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WL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to owl May 10. 2022

내 하루의 삶을 1X만원에 팝니다 07...

나를 읊조리다...

아픈 다리는 조금씩 나아져갔다.

물론 아예 안 아픈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결 가벼워진 통증과 걸음걸이는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선사했다.

아직은 일할 수 있다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이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은 건지 비가 왔다.

하루 더 쉴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토요일 비라니!!!

일요일까지 쉴 수 있으니 나에겐 내 몸을 더 보살필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토요일 새벽…

이모부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진 옷을 다 입고 준비하고 있었던 터였다.

당연한 거겠지만 비 온다고 나 혼자 독단적으로 쉬겠다고 결정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4시 55분쯤 그에게 쉬어라 하며 전화가 왔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따뜻한 전기장판이 내 몸을 녹일 듯했다.


오전에 눈을 떴을 땐 이미 비가 그쳐 있었다.

이모네 식당에서 아점을 챙겨 먹고 다시 원룸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간은 천천히 갔다.

하지만 그것도 좋았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요.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게 얼마만인지…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는 게 나답다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있을 때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외할아버지를 모신 절에 한번 가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음 주는 외할아버지 제사였고 곧 어머니도 인천으로 올라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외할아버지를 모신 절로 향했다.

이모의 차 안에서 나눈 몇 마디 얘기들.

현재의 얘기부터 과거 나의 행적들…

얘기를 나누는 동안 느낀 건 이모를 비롯한 주변인들 눈엔 난 이렇게 비쳤구나 정도?

그들에게 난 수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인물이었다.

나의 십여 년의 시간이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매도당하니

나 자신이 그렇게 작고 초라해 보일 수 없었다.

이모에게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한들 변명처럼 느껴지리라…

난 이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스스로 나를 형편없는 이로 만들었다.


그런 우울한 기분과 상관없이 도착한 절의 풍경은 너무나 시원하게 주변을 보여줬다.

그중 인천 송도가 눈에 띄었다.

마천루의 높은 탑처럼 빽빽이 세워진 아파트들.

인간의 욕심이 하늘 높이 뻗어가는 느낌이랄까?

인천 상경 후 1주일도 채 안 된 나에겐 주변의 풍경부터 공기까지 모든 게 생소했다.


그렇게 다음 주에 있을 외할아버지 제사 접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의 시간이 지나 하루가 저물기 시작한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지인을 보러 서울에 가야 한다.

부산 촌놈이 이렇게 빈번한(?) 서울 방문이라니…

지리적 가까움으로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타지 생활을 하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다음날 몇 년 만에 다시 방문한 홍대에서 그를 만났다.

예전 부산 중앙동에서 카페를 하면서 손님으로 왔던 그가 지금은 나에게 둘도 없는 친한 동생이 되었다.

인천으로 상경할 때도 도움을 준 그에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그가 나에게 고생이 많다며 식사를 대접해줬다.

미안한 나는 커피는 내가 사겠다며 홍대와 합정 일대를 둘러보며 골목에 있는 커피점에 들어섰다.

휴일의 서울은 많은 사람 그중 커플들이 이곳의 분위기를 보여줬다.

1주 만에 만난 그에게 난 현장에서의 있었던 일을 쉼 없이 얘기하며 나름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사소한 대화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는 나에게 그의 존재는 확실히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데 필요한 사람이었다.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얘기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 등 끊임없이 얘기를 나눴던 듯싶다.

유감스럽게도 시간 역시 내가 말하는 속도만큼이나 빨리 흘러갔던 터라 저녁 무렵 우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인천으로 돌아가는 동안 맘 한편에 있는 어두운 기운이 또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난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항상 시간이 남을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준 답을 읊조렸다.

‘돈… 다시 가게를 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벌어야 할 돈…’

‘어머니 노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그는 힘들면 목적 또는 목표를 생각하라고 했다.

소위 ‘노가다’라 불리는 현장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그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힘들면 도망치고 싶은 건 당연한 거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하지만 목적이나 목표가 있다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지 않을까 하고 말한 그였다.


그렇다.

그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잡아두고자 난 앞의 두 가지, 가게 권리금과 어머니 노후로 내 마음에게 협상을 한 것이다.

나의 목적을 몇 번 읊조리자 스멀거리는 어두운 기운은 걷혀가고 이내 환한 지하철 내부로 돌아왔다.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이내 시선을 돌려 차창밖으로 향했다.


3월 말의 일요일 저녁은 너무 쉽게 해를 쫓아냈다.

순식간에 레일에 깔린 어둠…

어두워진 도로를 주광색 헤드램프와 빨간색 테일램프로 적시는 자동차들…

그 옆에 네온사인을 감싼 빌딩들…


밖의 어둠 덕분에 지하철 실내 유리창에 내 모습이 선명히 비친다.

가끔은 흐리멍덩하게 보여도 좋을 텐데…

유리창을 반사하는 나의 눈동자는 어디를 찾아 헤매고 있을까?

벡터 그램처럼 쭉 뻗은 레일과 반대로

나의 눈빛은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파문을 일으키며 흔들리고 있으리라…

3월에 외할아버지를 모신 절... 저 앞에 송도신도시가 보인다...


https://brunch.co.kr/@pluto-owl/406

https://brunch.co.kr/@pluto-owl/405

https://brunch.co.kr/@pluto-owl/403

https://brunch.co.kr/@pluto-owl/402

https://brunch.co.kr/@pluto-owl/401

https://brunch.co.kr/@pluto-owl/399


매거진의 이전글 내 하루의 삶을 1X만원에 팝니다 0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