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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29. 2022

"심심한 게 뭐지?"

나만의 혼자 놀기 비법

골목 어귀를 기웃거리며 쏘다니던 아이는 전봇대 밑이나, 쓰레기통 옆을 지날 때마다 눈이 더 커진다. '오늘은 딱 10개만 주울 거다.' 10개면 100원, 100원이면 색칠공부 한 권이나 조립 로봇, 30원짜리 딱지를 세 장이나 살 수 있다. 떡볶이 한국자에 납작 어묵 한 장, 야끼만두 하나를 먹을 수도 있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강변 연립 동과 동 사이를 지나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뻥튀기 천막이 있다. 이 시간 이곳을 지나다 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치면 득템의 찬스가 생긴다.


"얘~ 뻥튀기 먹을래?"

"네~"


앗싸~ 오늘도 득템이다. 아저씨는 밉살맞게 구겨져 나온 불량 뻥튀기를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하신다. 한거슥 봉다리에 담아두고 오가는 아이들에게 두어 장씩 나눠주며 생색내기 좋아하는 아저씨는 간식이 귀한 아이들에게 보석보다 귀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돌아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눈에 딱 들어온 진귀한 것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횡재수가 있나 보다.


"앗싸, 50원!"


콜라, 사이다병은 10원, 맥주병은 20원, 훼미리 주스병은 50원이다. 학교 마치고 집에 들러 냅다 가방을 던져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오늘도 병을 주워 100원을 만들어야 한다. 고물상 아저씨가 주워가기 전에 온 동네를 돌아야 하니 마음이 바쁘다. 훼미리 주스병을 주운 날은 개이득이다. 9살 아이가 무거운 병 10개를 한 번에 들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병 줍기와 슈퍼를 오가며 100원을 채우고 나면 문방구로 냅다 달려간다. 애써 모은 100원은 쓸모가 참 많다.


100원을 모아서 살 수 있는 것은,


색칠공부

12색 지구 색연필로 테두리를 진하게 두르고 안쪽을 채워가며 그라데이션하면 예쁜 그림이 완성된다. 맘에 드는 그림은 오려서 종이인형으로 만들어 놀았다. 매일 한 권씩 색칠하다 보니 어느새 색칠의 달인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나만큼 색칠공부를 잘 칠할 수 없을 거라 장담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 그 때문인가? 나는 지금도 색칠공부를 한다. 번호대로 칠하는 거지만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명화들이 완성되고 난 후의 성취감은 대단하다.


어릴 적 색칠공부와 유화 '샹제리제 거리에서'

 

종이인형

인형그림의 목 뒤쪽과 어깨쪽 하얗게 올라온 옷 입히기 여밈 부분에는 스카치테이프를 꼭 붙인 후 오려야 한다. 안 그러면 몇 번 놀지도 못했는데 찢어지기 일수다.


종이인형을 방의 네 귀퉁이에 세팅하고 이 집 저 집 놀러 다니며 혼자놀이를 했었다. 한 번은 새벽녘 일어나 혼자 인형놀이를 하다가,


"불이야~ 불이 났어요. 모두 일어나세요. 큰일이에요..."


소리를 지르며 인형놀이에 심취해있는데 건넌방 아버지께서 뛰어오셨다.


"불? 어디? 괜찮아??"


다급한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눈을 동그랗게 뜬 나만 덩그러니 있던 그 상황이 그려진다. 그날 나는 아버지께 죽도록 혼이 났다. 불이난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스치고 난 후폭풍으로 꼭두새벽 온 가족을 깨워 대피하도록 만든 책임을 막중하게 지게 된 훈육이 이어졌고 9살의 흑역사로 길이 남게 된 추억 한 자락이다.


인형놀이를 극진히 즐기던 어린 나는 자라서 인형을 직접 만들어 놀게 되었다. 임신 중 태교 삼아 만들기 시작했던 데디베어 인형은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도 하고, 앵글이에게 애착 인형으로 안겨주기도 했다. 앵글이를 키우며 사 모은 미미 인형은 10개가 넘는다. 아마도 이건 의 사심이 깃든 장난감인 것 같다. 종이인형 놀이에서 미미인형 옷 입히기로 대폭 성장한 혼자 놀이이다.


종이인형 / 내가 만든 테디베어


조립 로봇 

조립 로봇은 플라스틱 판에 붙어있는데 작은 조각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완성할 수가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부속인 줄 모르고 휩쓸려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날이면 공든 탑이 무너지고야 만다. 플라스틱 판에서 하나하나 떼어 홈에 딱 맞추면 머리, 몸통, 팔, 다리가 만들어지고 순서에 맞게 끼우면 완성이다. 완성된 로봇은 종이인형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펼쳐낸다. 내가 만든 세상 속 로봇은 로봇 태권 V나 짱가보다 힘이 세다.


