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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Jan 05. 2021

50년 흑자 신화를 만든 '경영의 신'의 비결, 글쓰기

이나모리 가즈오, 리더의 글을 통해 아메바 경영에 날개를 달다

먼저 2010년 일본을 뒤흔들었던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자. 지금부터 말할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19일 일본 사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국적 항공사 일본항공(JAL)이 2조 3221억 엔(2010년 환율 기준 약 28조 5000억 원)의 빚에 짓눌린 채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공기업 시절부터 수십 년째 누적된 부실 경영의 폐해에다 엔고(일본 엔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현상)까지 겹치면서 회사가 고꾸라졌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1만 6000명을 내보내고 남은 직원들의 월급도 20~30%씩 삭감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이 발표됐지만 JAL이 되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때 세계 최대 항공사로 군림했던 회사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로만 보였다.



JAL이 파산한 지 2주 뒤인 2010년 2월 1일, 일흔여덟 살의 한 백발 신사가 도쿄 시나가와구에 있는 JAL 본사 1층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 


평소 ‘기내식이 맛이 없고, 서비스도 형편없어서 JAL 비행기는 타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날만큼은 자택이 있는 교토에서 도쿄로 이동할 때 JAL 비행기를 타고 왔다.

  

잠시 뒤 본사 건물에서 빠져나온 이 백발 신사는 곧바로 하네다 공항에 있는 JAL 사무소로 향했다. JAL의 사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조금 전 있었던 간략한 취임식을 통해 이 일흔여덟 살 노인이 회사의 새로운 회장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정부가 JAL을 부활시키기 위해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구원 투수였다. 일본 정부는 엄청난 빚을 진 채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JAL을 되살리는 일은 오직 최고의 경영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하토야마 유키오 당시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 은퇴 이후 한가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던 이 남자에게 JAL의 경영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설득을 위해 그를 몇 차례나 찾아갔다. 

  

JAL의 정비 공장을 방문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28조 빚을 지고 파산한 회사의 경영을 맡은 이유


그에겐 독이 든 성배, 아니 한입 베어 물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독사과와 같은 제안이었다. 설사 혼신의 노력으로 JAL을 부활시킨다고 해도 얻는 건 아무것도 없고, 만약 회사를 되살리는데 실패한다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명성이 무너지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은 섶을 지고 불난 집에 뛰어들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JAL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안 그래도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 경제가 더 큰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 남아있는 3만 2000명의 직원들과 협력사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켜야만 한다는 게 두 번째 이유, JAL이 망해서 일본에 대형 항공사가 한 곳밖에 남지 않게 되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게 세 번째 이유였다.  

  

그가 난파선의 선장 자리에 오르면서 요구한 조건은 단 하나였다. 

 

“나이가 있어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풀타임으로 근무하기는 힘드나 일주일에 3일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임시직이니 급료는 필요 없습니다.”

  


그가 JAL 회장직에 취임하며 함께 데리고 들어간 원래 회사의 부하 직원은 단 세 명이었다. 그의 경영철학을 알리는 일을 하던 직원 두 명과 그의 오랜 비서 한 명. 3만 2000명이 일하는 회사를 구해내기 위해 투입된 인원이 그를 포함해 고작 네 명이었다. 


설령 ‘경영의 신’이더라도 이 회사를 살려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이지 그렇다.     

  

2년 7개월이 지난 2012년 9월 19일 JAL은 도쿄 증권거래소에 재상장되며 부활을 알린다. 이미 2011년 3월과 2012년 3월 두 해 연속 사상 최대의 흑자를 갱신하면서 시작된 JAL의 부활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중소기업 경영자 학습모임인 세이와주쿠에서 이야기 나누는 이나모리 가즈오


2013년 3월 19일 이 남자는 JAL 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자신이 원래 속해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날 고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경영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처럼 답했다. 일본뿐 아니라 자신의 회사를 강하고 바르게 성장시키고 싶은 이 세상의 모든 기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일본 기업의 리더는 더 강한 의지로 회사를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투지 없는 경영은 안 됩니다. 자신의 회사를 어떻게 해서든지 훌륭하게 만들고자 하는 투혼을 불태워주십시오”        


