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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Feb 07. 2021

경영의 신이 월급 봉투 속에 엽서를 담아 보냈던 이유

마쓰시타 고노스케, 그가 글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낸 비결

탁월한 창업자라면 어느 시대에 활동했든지 간에 누구나 알고 있다. 사업의 성패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서 결정되며, 높은 자리에 있다고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순 없다. 지금 다룰 이 창업자도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했기에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래서 그는 글을 썼다.     


1917년 일본 오사카 츠루하시의 허름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작은 주택에서 스물세 살 청년이 사업을 시작했다. 전셋집이었기에 회사 간판조차 달지 못한 채 아내와 처남, 전 직장 동료 두 명과 함께 2평 남짓한 좁은 방에 둘러앉아 제품을 만들었다. 전구에 연결하는 소켓이 이 회사가 만드는 유일한 제품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던 이 청년은 아홉 살 때부터 오사카의 번화가인 센바의 화로 판매점과 자전거 상회에서 꼬마 점원으로 일하며 장사를 배웠다.     



자전거 가게의 꼬마 점원, 자기 회사를 차리다


열여섯 살이 되던 1910년에는 전력 회사인 오사카전등에 수습 사원으로 입사했는데, 이때 처음 전기 제품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매일같이 전선을 깔고 전등을 달며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고속 승진을 거듭해 입사 6년 차인 스물두 살에 사무직으로 승진했지만 얼마 안 가 회사를 그만둔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자신이 관료적인 대기업에서 위로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커다란 조직에서 평생 눈에 띄지 않는 부품으로 사느니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익힌 장사 실력을 살려 자기 사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사업 아이템은 회사 다닐 때 발명했다가 상사에게 퇴짜 맞았던 전기 소켓.      


‘회사가 내 발명을 무시한다면 내가 직접 한번 팔아보겠다’는 오기도 있었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힘겹게 자랐지만 자신감과 승부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퇴직금과 남에게 빌린 돈을 합쳐 마련한 200엔, 지금 우리 돈으로 약 2,800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였지만 몇 달 만에 문을 닫을 처지에 몰린다. 아무래도 어깨너머로 익힌 기술로 만든 제품인지라 그가 만든 소켓은 결함투성이 불량품이었고, 당연히 사 가는 이들도 없었다.     


회사가 망할 지경이 되자 함께 창업했던 직장 동료 두 명은 떠나갔고, 그는 아내의 결혼반지마저 전당포에 맡겨 돈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젊은이의 앞날엔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 했던 청년에게 세상은 언제나 가혹한 곳일 수밖에 없을까?     


간판도 없이 시작한 회사의 이름은 마쓰시타전기. 청년은 자신의 성을 그대로 회사 이름으로 삼았다. 이 이름은 훗날 파나소닉으로 바뀐다. 이 청년이 바로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창업자다. 일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두 번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자전거 가게 점원으로 일할 당시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가난, 질병, 저학력을 이겨내고 경영의 신이 되다


1894년에 태어나 1989년 세상을 떠난 그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꼽힌다.      

그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는 가난, 질병, 저학력이라는 세 가지 장애물을 극복하고 맨손으로 창업해 마쓰시타전기(지금의 파나소닉)라는 거대한 기업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은 오늘날에도 매년 40조~50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전자 제품 제조 기업이다.     


비록 지금은 그 위상이 전성기 시절만 못하지만, 그가 회사를 이끌었던 시기와 그 이후까지도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전자 제품 시장을 휘어잡았던 회사다.     


기업인으로서 그가 일군 업적과 그의 경영 철학, 일화들을 설명하는 책과 자료는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남긴 책들


하지만 그가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는 사실은 생각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500만 부가 훨씬 넘게 팔려 일본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의 저자이자 모두 합쳐 2,000만 권이 넘는 책을 판매한 작가인만큼 그를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부르는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정규교육으로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오사카전등에서 일하던 시절, 지렁이처럼 꾸불거리는 글씨에 부끄러움을 느껴 사무직으로 일하지 못할 것 같다며 스스로 강등을 요구했던 일화만 봐도 그가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언제 스스로 글쓰기 실력을 연마해나갔던 것일까? 회사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던 그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는 이렇게 쌓은 글쓰기 실력을 회사를 키워내는 데 어떻게 활용했을까?     



