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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작가 Oct 29. 2019

김치에서 배운, 다름의 인정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더 불리하고 불편한 사람을 향하는 일

혼자 살고 있어 김장을 할만큼 김치 소비량이 많지는 않은 나는 그래도 가지런히 놓인 김치 모양이 예쁘다고 언제부터인가 포기 김치를 구매해서 먹고 있다. 도마에서 예쁘게 썰어 통에 담아두면 마음도 뿌듯하다. 정돈됨이 주는 아름다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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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구매하고 어느정도 익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잎을 하나 쭉 찢어 입에 넣는다. 시원하고 알싸한 맛이 입안을 휘감아온다. 때로는 아직 설익은 배추맛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역시나 시원하다는 느낌에는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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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칼을 꺼내고, 김치 포기를 꺼내 썰기 시작한다. 내가 사먹는 김치는 보통 3kg 남짓인데, 반으로 쪼개진 김치 포기가 5-6포기 들어있다. 한포기 두포기 썰어가다 보면 이내 잠시 멈추고 수돗물에 손을 헹군다. 손에 김치 물이 드는 것을 막기 위함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그게 아니다. 김치가 너무 차가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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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끝에서 입속에서 시원하다 느꼈던 김치는 내 손에게는 너무 차가운 존재다. 몇번씩 쉬어가며 김치를 썬 끝에, 유리 통에 가득 김치를 담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냉장고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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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대상을 보고 같은 사람인 나 조차도 내 손과 내 혀가 느끼는 바가 다르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면 오죽할까.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시대를 살고 다른 성별과 인종이라면 그 삶이 어찌 같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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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당연함이 누군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느끼는 불리함이 누군에겐 공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일수도 있다. 누군가는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모자라 자주 쉬어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너끈히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어 한번에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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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륜적인 일이 아닌 이상에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틀림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이는 다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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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름의 문제를 조금만 여유롭게 보아, '아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를 느끼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내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고, 기왕이면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더 불리하고 불편한 사람을 향하는 일. 노력한다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건 당연히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그 발을 디디는 일. 때로는 내 노력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일부의 존재에 상처도 받고 회의감도 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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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느낀 김치의 온도가 시원했다고, 왜 이정도 온도에 괴로워하냐며 손을 나무라지 않고, 다음부터는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를 써는 일로 조금은 더 나은 방안을 생각해 나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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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썰어 둔 김치가, 맛있게 익어가길 기대해본다.

내 생각도 맛있게 여물어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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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재성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하고 맥킨지 앤 컴퍼니 (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로 재직했다.

현재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짜고 있다.

저서로는 행동의 완결,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I 가 있다.


https://youtu.be/qj7xOkAj8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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