최고경영자직을 물려주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나모리 가즈오


살아있는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일흔여덟 살의 나이에 매주 교토와 도쿄를 오가며, 호텔 방에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회사를 이끌어온 이 남자만큼 ‘투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혼다자동차 창업자와 함께 일본의 3대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1959년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맨주먹으로 창업한 회사를 반세기 넘게 단 한 번도 적지를 보지 않으며 직원 7만 명의 글로벌 대기업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50년 넘게 단 한 번도 적자를 보지 않으며 회사를 경영했다는 사실 자체도 대단하지만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회사를 되살려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고 실제로 부활을 이뤄낸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그가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철인(哲人·Philosopher‧철학자) 경영자라는 또 다른 별명답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많은 책을 통해 세상에 전해왔다. 지금껏 모두 44권(공저 포함)의 책을 출간했는데 2018년 10월 기준 그의 책들은 전 세계에서 1500만 부 넘게 판매됐다. 



일본에서는 모두 565만 권이 판매됐는데 중국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840만 권의 책이 판매됐다. 그의 대표작 <카르마 경영> 한 권만 해도 일본에서는 130만 부 중국에서는 220만 부가 넘게 팔렸다.

  

1500만 권이 넘는 책이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그의 첫 데뷔는 환갑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뤄졌다. 57세이던 1989년에 나온 <마음을 높이는 경영 스트레칭>(한국판 <일심일언>)이 바로 그의 첫 책이다. 


1989년에 첫 책이 나왔고, 2018년엔 출간 도서가 44권에 달했으니 단순히 계산해봐도 30년 동안 매년 한, 두 권씩 꾸준히 책을 써온 셈이다.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그는 왜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그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전달하는 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이에 대한 답은 2013년 그가 자신의 첫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남긴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 출간된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들


“회사가 창립되고 30주년을 맞았을 때 나는 회사 발전의 기반이 된 나의 철학을 차분히 정리해보았다. 애초에는 사내에서만 보는 인쇄물로 발간하려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교세라 직원뿐 아니라 많은 후배 경영인들에게도 이 글을 소개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끈질긴 요청이 있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책을 내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교세라 구성원이 갖춰야만 하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 철학에 대해 직접 글을 써서 직원들에게 알려왔다. 그가 철인 경영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세라에서는 그가 쓴 글을 모아 <교세라 철학 수첩>이라는 사내 교육용 교재를 만들었다. 이 책자를 처음 발행한 건 그가 서른다섯 살이던 1967년이었다. 회사를 창업지 8년째 되는 해였다. 그가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내길 원했음을 알 수 있다. 

  

교세라 철학 수첩을 들어보이는 이나모리 가즈오


35살의 나이에 자신의 언어로 된 철학을 만들다


수첩이라는 말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 갖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소책자였다. 직원들은 평소 이 책자를 지니고 다니다가 복잡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책자에 나온 지침을 근거 삼아 판단을 내렸다. 


업무와 일상에서 쉽고, 편해 보이지만 정직하지 못한 방법을 택하라는 유혹과 마주칠 때마다 직원들이 자신의 글을 보고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나모리가 이 책자를 만든 이유였다. 


그의 첫 책 <일심일언>은 <교세라 철학 수첩>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교세라 직원뿐 아니라 누구라도 읽고서 삶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내용을 다듬고 덧붙여 만들어낸 책이다. 

  

교세라 철학수첩을 책 형태로 출간한 책


교세라 직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세부적인 경영 지침에 대한 내용은 뺐고 대신 이나모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운 인생의 교훈과 삶의 바람직한 자세를 설명하는 내용을 듬뿍 집어넣었다. <교세라 철학수첩>을 뼈대로 한 경영서이자 리더십 서적, 자기계발서라고 이해하면 된다.

  

필자는 지금껏 그의 책을 10권 이상 읽었는데 이를 통해 그에게는 그만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려운 표현 대신 쉽고, 편한 단어들로 읽기 쉬운 글을 쓴다는 건 다른 최고의 리더들과 마찬가지지만 이에 더해 그의 글에는 유독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다.      


