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발명가, 진명석의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이 글은 내가 한국의 발명왕 진명석의 의뢰를 받아서 쓰던 자서전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뒤 집필을 한달만에 마친 자서전이자 전기로 기록될 것이다.
살아 생전 그가 남긴 특허품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300여종이 된다. 그것도 그가 직접 특허청에 등록한 것들만 포함한 수치이며, 비공식적인 발명품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 가장 가깝게 지내온 지인 중에 한명으로써 그가 걸어온 발자국들과 그가 가진 발명 천재로써의 내적인 자질들, 그리고 그의 말년과 최후를 목격한대로 서술하려고 한다. 물론, 나는 한명의 사람으로서 나의 의견이 다소 개입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에 진명석과도 같은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고, 그와 같은 천재적인 사람이 자라날 토양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게 될 것을 바랄 뿐이다. 부디 나의 글이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의 모든 민족들에게 유익하게 읽혀지기를 소망한다.
진명석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진명석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와 같이 위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위인이라는 말은 풀어 쓰면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사실 우리 모두가 각자 삶에서 조금씩 위대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풀어 쓰면 단어의 본 의미를 해치게 된다 … 어쨌든 진명석보다 위대한 사람을 한 명을 말해야 한다면 아마 조선시대 중기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진명석이 한국에서 차지하고 있던 입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세계 곳곳에 끼친 덕은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 못지 않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창조적인 일에 두곽을 드러냈고, 청년때는 이미 전업 발명가로써 본업에 매진하였으며, 중년 무렵에는 - 진명석에게 중년을 뺀다면, 앞서 말한 칭송의 말들이 약간 과장일 수 있다 - 그의 업적과 재능이 활짝 꽃피워 만방에 빛을 나눠주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며, 그를 이 대한민국 땅에 나고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진명석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그의 생애와는 꽤 대조되게도 비극적이었다. 서론에 불과한 이 글에서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는 어떠한 복합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조금씩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에도 몇 번의 재기를 시도하였지만, 그의 지인과 가족들도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갖지 못했던 '특정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이전의 명망을 잃고 말았다. 물론 그의 업적만큼은 하늘이 두쪽이 나도 가릴 수 없다. 그러나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해당 사건을 계기로 그는 한국의 위대한 정치인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유명한 방송인, 세계적 수준의 스포츠 스타들에 비하여 못 미치는 평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아예 인간적인 신용을 잃었던 것이다. 어떠한 정치인은 말년의 그를 겨냥하여, 악의 축, 사탄의 아들로 규정짓기도 했다. 특히 그의 직업적 커리어 상으로는 그가 아직 빈곤과 기아의 문제가 아직도 큰 화두인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김치 사업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인의 기호성을 한국화(韓國化) 하고자 한 사건과 그에 대한 진명석의 발명품은 진명석의 공적에 큰 먹칠을 했다.
그밖에도 그의 인간적인 됨됨이와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서론 단계인 이 글에서 나눌 수는 없을 것이고, 그의 됨됨이를 논하는 것은 그의 업적을 기리려고자 하는 이 글의 소기의 목적에도 완전히 반대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면밀하고, 분석적으로 그의 업적을 논하고 그 이후에 그의 인간적인 삶과 사랑과 죽음과 일과 발명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그가 발명한 휴대용 에어컨(일명 에어워크)과 순간냉각기(일명 마이크로에어)를 비롯한 5가지의 위대하고 창조적인 발명품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니, 한국의 윌리스 캐리어의 이야기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