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대장 아빠의 암 투병기
지난 10월은 아빠의 인생을 뒤바꾼 순간이었다. 올해 12월이면 40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엄마와 전국여행을 다닐 거라며 너털웃음을 짓던 아빠. 평생 선박중공업에 종사하면서 현장에서 무거운 쇠를 나르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느라 엄지발가락이 몇 번이고 빠지고 빠졌던 우리 아빠. 손에 박힌 굳은살이 무쇠처럼 단단해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우리 아빠. 그런 아빠가 지난 10월, 췌장암 4기 환자가 되었고 앞으로 항암주사를 맞으며 암과 싸워나가야 했다.
부모님은 약 한 달 만에 집으로 향했다. 집을 떠나기 전에는 정년퇴직을 앞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집에 돌아온 아빠는 암환자가 되어있었다. 아빠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한 항암주사는 폴피리녹스. 네 가지 항암제를 섞은 항암주사인데 보통 췌장암 3기나 4기 환자들은 폴피리녹스로 항암을 시작한다고 했다. 약 효능이 강하고 효과도 좋아서 열심히 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빠는 열심히 항암제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고 엄마 역시 바빴다. 엄마는 아빠를 위해 식단부터 사소한 습관을 조금씩 고쳐나갔다. 먼저 아빠가 입은 옷과 아빠가 사용한 수건은 항암주사 성분이 있기 때문에 빨래를 따로 했고 아빠와 식기도 따로 사용했다. 항암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지면 큰일 나기 때문에 세균에 노출되는 환경을 줄이기 위해 애를 쓰셨다. 가장 큰 노력은 뭐니 뭐니 해도 밥상이었다. 원래도 요리실력이 좋은 엄마였지만 아빠를 위해 항암성분이 풍부하고 면역력을 올려주는 식재료 위주인, 일명 항암밥상을 차렸다. 밥상에는 매끼마다 3~4가지 이상의 채소가 올라왔다. 2주마다 한 번씩 항암치료를 하는 아빠를 위해 기력을 보충해 주는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와 생선반찬을 매끼마다 만들었다. 엄마는 아침밥을 차리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주방의 불을 밝혔다.
그리고 아빠는 산으로 향했다. 원래도 등산을 참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전에는 등산이 취미생활이었다면 이제는 등산이 생명줄이라는 마음으로 산으로 향하셨다.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8시에 산으로 향했다. 동네 뒷산 시루봉(해발 653m)을 쉬엄쉬엄 오르고 오후 2시쯤 산을 내려오셨다. 근처 국숫집에서 점심을 드시고 오후 3시에 집에 와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셨다. 매일 등산을 하며 5만보, 6만보를 걸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아빠는 항암치료를 총 1년 7개월 정도 하셨는데 항암주사를 맞은 당일을 빼고는 매일같이 산을 올랐다. 그것도 산 정상을 하나만 가는 것이 아니라 봉오리 3개를 오르고서야 집에 오셨다.
하루는 내가 물어봤다.
"아빠, 항암치료하면 힘들지 않아요? 어떻게 맨날 산에 올라가요?
나 같으면 하루는 땡땡이치겠다~"
아빠가 말했다.
"산에 가야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산에 가자!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 돼.
머릿속으로만 생각만 하면 생각에서 그치는데 발을 움직여서 행동을 하면 그게 실천이 되는 거야.
등산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그렇게 해야 해.
'해야지'가 아니라 '하자'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해.
생각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해, 너도 꼭 명심해라"
그랬다. 아빠는 생각할 시간에 발을 움직여 행동하라고 했다. 그것이 아빠가 64년 동안 인생을 살아간 신조였고 그것이 췌장암을 이겨내는 아빠의 자세였다. 물론 아빠도 좌절의 순간이 있었고 눈물이 나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렸을까,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산에 올라가 큰 소리로 엉엉 울기도 하고 악다구니를 써보기도 하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어보기도 했단다. 가족들 앞에는 의연한 척 씩씩한 척했지만 산에서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변해서 온갖 감정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산은 아빠에게 품을 내어줬고 아빠는 그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아빠에게 산은 또 다른 가족나 마찬가지였다. 치부를 드러내도 손가락질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또 다른 가족.
아빠는 산에 올라가면서 매일 사진을 찍으셨는데 아프기 전에는 그저 스쳐 지나갔던 나무, 꽃, 하늘 등 산길에서 만나는 당연한 풍경들이 이제는 매일이 다채롭고 새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노란 꽃, 빨간 꽃, 파란 꽃으로만 보였던 꽃들에도 이름이 있었다며 열심히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저마다의 이름을 찾아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 꽃의 이름은~' 하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셨다. 나 역시도 새삼스러웠다. 당장 길가에 핀 꽃 이름도, 도로 옆에 줄지어 심어진 나무 이름도 몰랐는데 모든 것들에 저마다의 이름이 있었고 그들 역시 하나의 생명이라는 사실에 숭고한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도 어쩌면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하나의 작은 생명에 지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산등성이 핀 꽃과 나무처럼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땅에 뿌리를 내려 끝까지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어떻게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을 다해 아빠의 곁을 지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과 싸우고 있을 분들과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분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어떻게든 버티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끝까지 견뎌내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를 보며 '이렇게나 작은 생명도 저렇게나 열심히 버티는데 나라고 못할게 뭔가!'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힘내주시기를. 우리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빠가 찍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