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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n 03. 2023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20년 뒤에 나는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봄에는 배추흰나비, 여름에는 호랑나비를 키워 날리는 할머니가.




  첫 아이가 다섯 살 때는 정원이 있는 1층에 살았다. 오른쪽 화단은 삼색버드나무와 꽃은 피는 작은 식물들을 심었고, 왼쪽 화단은 소소한 텃밭으로 토마토 모종 3주, 파프리카 2주, 맵지 않은 고추 5주와 케일, 상추를 심었다. 심을 때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야채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고, 서리가 내릴 때까지 언제나 식탁에는 텃밭에서 갓 딴 채소가 올라와야 했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물을 주고, 민달팽이가 나오는 시기가 되면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나서 민달팽이로부터 우리 집 텃밭을 지켰다. 낮에는 동박새와 직박구리가 나무 사이를 다니며 노래를 불렀고, 꽃이 피니 도심에서는 잘 보기 힘든 흰나비와 노란 나비가 정원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텃밭의 주인이 바뀔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캐일 사이를 날아다니던 배추흰나비가 꼬리를 내리며 알을 낳고 가는 것이다. 

  

세상에! 나비가 알을 낳는 것을 보다니!


  평소에도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우리 집 식탁에 오를 케일을 모두 나비가 낳고 간 알에서 깨어날 애벌레들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케일 잎 뒷면에 붙여 둔 알을 모두 세어보니 20여 개가 되었다. 텃밭에서 천천히 자라는 케일로는 세어보지 않아도 먹이가 부족할 게 뻔했다. 당장 번개시장으로 달려가 있는 케일 모종을 모두 사 왔다. 배추흰나비가 맡긴 알들을 모두 다 길러내려면 따뜻하고 천적이 없는 집 안에서도 길러야 했다. 이날은 참 특별했다. 텃밭의 주인이 바뀐 것뿐만 아니라 이날부터 해마다 봄, 여름에 나는 나비들의 엄마 노릇을 하게 되었다. 올해로 10년이 되니,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가 맞겠구나!


  4월이 되면 배추흰나비 알을 채집해 기르는 것을 시작으로 늦은 여름 마지막 호랑나비를 방생하는 것까지 한해의 반을 나비와 함께 보내고 있다. 엄마 나비가 낳은 100개의 알 중 한 두 개의 알만 어른 벌레가 되는 나비가 된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는데 이렇게 생존율이 낮은 나비를 우리 아이의 아이들은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자식의 자식을 위한 마음이었다. 지금은 기후 위기로 빠른 속도로 멸종하고 있는 나비를 돕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아침마다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일을 기쁘게 하고 있다. 10년 차가 되니 나비를 기르는 일에 지식과 경험이 쌓여 능숙한 나비의 할머니의 할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호랑나비의 날갯짓 @무지개인간


  토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7시가 되니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오니 식탁 위에는 먼저 일어난 생명이 창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젖은 날개를 말리고 있었다. 올해 다섯 번째 호랑나비가 우화 한 것이다. 나비는 몇 년을 보아도 참 예쁘다. 손가락을 내미니 여섯 개의 다리로 올라와 손끝을 간지럽힌다. 부드러운 곡선의 더듬이도 예쁘고, 돌돌 말린 입도 예쁘고, 길쭉길쭉 다리도 예쁘고 복슬복슬한 가슴털도 귀엽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날개는 말해 뭣하리! 작은 날갯짓에 손가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새어 나온다.


강아지 같아요!


  어제 세상에 나온 호랑나비를 관찰하고 자연의 품으로 함께 보내 준 예원이가 한 말이 딱 정답이다. 귀는 없지만 말은 알아들을 것만 같아 창문을 열기 전 다정한 말을 늘어놓는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 결혼도 하고 알도 많이 낳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대. 걔를 조심해.


  알아들었는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넌 눈이 많으니까(겹눈) 분명 잘 살피고 다니겠지? 할머니의 잔소리를 잔뜩 들었으니 이제 밖으로 가보자! 손가락 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호랑나비는 창문을 열자 세상 속으로 날아들어갔다. 다음 주에 동생들이 태어나면 왼쪽으로 날아가면 언니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해줄게.

   




  나비의 한살이는 매년 신기하고 감동적입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5령 애벌레는 먹이가 모자라면 배고파 죽는 대신 일찍 번데기가 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런 애벌레의 선택을 보며 사람이 가장 최상위에 있는 동물이 맞는가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다음 세대를 위한 생존에 맞춰진 곤충들의 단순한 삶은 저에게 '기본에 충실하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일러줍니다.


  10년째 연례행사로 나비의 알을 채집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며 고민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람의 손을 넣어 자연의 순리를 거르는 것인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래도 산책길에 만나는 나비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오늘 세상에 나온 호랑나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였습니다. 번데기가 되는 과정에서 몸을 묶은 실이 떨어진 것이죠. 이럴 때는 완전한 번데기의 상태가 된 뒤 번데기집을 만들어주면 정상적으로 우화(날개돋이)하더라고요. 자연에 두었다면 먹이가 되었을 것인데 다행히 하늘을 날아볼 수 있었습니다.

   

호랑나비 번데기 @무지개인간


  

  지난주에 세상에 나온 호랑나비의 성장 동영상 일부를 함께 올립니다. 

  자연의 신비를 마음에 담으실 수 있길 바라요. 


호랑나비 애벌레 @무지개인간
호랑나비 날개돋이 @무지개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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