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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Dec 14. 2022

융성하거나 멸망하거나

한겨울 흩날리는 금빛 이파리로

온 도로 반짝이는 가운데

걸출한 사진처럼 현실이자 예술 같은

하이얗고 하이얀 구름 밭 아래서 융성하거나     


그 어여쁜 영광에 기어이 오르지 못해

후들거리며 어설피 중턱에 자리 잡을 바에야

계단 모두 흔적 없이 부서져 내려

척박한 땅의 갈라진 계곡 밑으로 멸망하거나     


긴 밤 지루한 어둠마저 가로질러

울음 잊은 아이들과 숨바꼭질하고

노오란 대낮의 사나운 더위 외면한 채

산들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가벼이 행복하거나     


그 달콤한 웃음의 한 조각 끝내 뺏기어

투명했던 눈 안에 타협의 색 담아낼 바에야

시커먼 주름으로 얼굴 가득 구기고

눈물로 광활한 대양 이루어 무겁게 비통하거나     


퍼져가는 황혼의 호박색 아지랑이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다섯 갈래 꽃잎 쥐고

이슬비처럼 설레는 걸음 총총 내디뎌

잊힌 꿈에 잠시 보았던 은하수로 만개하거나     


그 신비한 빛무리 구석의 작은 틈으로

별 하나 떨어져 어둠의 옷소매에 스칠 바에야

공허보다 더 공허한 구멍으로 모든 것 던져 버리고

부스러기 한 알 용납지 않는 중력으로 소멸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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