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나의 타이틀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자아실현? 사회에 이바지? 아니다.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지구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생명을 구하는 일도 아니다. 대단한 사명감도 없다. 그저 내 힘으로 나 하나를 책임지기 위한, 생계를 위한 일. - 김경희 <비낭만적 밥벌이> 중에서 -
요즘 나에게 딱 필요했던 말이다. 밑줄 쫙쫙, 별표 땡땡.
직장인이 되면서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이다. 그만큼 현재 직업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고, 보람도 얻고 싶고, 돈도 많이 버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싶다. 이게 무슨 뒷동산에 유니콘 목장 같은 소리인가.
인생에 대한 콩깍지는 벗겨진 지 오래인데 아직도 직업에 대한 콩깍지는 벗지 못했다. 완벽한 직업에 대한 숭상은 현재 직업에 대한 100퍼센트 불만족을 불러일으킨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업이 못마땅하니 삶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진다.
꿈을 좇아라! 도전하라! 참 이상적인 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쫓냐고요. 훌륭한 조언이지만 꿈과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우리는 전투력을 잃는다. 내가 꿈꾸는 완벽한 직업을 찾아 10년째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 결과 과감히 그런 직업은 없다고 단정 짓겠다.
좋아하는 그림으로 돈을 벌어봤지만 다른 사람 구미에 맞춰 그리자니 좋아하는 일도 한낱 노동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 입맛에 맞게 그리고 쓰자니 돈이 안되고, 설령 돈이 되더라도 완성도와 마감 스트레스는 또 어찌할꼬. 즐겁고 행복하게 돈을 버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없는 오아시스를 찾고 있자니 답답하고 허무하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직업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 내가 지구를 구하러 온 것도 아니고, 세상 사람 모두가 나의 글과 그림을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소소한 재능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찌감치 분수를 알자. 지구에 두발 딛고 사는 지구인으로서 내 입에 풀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으면 직업의 의미는 충분하다. 물론 여기에 '좋아하는'이 추가되면 더 좋겠지만 '좋아하는'을 직업으로 삼다 소중한 '좋아하는'까지 질릴 수 있으니 '좋아하는'은 어디까지나 '좋아하는'으로 두는 것이 좋다.
내가 꿈꾸던 완벽한 직업. 환상 속의 그대여 안녕! 전 이제 무념무상으로 생활비 벌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