  

최고의 리더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바로 결코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옳으니 당신들은 무조건 내 말을 따라야 돼’라고 강요하는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는 그저 보여준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 담담히 풀어낼 뿐이다. 첫 책 <일심일언>의 짧은 서문에는 그의 이런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젊을 때에는 부모와 교사, 직장 상사로부터 주의를 받거나 무언가 가르침을 받더라도 반발하기 쉽다. 나도 부모로부터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종종 ‘젊을 때 고생은 팔아서라도 하지 마라’하고 말을 바꿔치며 반발했던 기억이 있다.”     

  

“반발할 때는 하더라도,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머릿속 한 편에 잘 보관해두는 것만큼은 잊지 말자. 스스로 인생을 걷기 시작하는 것은 지도도 없는 대양에서 노를 젓기 시작한 것과 같다. 그때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들이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하는 이야기도 그와 같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반발하거나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일을 할 때나 인생을 살아가는 도중에 장애와 맞닥뜨렸을 때, 지금의 이야기를 떠올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괴로워하고,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는 와중에 어렵게 습득한 내용이다. 언젠가는 여러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직접 제품 연구·연구개발을 이끌며 회사를 키워낸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였다. 그가 회사 경영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펜을 잡아든 이유도 직원들이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회사에서 일해주기를, 자신과 같은 기준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판단을 내리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 기준과 원칙을 공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교육해 회사의 성과를 높이는 게 그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렇게 직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그이지만 그의 글에서는 남을 가르치겠다는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글을 읽는 이들 중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반발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거고, 그런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에는 누구보다 많이 좌절했고 그만큼 반항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가고시마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나온 그는 졸업을 앞두고 한창 면접을 보러 다니던 무렵에는 시내에 있는 야쿠자 사무실 앞까지 찾아가기도 했었다.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 출신인 데다 집도 가난해 변변한 연줄도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야쿠자밖에 없다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 가라데부에 운동하며 익혔던 무술 실력이면 야쿠자로는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가까스로 교토에 있는 다 망해가는 중소 전자제품 제조업체에 취직한 뒤 온갖 노력 끝에 신제품을 개발해 회사에 커다란 이익을 안겨줬지만 그곳에서도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다. 


‘명문 교토대 출신도 아닌 네가 맡기에는 무리한 일’이라는 상사의 말에 격분해 사표를 내던지고 뛰쳐나와 창업한 회사가 바로 교세라다.   

  


열등감에 시달렸던 반항아


가난한 집안 환경, 변변치 못한 학벌, 꾀죄죄한 옷차림, 유독 심했던 사투리. 젊은 시절의 그는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환경 탓에 계속해서 작아지기만 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이 무렵 20대 초반의 이나모리에게 몇십 년 뒤 경영의 신이 된 그가 쓴 글을 주고 읽어보라고 했다면 ‘한가한 소리한다’고 말하며 바로 내팽개쳤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잊지 못해요. 면접을 보기 전에 대기실에서 응시생 네다섯 명과 얘기해보면 친척이 그 회사 임원으로 있는 응시생이 있는가 하면 죄다 무슨 연줄이 있더라고요. 나 같은 시골 촌놈은 없었어요. 면접 대기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열등감이 생기더라고요.” 

    

(이 글은 오는 2월 출간되는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에 들어가는 원고글입니다. 뉴스레터 <홍자병법>을 구독하시면 지금 이 글과 같은 고급지식을 매주 한 편 이메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시면 바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젊은 시절의 경험 덕분에 그는 자신이 살면서 겪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진심으로 쓴 글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공허한 이야기, 한가한 소리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소중한 지혜를 담고 있는 글이더라도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때로는 헛소리로만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위대한 작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글은 작가와 독자만의 1대 1 대화이며 그렇기에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게 독자가 누구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가 대화의 질과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와 같은 최고의 리더들은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따를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읽는 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다면 아무리 진심을 담아 말하더라도 결코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글을 통해 그 누구도 꾸짖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보여준다. 나는 이렇게 살아오면서 이런 것들을 깨달았는데 이런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 한 번 들어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다만 지금 당장 내 말을 듣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했던 이야기들을 머릿속 한 편에 잘 보관해달라고만 부탁한다. 언젠가는 분명 자신을 다시 찾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깊이 공감할 때만 스스로 몸을 일으켜 행동에 나선다’는 이치를 몸으로 터득한 것이야말로 최고의 리더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은 비결이니까 말이다.  

