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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an 13. 2020

요즘 애들에게 배우는 싸움 레시피

닉네임 "비둘기"님께 드리는 감사

'한남'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악플을 충만히 받았지만 그리 아프지 않은 건 논리가 하나도 맞지 않아서였다. 악플이 아프려면 나도 인정이 되는 약점을 찔러야 되는 데 나는 '이혼녀', '정신승리' 오진 '재혼녀'라고 비난을 해도 그게 뭐 약점인가 싶으니 아플 리가 없다.


전남편에게 재결합 제안을 했다가 대차게 까인 글이 카카오 채널에 공개되면서 구독자가 1000명이 늘었다. 300개의 악플보다는 조용히 응원해 주시는  분이 훨씬 많다는 것에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싸움의 기술을 가르쳐 주신 분이 있어서 이 글로 그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비둘기'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이다.  오전 몇 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악플을 다는 남자 독자들을 상대해 홀로 싸워 주셨다.


전남편이 '비둘기'라는 단어를 '비기'라 우기며, 들판을 날아다닌다고 '비들기'라  말한 적이 있다. 나에게 비둘기라는 단어는, 전남편을 연상시키며 '비들기'가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게 하는 단어였다. 이분 '비둘기'야 말로 홀로 들판에서 날아다니며 유유히 싸움의 즐거움을 알려주신 '비들기'같은 독자님이다.


김효철이란  분이  고맙게 내 글을 읽어 주시고  댓글도 남기셨다.


'김효철'이라는 분이 나의 글에 태클을 단 포인트는 내가 재결합을 제안 했다가 거절한 전남편을 한남으로 비하했다는 점이었다, 그 말에 '비둘기'님은 나의 다른 글을 읽어 보라며 정중하게 설득을 했다.




비둘기Dec 30. 2019

이분 지난 글을 읽어보니, 전남편은 외도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아이에게 ‘너희 엄마가 애교가 없어 잠시 한눈을 팔았다’고 아무 일 아닌 양 얘기했단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개인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전남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득달같이 비난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모든 남자를 보고 한남이라고 얕잡아 표현한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뭔데 전남편이 글쓴이보다 낫대요? 그것도 악플이에요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외도 앞에도 좋은 전처 코스프레하며 가식 떨 수 있는지 여유로운 여러분들이 부러울 지경이네요



비둘기Dec 30. 2019

@김효철’외도했다고 해서 따로 살림 차려서 재혼한 것도 아닌데’라는 구절에서 당신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상식이 부족하며 공감능력을 상실했는지를 실감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을 이해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까지는 상당히 정중하게 '습니다'체를 써서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김효철'이라는 분이 점점 내 원글과는 상관없는 논리로 뻗쳐 갔는데다가 무례해지기 시작했다. 



김효철Dec 30. 2019

@비둘기 외도했다고 해서 한남으로 비하하면 되겠니? 그것도 전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데...



비둘기Dec 30. 2019

@김효철 두 아이의 아빠씩이나 되는 사람이 외도를 하면 되겠냐? 너는 질문 자체가 틀렸어 더 살고 와라. 일단 틀니 3주 압수


여기서부터 '비둘기'님의 명랑함에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본론에서 벗어난 억지에, 상대가 사용한 언어로 논리의 허점을 찔러주는 신공을 발휘해 주었다. '비둘기'님의 주옥같은 댓글들은 적어 놓았다가 사용하고 싶은 기술들이 많았다.



'김효철'님은 '비둘기'님에게 나이가 어린것 같다며 '꼬마'야 세상을 더 배워오라고 했다. 그에 답한 글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게 해 주었다. 앞으로 누군가 대뜸 반말을 하며 훈계를 하면 사용할 있는 기술인 같다.




비둘기Dec 30. 2019

@김효철 너 이게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우리 가족 다 같이 그 옛날에 피난 와 이 지역서 5대째 같이 사는 집안 우리뿐이야. 까불지 마라. 종로에서 만나면 핸드폰 압수한다.. 내가 지하철 타면 넌 바로 자리 비켜줘야 돼 얼굴 안 보인다고 꼬마라고 하면 큰일.. 내가 말을 좀 잘한다 뿐이지




싸움이 논지를 벗어나서 상대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 싸움은 의미가 없어진다. 의미 없는 싸움에 진지하게 논리로 대응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화를 내는 것도 지나친 에너지 소모이니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를 발휘해야 할 일이다.


싸움을 통해서 내가 놓쳤던 것을 알게 되고, 상대방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가치가 있는 건강한 싸움이다. 건강한 싸움을 거친 후, 내 의견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얼른 바꿀 수 있는 유연성도 키워야겠다.


말하면서 내 논리가 꼬이기 시작했는데도 우기려 할 때, 목소리가 커진다. 또는 나이를 들먹이며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말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내 글에 억지 댓글을 단 사람들도 누군가의 아빠이고 남편이고 직장 상사일 텐데, 현실에선 부디 다르길 바랄 뿐이다.


들판에 꽃이 똑같은 색으로 피고 똑같은 키로 자랐다면 그건 인공적이어서 억지스럽다. 크고 작은 꽃에 초록색 ,연두색 잎들이 어우러져야 조화롭고 풍요롭다. 들판의 꽃들 중에는 간혹 가시가 있는 것도 있고 향이 좋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 꽃은 그런대로 자기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사연이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래서, 그 사람은 그래서, 저 사람은 저래서 다 나름의  색을 내며 피어 난다. 그 색대로 이뻐 해 주자.



빨간 꽃, 노란 꽃, 키 큰 꽃, 작은 풀들이 모두 다르지만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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