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만 필수 메뉴-우족 곰탕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고 기나긴 제대로 된 2달의 겨울방학을 맞은 둘째는 이번 방학이 엄청 기대가 컸다. 유치원 때까지는 본인 방학은 기껏 해봐야 겨우 일주일남짓이었는데 언니는 2달 동안 주야장천 늦잠과 함께 추운 겨울에 어느 시각에 들어와도 집에 있는 언니를 보면서 로망을 키워왔으리라.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어떻게 맞이한 두 달간의 두근대는 방학의 시작인데, 작은 어린이는 10일도 안되어 오른발 복숭아뼈가 골절이 되었다. 어떻게 키즈카페 트램펄린에서 뛰다가 골절이 될 수 있는지 아직도 엄마인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아이 탓을 할 수도 없고, 화를 내고 있을 수도 없다.
일단 이번 겨울방학은 꼼짝 마! 신세이다. 여행이고, 외출이고, 하다못해 눈썰매장 스키장은 물론이고 겨울방학을 준비한다고 신청해 둔 오전 늘봄수업이며 방학특강으로 신청했던 운동수업들을 줄줄이 취소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방학 시작과 동시에 유난히 키가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아이를 위해지어 둔 한약이 막 도착했으니, 한약 먹이며 밥이라도 잘 먹이며 가만히 앉아서 살이나 찌워볼까 싶은 심산이다.
아이가 뼈가 아프다고 하니 나도 어릴 적 보고 들은 게 있어서인지 곰탕이 생각났다. 뼈가 아프면 뼈가 들어간 음식이 좋다고 하니,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정육점에서 우족과 잡뼈를 샀다.
사실 결혼하고 13년 주부인생에서 이런 걸 내 돈 주고 처음 사봤다.
겨울방학이면 늘 친정엄마는 사골곰탕을 어마어마한 큰 냄비 가득 끓였다. 겨울방학과 곰탕은 늘 세트였다. 겨울마다 집에는 늘 곰탕이 있었고 별 반찬이 없어도 파를 가득 넣은 곰탕에 밥을 말아 김장김치만 있어도 한 끼 뚝딱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곰탕도 막상 내손으로 끓이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늘 곰탕을 끓이면 나는 그 냄새도 아파트에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고 나니 지금 앞뒤를 가릴 새가 없었다. 일단 뼈에 좋다니 내가 요리를 할 수 있나 없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뭐라도 먹여서 얼른 나아지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에게 전화로 sos를 친다.
엄마, 곰탕 어떻게 끓여?
우족 1개
잡뼈 적당
물
어마어마한 큰 냄비
1. 먼저 찬물에 물을 갈아가며 한 시간 반정도 핏물을 뺀다.
2. 뼈들을 다 냄비에 넣어 한번 바글바글 끓여 물은 버리고 뼈에 나온 불순물들을 씻어낸다.
3. 물을 새로 받고 2시간 이상 푹 끓여내고서 뽀얀 국물이 되면 국물은 따로 담아두고 뼈만 건져내어 뼈에 붙은 고기들을 발라낸다.(1탕 국물)
4. 한번 끓인 국물은 조금 식혀서 위에 뜬 기름기를 걷어내야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
5. 고기를 발라낸 뼈에 다시 새로운 물을 부어 2-3시간 푹 끓여 국물을 우려내고 (2탕) 첫 번째 나온 국물과 섞어 둔다.(1탕+2탕 합체)
6. 먹을 때마다 국물과 썰어둔 고기 적당량, 파 송송, 소금 후추 솔솔 해서 한 그릇씩 내면 끝.
아니 설명은 이리 간단한데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시간과 손이 엄청 가는 요리이다. 아니 사실 작업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평소 쓰지도 않고 싱크대 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냄비 두 개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국물 두 번 끓이기가 끝났다. 사실 한번더 끓여 국물을 내도 된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 그만하기로.
두 번 끓이는 과정에 부탄가스를 3통을 다 쓰고 집에 곰탕냄새가 가득 찼지만, 든든하게 두 냄비를 가득 채워두니 아이들도 젤리고기가 든 곰탕이 맛있다고 하고 남편도 늘 찾지 않던 아침밥을 알아서 밥에다가 국을 말아 챙겨 먹고 출근했다.
사실 전혀 겨울방학 메뉴로 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가 아이가 아파서 시작한 곰탕 끓이기가 내게는 추억을 소환했다. 친정엄마는 늘 이보다 많은 양을 밤낮으로 끓여 방학 내내 온 식구를 먹이고 준비해 주었던 거라니 새삼 다시 한번 놀라웠다. 사실 요즘도 내가 아이들과 함께 가끔 친정에 갈 때쯤이 되면 엄마는 미리 곰탕을 끓여서 고기 따로 국물 따로 얼러두었다가 집에 오는길에 가득가득 챙겨주신다. 아이들 밥해먹어기 힘들 때 한 번씩 주라고.
그 정성이 친정엄마는 대단한 거였구나. 진짜 엄마의
사랑이었구나. 내가 아이들 밥 해주느라 힘들다고 징징댄 건 별게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든든한 식량 하나 또 준비했다.
작은 어린이, 많이 먹고 얼른 뼈야 붙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