  


글쓰기 경영으로 아메바 경영에 날개를 달다


앞서 말했듯 아메바 경영이야말로 이나모리 가즈오를 상징하는 경영 기법이자 철학이다. 회사 임직원들에게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스스로 사업을 꾸려나가도록 하는 아메바 경영 덕분에 


교세라는 반세기 넘게 흑자 행진을 기록하며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었고, 생사의 기로에 몰렸던 JAL 또한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만큼 아메바 경영은 곧 이나모리 가즈오 그 자체를 상징하는 기법이자 철학이다. 

  

그리고 아메바 경영이 이처럼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그의 글쓰기 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교세라 철학 수첩>을 직접 쓰면서 직원들에게 자신의 판단 기준과 원칙을 일일이 공개한 것도 아메바 경영에 힘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아메바 경영과 글쓰기는 자신의 회사가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돕는 양쪽 날개였다. 

  


아메바 경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전체 회사 조직을 아메바로 불리는 10여 명 안팎의 소규모 조직으로 잘게 쪼갠 뒤 각 집단의 리더에게 인사, 정보, 자금, 기술에 대한 전권을 주고 작은 CEO(최고경영자)의 역할을 맡기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권한을 위임한 만큼 각 아메바마다 매출, 비용, 이익을 계산해 성과를 평가하는 독립채산제 방식의 경영 시스템이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단세포 생물 아메바처럼 회사를 비즈니스 단위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모로 잘게 쪼개서 운영한다는 뜻으로 아메바 경영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업 초기 직접 제품 연구·개발, 생산, 영업, 인사, 재무 등 회사의 모든 일을 책임지며 회사를 키워나갔던 그는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직원이 수백 명으로 불어나자 그때부턴 자기 혼자 모든 일을 직접 챙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 그가 고민 끝에 찾아낸 해법이 바로 전체 조직을 잘게 쪼개 각 집단의 리더에게 전권을 주는 아메바 경영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운 적도 없었고, 이전 직장에 다닐 때에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만 집중했지 경영에는 참여한 적 없었던 그였기에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창의적인 시스템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현장 리더에게 경영 권한을 위임하는 아메바 경영을 도입한 이후 회사의 생산성은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메바 경영에도 보이지 않는 약점이 있었다. 전체 회사 조직을 10여 명 안팎으로 구성된 아메바로 쪼개 놓은 덕분에 아메바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판단 기준을 갖고 업무를 처리할 위험성이 있었다. 

  

회사가 성장하고 직원들이 많아질수록 아메바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아메바마다 서로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나간다면 회사는 하나의 조직으로써의 구심점을 잃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부분의 효율을 추구하다 전체 조직의 효율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을 통해 구성원들과 자신의 판단 기준과 원칙을 공유하다


그렇기에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통일된 판단 기준을 갖고 비즈니스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안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이나모리는 교세라 직원이라면 누구든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일관된 시스템을 만들려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이 그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 기준과 원칙을 만들어냈고, 이를 <교세라 철학 수첩>에 담아 직원들에게 전파한다. 


철학자 이전에 그는 수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낸 창업자다. 그가 글쓰기에 그토록이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숨어 있다. 


리더의 생각을 담은 글이야말로 조직 구성원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통일된 원칙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돕는 최고의 도구니까 말이다.

  

그는 회사 임원들에게 <교세라 철학 수첩>을 비롯한 자신이 직접 쓴 글을 나눠주고 이에 대한 감상문을 작성하도록 하는 숙제도 종종 내줬다. 현장에서 회사의 각 사업부를 이끌어나가는 임원들이 자신의 철학을 몸에 익혀 더 나은 경영자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외국인 임원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식 경영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회사는 직원의 평생 고용을 보장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직원에게 회사에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할 것을 요구하는 게 일본식 경영의 특징이다. 

