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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작가 Dec 25. 2019

82년생 김지영

당연하지 않은 당연한 일, 당연한 당연하지 않은 일에 관하여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글을 스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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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영화관에서 볼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다소 늦게나마 보게 되었다. 다만 반드시 챙겨보겠다는 다짐을 오늘에서야 지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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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장면이 넘어가는 내내 불편을 넘어 분노하게 되는 장면들에 견디기 어려웠고 부끄러웠다. 단순히 지금 누군가를 욕하는 일로 감정을 해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고통과 불편함을 준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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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성으로 태어났고 남성으로 살아오면서 누렸던 당연한 일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어가는 세상에 있다. 하지만 당연했던 일이 이제 당연하지 않게 변화한다고 해서 불만을 가질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껏 일방적으로 여성들이 감내해왔던 불평등과 불이익이 이제서야 조금씩 정상과 공정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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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먹으며 누군가가 이득을 취한다. 내가 무언가를 누리고 있다면 그로 인해 극도의 고통을 받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더 세심하게 살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성들 버럭대면서 개소리하지 마라. 겨우 알량한 성별적 우월을 가지고도 그만큼밖에 하지 못한 너의 무능함을 탓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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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예인이고 이런 영화에 제의가 왔다면 나라도 기꺼이 출연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내가 출연했다면 맘충이라 말하는 인간의 척추를 뽑고, 치한의 머리를 으깨는 등 장르가 다소 달라졌을 듯 하긴 하지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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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몇몇 장면, 아버지는 딸을 아낀다는 마음으로 내뱉었던 '니가 치마가 짧잖아' 등의 이야기는 지독하게 끔찍했다. 내가 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 따라왔던 치한의 머리통을 벽돌로 산산조각 내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딸을 양육하게 된다면 반드시 격투기 수련 시켜서 팔을 뽑든 척추를 뽑게 하든 단단하고 자기 방어권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켜야지. 물론, 그런 위험한 상황에 되도록 처하지 않게 내가 더 강하고 큰 영향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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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무의식 속에 내가 누린 특권을 당연하게 생각해온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성별 하나가 모든걸 가른다고 말할수는 없다. 그래서 남자는 절대악, 여성은 절대선 같은 이상한 구조에 여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체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서로 협력해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편가르기를 하고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성별이 많은 상황을 결정하는 일은 점차 줄여나가 결국 없애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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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가지기를 희망하는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더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육아는 돕는게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이며, 더 에너지 레벨이 높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내가 해낼 수 있는 최대한을 커버하며 어쩔 수 없는 영역만을 미래의 아내에게 요청하는 식이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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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빠지게 회사 다녀 돈을 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직장도 몇년이나 다녀본 사람인데, (라떼이즈 홀스다 에라)돈버는거 그렇게 안어렵다. 특히 그런 직장 아니고 대부분의 직장은 육아보다 훨씬, 아니 비교도 안되게 쉽다. 힘드니까 술마시고 늦게 들어온다고? 다 거짓말이다. 뭐가 힘들어. 그냥 술쳐먹고 싶으니 쳐먹는거지. 내 주변 여성 분들도 육아 휴직에서 돌아오시면 오히려 더 편안해 하신다. 회사일? 그깟게 뭐가 힘들다고 수백년간 대접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어렵지도 않은일 해대면서 앓는 소리 그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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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종의 문제가 그랬고, 신분의 문제가 그랬듯, 선거권이 그랬듯, 노예 문제가 그랬듯, 이 문제는 인류의 도도한 역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해결하게 될 문제다. 다만 우리는 지금 그 과도기를 지나고 있고,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해서 침묵하거나 지금을 당연시 여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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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나의 가족 테두리, 그리고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깊이 고민하고 실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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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전 태생이 가능성을 재단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되는데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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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언젠가는 내 사업체를 운영할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떤 조직을 구성하고 회시가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금부터 깊은 고민을 시작해서 꼭 완성할 생각이다. 나와 내 미래의 가정에 국한한 노력이 아닌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제도와 복지를 만들어 작으나마 이 세상이 더 나아지는데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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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혼자만 잘나 큰 줄 알았던 스스로를 깊이 반성하며, 지금까지 무탈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 더욱 감사하며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리를 하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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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크레딧, 공유 이전에 정유미를 먼저 띄워주어 진심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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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분들, 꼭 보셨으면 합니다. 불편한 감정이 드신다면, 지금껏 그 부분을 여러분이 당연하게 누려왔다는 반증이니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소 불편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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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성대결' '남자는 안힘드냐' '내가 여잔데 별로 안힘든데 왜 난리냐' 등의 말씀 하시는 분들은, 저와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실 생각이 없다고 간주해서 차단하겠습니다. 당신이 겪지 않았다 해서 세상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닙니다. 당신이 조금 불편한 감정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현재 진행형인 사람들이 있음을 제발 좀 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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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재성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하고 맥킨지 앤 컴퍼니 (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로 재직했다.

현재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짜고 있다.

저서로는 행동의 완결,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I 가 있다.



https://youtu.be/qj7xOkAj8ZI


새해가 닥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행동의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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