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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an 17. 2020

결혼사진을 태우며

사진을 태울 결혼을 왜 했을꼬?

재혼을 한 지 만 5년이 되었다. 점쟁이가 사주에 남편이 없다고 했는데 다행히 둘이나 있으니 감사하다. 현재의 남편과 어떤 방식으로 이별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사랑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누려 보련다.  


재혼을 하기 전 혼자서 집을 볼 일이 있었다.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던 집에는 큰 화목 보일러가 있다. 아버지가 일 년 동안 땔감을 장만해 놓으셨다가 겨울이면 그 나무들로 군불을 때는 것이다. 쌓인 땔감만 봐도 맘이 훈훈해지는데 겨울이 깊어지면 땔감은 줄어든다. 그리고 봄은 온다.그 날은 아버지가 문중에 모임이 있어 나가시면서, 하루 종일 불씨를 꺼트리지 말라는 사명을 주셨다.


종일, 젖 먹이는 엄마처럼 아궁이에 나무 둥치를 넣으며 들락 거리니 머리카락에서도 옷에서도 참나무 훈제 냄새가 났다. 그러다가 문득 이참에 버릴 것들을 좀 태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서랍과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큰 웨딩 액자는 바로 버렸다. 사진의 일부는 시댁에 있었는데, 아마 전남편이 버린 듯했다. 아이들에게 결혼사진을 봤다는 말을 못 들은 걸로 봐서. 웨딩 액자를 버리는 것은 참 허망한 일이었다. 그 사진을 찍기 위해 들인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아깝고, 어쩌다 이렇게 버려야 하는 지경까지 왔을까를 생각하면 원망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큰 액자는 쓰레기봉투에 넣기도 힘들어 발로 밟고 가위로 잘라 난도질을 한 후에야 욱여넣을 수 있었다. 앨범은 찢을 수도 없어 통째로 큰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참 공들여 사진을 찍고 돈 들여 버리려니 인생 현타가 절로 와서 철학 성찰을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었다.


결혼반지와 목걸이는 캐주얼한 디자인으로 모두 바꿔서 한참 잘 사용했다. 그 마저도 갖고 있기 싫어서 재혼 후에 딸에게 주었다. 마땅히 가져가야 할 사람에게 주었다고 생각했다. 버린다고 버려도 작은 사진들 속에 전남편이 있는 걸 발견하면 맘이 아려 왔다. 아이들과 놀아 주며 찍은 사진에는, 나도 전남편도 풋풋하게 젊다. 그림상은 행복해 보여서 맘이 애린 것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골라내고 전남편과 둘만 찍은 사진을 모두 태우기로 했다. 신혼여행에서 찍은 사진, 집 근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하나씩 태우며 내 모든 기억들도 그렇게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꽃이 필 때는, 이른 봄부터 꽃 몽우리가 꽃으로 더디 더디 피다가 질 때는 순간에 후루룩 사라지듯, 상처도 그렇게 재처럼 순간에 흔적도 알 수 없길 바랬다.



아궁이에서 재로 변하는 사진들을 보며 나는 애당초 왜 전남편에게 빠졌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전남편의 폭력성이야 몰랐다고 쳐도 보수적인 꼰대 근성은 이미 결혼 전에도 보여줬는데 말이다. 누가 등을 떠 민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말리던 결혼이었다.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이니 분명히 남자를 보는 내 안목에 문제가 있는 게 맞는 것이다.


남자를 보는 내 눈에 문제가 있다면, 재혼을 하려는 입장에서 나의 선택은 안전한지 불안이 밀려왔다. 전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나이가 스물두 살이었다. 연애 경험도 없으니 전남편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다 믿었다. 허세가 허세인지 몰랐고 권위적인 찍어 누르는 듯한 말본새는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전남편은 안정적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니  듬직해 보였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소개를 했을 때 인정을 받을 것만 같았다.


자식들이 심리상담을 하면 모든 원죄가 부모에게 나오듯이, 나의 결혼 선택도 부모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평소에 부모님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가치들에 부합하는 배우자를 보고 '아, 이 사람이면 부모님이 좋아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전남편은 지금 보면 '홍준표'같은 억지 스러 우면서, 반박을 할래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정상적인 토론이 안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기의 귀에 쏙 들어오는 어휘를 구사하며 적당히 투박한 비유를 하며 얘기하는 '홍준표'같은 스타일을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많은 자녀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부모님이 좋아할 사람'이란 항목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 들은 이상형과 자기가 본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근거로, 자녀들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 채 배우자를 택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약간의 불평등한 건 견디지만 생활의 불편은 못 견디는 사람이 있다. 열 가지 항목 중에 두 가지가 안 맞아서 못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가지만 맞아도 잘 사는 사람 일 수 있다. 가령, 현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이혼 사유일 정도로 대단하지만 다행히 나는 잘 못 듣고 잔다. 전남편의 성실하고 부지런한 성향은 누군가에게는 다른 단점을 덮을 장점이 되었을 수도 있는것이다.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경험을 해 봐야 내가 어느 선까지 용납이 되는 유형인지 알 수가 있다. 연애를 하면서 나의 반응을 살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다음 연애를 할 때 대비를 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옷을 살 때 하는 실수를 생각해보면 쉽다. 티셔츠를 살 때 길이가 짧아서 옆구리가 삐져나오는 경험을 몇 번 하면, 다음에는 길이를 우선적으로 비교하며 고른다. 그런데 길이에만 집착해서 목이 얼마나 파였는지를 못 봤네. 집에 와서 입어보니 길이는 길어 허리가 나오지는 않는데 목선이 너무 깊게 파여 입고 출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면, 내게 맞는 옷을 살필 줄 아는 안목이 생긴다. 이 옷을 사면 한 두 번은 입겠지만 금방 보풀이 생기겠구나, 이 옷은 여행지에서나 입지 그 외에는 애물단지가 되겠구나, 하는 문제점도 파악하는 경지가 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한 학습으로 나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연애 는 나를 파악하기 좋은 기회이다. 나에게 맞는 사람을 고르려면 젊은 날에 맘껏 문란하게 연애를 해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바닥을 보면 남의 바닥도 너그러이 봐주는 관용이 생긴다. 내 부족함을 외면하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우기게 된다.  너는 어떻게  사람이 그런 짓을 하냐면서  억울해 한다. 사실은 나도 누구에게 상처를 줄수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자기 바닥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에게만 있는 바닥이 아니고 누구나 있으니 두려워 말고 마주하며 된다. 너나 나나 부족하니 배워가며 성숙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완벽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니라, 같이 성장해 가는 사람을 만나야 재미가 있다.


루 종일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내가 한 성찰의 결론은 '맘껏 문란하기'였다. 하지만 명심해야 될것이 있다. 성찰 없는 문란은 '맹목'이고 문란없는 성찰은 '공허'할 뿐이다.



보잘것 없는 동네 수다용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좋아요'와  진심 어린 댓글은 저에게 군불이 되어주십니다. 읽어주시고 구독해 주신 보람이 있도록 더 열심히 쥐어짜서 글을 쓰도록 할게요.


가끔 '작업 제안'으로  메일을 주시는 분이 계셔요. 이혼했으니 조건 없이 사귀자고. 어르신!! 브런치 '작업 제안'은 그 '작업'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 재혼했어요. 번호표 뽑고 기다려 보셔요. 혹시 순 번이 돌아오려나.^^*



이렇게 생긴 화목 보일러로 군불을 땝니다.  정성스러운 댓글이 제게 군불인 거 아시죠?ㅎㅎ



https://brunch.co.kr/@red7h2k/3

https://brunch.co.kr/@red7h2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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