조립 로봇을 만들던 어린 나는 동글이를 키우며 변신로봇 시리즈와 레고 조립으로 한풀이를 했다. 피는 못 속이는지 동글이는 세 살이 되던 해부터 혼자 척척 변신 로봇을 조립했고, 4살부터 시작된 레고 조립은 초초 집중력을 발휘하여 8시간 꼼짝없이 앉아 완성될 때까지 잠도 안 자고 만들어냈다. '아무래도 동글이는 레고의 달인가 봐~'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한 레고는 네오박스로 다섯 박스가 넘는다. 지금은 게임 세계에 빠져든 동글이라 더 이상 레고 조립을 하지 않는다. 쌓인 레고 박스를 보며 '아... 저게 다 얼마야...' 하며 세속적인 밑천 타령을 하곤 하지만 가끔은 내가 만들며 놀고 있다. 혼자놀이에 이만한 것도 없다.


추억의 조립로봇 / 변신로봇과 레고 시리즈


원형 딱지

딱지는 50원짜리 커다란 딱지와 30원짜리 작은 딱지가 있었는데 '별 많이, 별 적게' 접기 놀이할 때는 작은 딱지가 좋지만, 새끼손가락을 꽂아 날려 멀리 보내기 놀이를 할 때는 큰 딱지가 대박이다. 딱지놀이는 동네에서 나를 이길자가 없었다. 가끔 옆집 형범이 엄마가 울고 있는 형범이를 데리고 와서 역정을 내곤 했다. 분명 시합을 하고 이겨서 따낸 것인데도 형범 엄마의 우기기 대작전에서는 항상 패전자가 되고 만다. 그건 다 울 엄마 때문이다.


'그냥 줘버려!'

'그냥 미안하다고 해!'


울 엄마는 왜 내 편을 안 들어주고 맨날 형범이 편을 드는지 모르겠다. 정말 짜증 난다. 그리고, 형범이 엄마는 왜 맨날 나더러 싸납쟁이라고 하는 걸까? 형범이가 모지리 칠푼이인 게 내 탓도 아닌데 말이다. 걔는 딱지놀이, 공기놀이, 구슬치기를 진짜 못한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꼭 끼어든다. 다 잃고 나면 징징대거나 펑펑 울며 엄마에게 이르러간다. 그러고는 꼭 나한테만 심술이다. 같이 놀이한 다른 친구들에게는 안 가면서 우리 집에만 쳐들어온다. 이건 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줘버리라고 하니까 형범이 입장에서는 개이득인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울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딱지놀이 대신 '인터넷 고스톱'이나 '카카오 게임'을 한다. 동글이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30~1시간 가량의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시간을 정해두고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훅 간다. 아무 생각 없이 밤을 꼴딱 셀 수도 있으니 시간제한은 필수다. 최근에는 고스톱을 치지 않는다. 게임 재능은 없는 모양이다. 모아뒀던 쩐을 다 잃었다.


추억의 딱지 / 인터넷 게임

9살의 나는 매일 병 줍기를 하러 동네를 쏘다녔다. 엄마가 우리 집은 가난하니 용돈을 줄 수 없다고 말한 적은 없다. 눈치가 빤해서 방 한 칸 사글세를 사는 우리 집 형편에 용돈 달라기 미안한 조숙한 9살이었을 뿐이다. 떼쓰고 조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일찍 철드는 건 어린아이에게 좋은 조짐은 아니다. 그 나이에 누릴 만한 것들을 흠씬 누리고 자라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이들이 조숙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딱 그 나이만큼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응석을 받아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만히 못 있는 병에 걸린 나는 정말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종일 손을 꼼지락 거리다가 손가락을 관장하는 인대 파열로 수술받기도 했다. 그림 그리기, 뜨개질하기, 수놓기, 빵 만들기, 완결된 드라마 정주행 하기 등 혼자 있어도 놀거리는 충분하다. 팔 수술을 하기 전에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집안 세간살이를 이리저리 옮기며 구조 바꾸기를 즐겼다. 침대도 번쩍번쩍 들어 옮기는 괴력을 발휘했고, 소파 옮기기 정도는 껌이다. 이리 몸을 못살게 구니 팔뚝이 남아날 리가 없다. 수술 후 팔을 잘 사용하지 못하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하고픈 일과 재미진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른팔을 못쓰게 하다니, 잘 못 사용한 건 나면서 애꿎은 의료진을 원망하는 모순된 생각이 연이어진다.


요즘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마을 수업을 핑계로 샘플 만들기를 하다가 멈추지 못하고 계속 만들고 있다. 이러다 또 팔이 말썽을 부릴까 염려되지만 꼼지락 거리기의 묘미에 중독돼 버리면 약도 없다. 생산의 즐거움은 대단하다. 만들어도 잠시 내 곁에 머물다가 친구의 손에 들려지지만 나눔의 기쁨이 주는 행복감은 남다르다. 이 맛에 나의 혼자놀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코바늘 가방뜨기

이번 주 주제는 '나만의 혼자 놀기 비법'입니다. 한 달 동안 글 소식을 전해주신 김장훈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보글보글'에 많은 관심과 꾸준한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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