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어진 길 끝에 누군가 서있나
손그늘 만들어 고개를 갸웃대지만
아니었나 네 잔상이 스치고 지난다
말없이 뒤돌아 걸어가다가
스치듯 만난 그때가 기억나
슬며시 짓는 미소에 너도 참 딱하다
한심한 나를 자책한다
거기에 있었다면
소리가 들렸다면
울림이 느껴졌다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었겠지
찾는다고 찾아지면
그게 너의 떠남의 이유가 아니었을 거다
티끌하나 없이 넌 가고 싶었을 것을
신발 하나 단추 한 개도 흘리지 않고
깨끗하게 사라지지도 않았을 테지
멀끔한 너는 성격도 모질어서
추억도 뽀드득 씻어 없애버리고 싶었는가
그리도 내가 보기 흉했을까
말할 수 없었다면
곱게 접은 종이에
한마디만 써주지 그랬어
너는 아니라고
아무래도 아니라고
그래도 탓하지 않으련다
여기에서 100년이 흘러도
난 기다릴 수 있을 거다
난 너밖에 모르니까
다른 것은 다 모르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