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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Sep 30. 2024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를 돌아보는 용기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고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고 나니 두 인물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테리사 화이트 부인과 점핑. 


 "어이, 거기, 저리 가지 못해!" 불현듯 감리교 목사 사모 테리사 화이트 부인의 목소리가 버스터 브라운 신발가게 쪽에서 들려왔다. (중략) "메릴 린, 아가, 저런 여자애 근처에는 가지 마, 엄마 말 알았지. 더럽잖아."


점핑의 부두를 찾을 때마다 카야는 훤히 잘 보이는 창가에 자랑스럽게 자기 책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가 딸의 책을 자랑하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 카야는 가족에게 버림 받은 소녀다.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도 넷이나 있었는데 모두가 카야를 습지의 판잣집에 내버려두고 떠나 버렸다.


카야는 초등학교도 가기 전인 아주 어린 나이부터 습지의 생물들을 가족 삼고 벗 삼아 혼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해 간다. 


식량을 얻기 위해, 생존의 필요를 위해 카야도 마을로 간 적이 있었다. 


동정과 의심의 눈길만 주었을 뿐, 마을의 그 누구도 이 불쌍한 소녀를 돌보지 않았다. 


오로지 유색인 마을의 점핑만이 카야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도와주었다. 






소설 속 세계에서 빠져나온 나는, 아무래도 테리사 화이트 부인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마음 편히 비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두려움이 내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는 이에게서 내 가족과 내 울타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아무리 어리고 무해한 존재일지라도 혹시나 내 것의 안전을 뒤흔들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래서 맹수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듯 멀찍이 떨어져 지켜볼 수밖에 없는 태도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비난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많이 안타까웠다. 


두렵지만 그래도, 이 낯설고 어린 아이에게 누군가 가까이 다가갔다면, 맨발에 신을 신기고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먹을 것을 주며 안심시켰다면, 불행을 겪은 카야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두려움을 넘어선다는 건 위대한 일이지만, 거대한 용기가 필요한 일은 아니다. 






5년 전, 


어린 첫째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갈 때마다 혼자서 킥보드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7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빠한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했대요."


라고 거리낌 없이 가정사를 이야기하며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다니지 않던 아이.


아마도 집에만 있기 심심하고 외로워서였겠지. 


혼자 킥보드를 타고 나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동네 아줌마들에게 말을 걸고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아기들과 놀고 싶어 했었다. 


소설을 읽으며 문득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에 갔을까? 


벌써 12살이 되었을 텐데 잘 지내고 있을까?


친구들이 생기고, 선생님이 생겼을까? 


왜 나는 그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을까?


집에 초대해 간식이라도 먹이고 놀아줄 수 있었을 텐데.


내 아이만 보느라 그애의 눈을 외면했던 내가 떠오르면서 한없이 미안해졌다. 


다음엔, 용기를 내야지. 


카야같은 아이를 다시 만나면, 그때는 두려움을 조금은 넘어봐야지. 


점핑의 마음과 행동을 가슴에 새겨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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