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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an 15. 2020

그나마 공평한 노후 대책

건물도 연금도 없는 나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들

친구가 건물을 샀다는 말을 듣고 한 일주일 간 우울했었다.  돈에 욕심이 없어서 돈을 따르지 않고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고 믿었다. 그런데 친구의 건물주 소식에 왜 허탈감을 느끼는지 나 자신에게 놀랍고 실망스러웠다.


일주일 간 우울과 불안이 섞인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마음의 정체를 들여다보았다. 우선 드는 마음은 그 친구가 20년간 성실히 일을 했고, 젊을 때부터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더니 결국 해냈구나, 하는 장한 마음이었다. 거기서 마음이 멈춰야 했는데, 내 마음은, '그럼 난 뭐 했지?'에 다다랐으니 우울해진 것이다.


역시 비교는 행복을 빼앗아 가는 도둑이다. 친구가 '건물주'라는 목표를 향해 부동산을 사고파는 동안, 나는 헛 발질을 한 것만 같았다. 나도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살았는데 말이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어, 바느질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가꾸어 온 내가 기특하다고 자부했건만 갑자기 시시해 보였다.


부동산을 보러 다니고, 대출을 받고 계약서를 쓰는 친구의 모습에 나를 대입시켜 보았다. 그림이 안 나오는 걸 보니 내 길이 아닌 것이다. 쓸데없는 비교를 해서 내 길이 아닌 걸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어야지 드레스를 예쁘다고 부러워하는 격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친구는,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가 노후대책이 되어 든든하고 안심이 될 텐데 나는 무엇으로 노후 대책을 할 것인가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과 바느질을 생계형으로만 한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재미까지 느끼고 있다. 이 일을 앓아누울 때까지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최대한 건강한 육신을 지키는 일이다.


아침마다 뒷산을 오르고 주말이면 수영을 간다. 요즘은 에어로빅을 시작했다. 저녁마다 남편과 춤을 추러 간다. 운동은 내 몸을 움직여 내가 할 수 있는 대책이니 참 고맙다. 운동이 성형처럼 돈을 들인 만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부자들만 건강할 것이다. 내 수고로 땀을 흘려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운동이라는 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019년에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가 독서 모임을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모인 사람 모두 책을 읽고 얘기할 사람이 없어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어려운 책을 강제로 읽게 만드는 힘도 있고, 의견을 나누다 보니 내가 깨닫지 못한 부분도 알게 되어 기쁨이 크다. 깨달은 바를 실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까를 많이 토론한다. 책을 읽었다고 잘난 척을 할 용도도 아니고 자랑할 곳도 없는 주부들이다. 내 삶에 변화를 가져 보자는 게 우리 독서 모임의 목적이다.


내가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유튜브에서 보는 줄거리 요약 영상은 어디 가서 읽은 척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감동과 깨달음이 없다. 결국은 내 수고만이 성찰의 즐거움, 깨달음의 환희를 준다. 독서라는 참 공평한 노후대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서양 속담에 가난한 장님 부부야 말로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한다. 서로의 외모도 배경도 몰라야 그 사람의 내면을 보게 되고 그때 하는 사랑이야 말로 진짜라는 것이다. 돈이 없고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진정한 사랑을 할 조건이 갖추어졌다. 나와 비슷한 코드의 사람들과 나누는 사랑은 진짜이니 맘껏 사랑만 하면 된다.


젊은 날에 예쁜 걸로 경쟁을 해 보려 했지만 진작에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지적인 걸로 존재감을 느껴보려, 책을 읽고 공부를 했지만 그건 연애에는 단점이 되었지 결코 장점이 되어주지 못했다. 다만 내가 모르는 게 엄청 많다는 '주제 파악'은 확실히 되었다.  또한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데 미모까지 되는 여자가 너무 많아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서른이 넘어서 깨달았다. 이제는 따뜻함넓은 이해심 외에는 경쟁력이 없다.


이혼으로 본의 아니게 겸손해지고 가진 게 없어 마음을 퍼주며 나눈다. 위자료를 받았을 때, 아버지가 부동산에 투자를 하라고 하셨었다. 아버지의 충고를 귓등으로도 안 듣고 간을 키우러 공부를 하러 갔으니, 간은 친구의 건물만큼이나 내게 노후 대책이 되어 줘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설렘으로 나이를 맞이해야 마땅한 것이다.


건물주가 된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부동산을 살 것인가 공부를 하러 갈 것인가 기로에 서면 똑같이 모험을 떠났을 것 같다. 나는 나 답게 살아온 것이고, 지금의 내가 좋다.  


운동에서 오는 에너지, 독서 모임에서 받는 깨달음, 사람들과 사랑하며 얻는 기쁨은 나의 노후 대책이 되어 줄 것이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빠져있는 내 모습이, 내 눈에도 멋져 보여 참 다행이라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나의 인생을 지어가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살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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