어? 너네 엄마, 너네 엄마 그리고 너네 엄마. 다들 금자 할머니랑 친할걸.”

"뭐야, 같이 좀 놀자니까. 어딜 가려고 그래?”

"작작해라, 김수아.”

“너나 착한 척 그만해 새끼야.”

“야, 김수아. 너 머리 색깔이나 좀 어떻게 해라. 학생이 그게 뭐냐? 편견은 스스로 만드는 거야.”

“니가 뭔 상관이야? 어디서 선생질 그만하시지?”

“선생은 아니지만, 같은 반 친구잖아. 우린 간다. 학교에서 보자.”

지아와 진주는 진우를 따라 일어났다. 뒤에서 수아가 눈을 흘기며 쳐다보고 있었다. 




노래방 건물을 나오자마자 진우는 진주를 돌아보며 잔소리를 쏟아냈다. 

“야, 노진주. 정신이 있어, 없어? 왜 여길 오고 지랄이야?”

“왜? 코노가 뭐가 어때서? 저 언니들이 이상한 거지. 여기 완전 건전한 곳이야, 에이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그치 지아 언니?”

“응? 응 그러게.”

“주말엔 쟤네들 돌아다니는 거 너 몰라?”

“아니, 그럼 저 언니들 무서워서 집에 콕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아무 일 없었잖아.”

“야, 너 정말.”

“근데 오빠는 왜 왔어? 안 온다며?”

“나? 볼 일 있어서 나왔다가, 혹시나 해서….”

“뭐야, 올 거면서 뒤로 빼고 난리야.”

진주와 지아는 앞장서서 걷는 진우를 따라 걸었다. 

“언니, 우리 인제 뭐 하지? 아직 약속 시간 남지 않았어?”

“응, 한 30분 남은 것 같은데.”

“언니, 아까 돈 남았지? 우리 인형 뽑기 하러 갈래?”

“인형 뽑기? 여기에도 그런 게 있어? 서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있어. 언니 가자! 내가 뽑아 줄게.”

“야, 노진주!”

“사실은 우리 오빠가 제일 잘 뽑아. 오빠도 가자!”

이번엔 진주가 지아의 팔짱을 끼고 앞장서서 걸었다. 진우는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근데 아까 게네들 뭐야?”

“아, 우리 학교 일진들.”

“일진이 뭐야?”

“한마디로… 여자 깡패? 뭐 그런 언니들이야. 우리 오빠랑 같은 반. 다들 외노자 자식들이야. 언니도 봤지? 다들 피부색이 좀 다르잖아.”

“아, 외국인 자녀들이구나.”

“언니, 내 별명이 뭔 줄 알아?”

“뭔데?”

“흑진주. 피부가 까만데 이름이 진주라서 흑진주야. 이름을 왜 그따위로 지었는지 모르겠어. '지아' 이름 얼마나 예뻐? 난 한국 사람인데 사람들이 자꾸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것도 짜증 나. 할머니들이 우리만 보면 말썽 피우지 말라고 막 화를 내. 우리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지아는 이탈리아 학교에서 경험했던 인종차별이 떠올랐다. 자신을 향해 눈을 양옆으로 찢어 보이던 사람들, 치네제(중국인~)라고 놀리던 아이들. 한국에선 그런 게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진주와 함께 다니다 보니 아니었다. 외모가 조금만 달라도 사람들은 대놓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한국말을 잘못하는 지아에게 오히려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구하기도 했다. 지아는 밀라노에서 느꼈던, 비슷하면서도 다른 불편함을 느꼈다. 

"아까 그 노랑머리 언니 있지? 그 언니 조심해야 돼. 쫌 미친년이거든." 

"응... 알겠어."

인형 뽑기 가게에서 2만 원을 썼다. 진우가 토끼 인형 하나와 거북이 인형 하나를 겨우 뽑아주었다. 진주는 이거 뽑은 것만도 대단한 거라고 좋아했지만, 지아는 그냥 돈 주고 사면될 인형을 왜 이렇게 돈 낭비를 하며 뽑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뽑기니까. 뽑기 힘든데 겨우 뽑는 그 하나가 얼마나 좋은데. 그 손맛을 알면 중독된다니까."

진주가 거북이 인형을 지아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 언니.  언니는 거북이처럼 느리니까 이거 가져. 난 토끼 가질게."

"어, 그래."

진주와 지아, 진우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금자 씨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 놀았어? 진우도 왔네?”

"네."

"어서 가자. 배고프지?"

"아니요. 괜찮아요." 

금자 씨는 아이들이 차에 오르자 시동을 걸었다. 




"챠오, 지아. 꼬메 스따이?  (안녕 지아, 잘 지내)?"

그날 저녁, 오랜 친구 키아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아와 함께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함께 다녔던 단짝 친구였다. 지아가 한국으로 올 때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왔던 터였다. 그동안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친구였다.

"헤이 키아라, 난 잘 지내. 넌 어때?"

"나야 뭐. 늘 똑같지. 넌 어때?"

"난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어."

"어제 카페에서 너희 엄마 만났어."

"아, 그랬구나...."

"우리 친구 맞지?"

"응? 당연히 친구지."

"기쁠 때 슬플 때 기댈 수 있는 게 친구잖아."

"응......"

"네가 힘들었다는 말 듣고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너도 학교 다니느라 바쁜데 어떻게 그래.... 미안하게...."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 아직도 우리나라에 그런 인종차별주의자가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나. 그리고 내가 너무너무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아무튼.... 언제 돌아와?"

"아직 잘 모르겠어...."

"안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아직 잘 모르겠어.... 엄마가 8월 휴가 때 데리러 온다고는 했는데...."

"꼭 와야 해. 내가 기다릴게."

"그래, 고마워." 

"뭐가, 우린 친구잖아."

"맞아. 친구지."


지아는 키아라의 메시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바이올린 전공으로 예술고등학교에 간 키아라가 실습과 이론 수업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문제를 말하지 못했었다. 

키아라도, 진주도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솔직하게 고민을 터놓았다. 지아는 자신만 여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고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아야" 

금자 씨가 지아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이거 한번 봐볼래?"

"네."

"이 시인데, 우리 지아 한글 쓰기 공부도 할 겸, 노트에 보고 써보면 어때?"

"아, 네...."

"자, 여기 노트. 아까 시장 갔을 때 사 왔어."

금자 씨는 윤동주 시집과 네모칸이 반듯하게 그려진 공책을 지아에게 건넸다. 

"맨 앞에 있는 시 있지? '별 헤는 밤'이라고 있어. 그거 한번 써봐.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시야."

"네. 그럴게요."

"그래, 잘 자고." 

"네."

지아는 내친김에 시집과 공책을 펼쳤다. 손에 힘을 주어 연필을 잡았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네모 칸에 꽉 차도록 따라 적기 시작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시를 쓰는 지아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친구가 그리워서 그런 건지 지아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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