  

1971년 그가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페어차일드사의 전자제품 제조공장을 인수한 뒤 교세라 미국 공장으로 삼자 처음엔 새롭게 회사의 일원이 된 미국인 임원들 사이에선 이나모리식 경영 이념에 대한 저항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그의 경영 이념은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에선 통했을지 몰라도 미국에선 절대로 통할 수 없는 방침’이라는 게 미국인 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자신의 경영 철학에 대한 현지 임원들의 거센 반발을 눈치챈 이나모리는 <교세라 철학 수첩>을 영어로 번역한 뒤 그들에게 읽어오도록 한다. 


그러고는 모든 임원들을 한데 모아놓고 자신의 경영철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풀어내면서 자신이 교세라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구체적인 행동 방침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나모리 가즈오에 대하 설명하는 국내 출간 서적들


그리고 이런 이나모리의 노력은 보답을 받게 된다

  

“그랬더니 다음날부터는 임원들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하루가 지나니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MIT 박사 출신도 모두가 교세라의 경영 이념이 훌륭하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경영 철학이 임원을 비롯한 일반 직원들에게까지 구석구석 스며든 덕분에 교세라가 인수하기 전 매달 10만~20만 달러라는 거액의 적자를 보던 이 샌디에이고 공장은 인수 3년째인 1973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리더가 직접 명확하고 분명한 판단 기준과 행동 원칙을 직원들에게 설명하는 게 조직의 효율성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최고의 수단인 건 일본이든 미국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느 국가, 어느 조직에서든 마찬가지다.

  

“리더의 철학에는 시대나 지위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직원들로부터 이해를 받을 수 있다. 나이차가 나더라도 ‘인간으로서 올바른 것’이라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철학이라면, 세대를 뛰어넘은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일하지 않는 사람, 일하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탄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들린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희망이 더 많다. 미래의 꿈을 안고 전진하려는, 세대를 초월한 사람들은 이즈음에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어떤 힘들 일이라도 도전해보겠다’는 젊은이도 여전히 많다. 이들에게 리더로서 명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인간 공통의 관심사에 기반한 내용이라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젊은이들도 분명 이해해줄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교세라 철학의 상세한 내용을 처음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 건 <교세라 철학 수첩>을 펴낸 지 21년이 지난 1998년부터다. 



세상에 공개된 <교세라 철학 수첩>


그 이전에도 여러 책과 강연을 통해 자신이 회사를 경영하며 배워온 지혜를 사람들과 공유해왔지만 대중들에게 <교세라 철학 수첩>의 79개 항목 모두를 공개하고 이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던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전까지 <교세라 철학 수첩>은 교세라 직원들과 그가 만든 경영 학습모임인 세이와주쿠 수강생들에게만 전해졌다.     

  

그가 1998년 가을부터 2000년 봄까지 모두 16차례에 걸친 강연을 통해 직접 교세라 철학에 대해 해설한 내용이 <바위를 들어올려라>라는 이름의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일반 독자들도 비로소 교세라 철학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번째 해외 출장에 나서는 이나모리 가즈오와 교세라 직원들


평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인 그였지만 회사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 모두를 외부에 공개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과 그만큼의 고민이 필요했다. 


경쟁사 임직원이 자신의 책을 읽고 연구하면 교세라의 전략과 행동 방식이 손쉽게 파악될 수 있다는 걱정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철학, 원칙, 판단기준 전부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회사가 설립된 지 40년이 지나며 회사가 자신의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회사 직원과 몇몇 세이와주쿠 수강생뿐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 모두를 돕는 게 자신이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글을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는 일도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우리는 그의 사례를 통해서 글쓰기야말로 조직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원칙과 판단 기준을 공유함으로써 조직의 성과를 끌어올리고 더 나아가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전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고의 리더는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만들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렇다.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홍선표 작가 / 한국경제신문 기자

rickeygo@naver.com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2월 출간 예정),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한국의 젊은 부자농부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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