조직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


큰 사업을 일구면서 남들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면 이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생각을 흐트러짐 없이 활자로 옮기기 위해선 반드시 따로 글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정교한 생각이 좋은 문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정교한 생각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기본 조건일 뿐이다.      


마쓰시타 역시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남모르게 연습하며 글솜씨를 갈고닦아야만 했다.     


사실 마쓰시타가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자신의 사상을 후세에 남기겠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의 목표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경영 현장에서 살아남아 회사를 더 크게 키우는 것뿐이었다. 사상이나 철학 따위의 거창한 명분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평생 스스로를 오사카의 상인으로 여겼던 그였기에 글을 썼던 목적도 지극히 실용적이었다. 자기 생각과 계획, 회사의 현재 상황과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모든 직원에게 알림으로써 조직을 더 효율적으로 이끄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처음 펜을 잡았던 이유다.     


(지금 읽고 계신 이 글은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37~45페이지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다른 모든 창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쓰시타도 회사가 성장하고 직원들의 수가 수백, 수천, 수만 명으로 불어나면서 더 이상 모든 직원에게 자기 생각을 직접 전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와 맞닥뜨렸다.      


회사가 커질수록 최고경영자의 관리 역량이 점점 더 중요해져만 가는 것과는 반대로 직원들에게 리더의 생각을 알리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직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자신을 믿고 회사를 위해 더 노력해달라고 일장 연설을 한다고 해서 그 말이 제대로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직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지 일대일로 알리는 것이 먼저여야만 했다.     


마쓰시타는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월급봉투 속 편지’라는 자신만의 수단을 만들어낸다. 아홉 살 때부터 밑바닥 점원으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게 된 그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그들이 기쁘고 즐거울 때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손님이 상점에 들어설 때마다 밝고 우렁찬 목소리로 “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쳤던 어린 시절에 스스로 터득한 교훈이었다.      



월급 봉투 속에 담긴 사장님의 엽서


그는 한 달 중 직원들이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인 월급날마다 자신의 글을 전했다. 아무리 일이 고되더라도 월급날만큼은 즐겁고 행복해지는 게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줄 월급봉투 속에 자신이 쓴 편지를 함께 담았다. 엽서 크기의 편지지에 200자 원고지 3~4장 길이의 짧은 글을 썼다. 회사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하거나 좀 더 분발해주기를 부탁하는 내용이 많았다.      


때로는 봄에 교외로 놀러나가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는 가벼운 일상을 담기도 했다. 이렇게 딱히 누구를 찾아가 배우는 일 없이 스스로 글쓰기를 연습해나갔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마쓰시타식 글쓰기의 특징은 어려운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평소 대화에서 사용하는 표현 그대로, 말하듯이 쓴다는 점이다.      


직원들에게 자신의 뜻과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홀로 책상 앞에 앉아 고민을 거듭하며 한 문장씩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이 같은 쉽고 편한 글쓰기 스타일을 익힐 수 있었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이자 지금껏 548만 부(2019년 9월 기준)가 팔려 일본에서 역대 2위의 판매량을 올린 《마쓰시타 고노스케, 길을 열다》에 실린 글의 일부다. 그가 쉽게 읽히는 문장을 쓰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요즘에는 별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때때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감자를 씻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감자를 가득 담은 큰 나무통 가장자리에 올라선 젊은이가 두 개의 봉으로 열심히 통 속을 휘젓는다. 그 힘에 의해 감자는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서 위로, 그리고 좌우로 계속 이동하면서 물속을 휘젓고 다닌다.”     


“인생이나 일도 나무통 안의 감자와 같은 움직임을 가진다. 현재 맨 위에 있다고 언제까지나 맨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밑에 있는 것도 언제까지나 밑에 깔려 있지만은 않는다. 위로 올라오고 또 내려가는 것을 반복한다.”      


“이렇게 인생의 길은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따른다. 올라가기만 하는 일도 없고 내려가기만 하는 일도 없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동안 사람은 갈고닦이고 연마된다.”     



멋있게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자신부터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글을 쓸 때 어렵고 격식을 차린 어휘와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었다. 또한 그가 현장에서 직접 경영을 이끌던 시기에 파나소닉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학력 수준 역시 그다지 높지 않았다.      


멋있게 쓰는 것보다는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책에서 가져온 멋들어진 일화나 고사성어보다는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했기에 들으면 바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사례를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나가는 그 특유의 글쓰기 스타일이 만들어진 이유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생선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고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즐겁게 식사할 수는 있다. 취향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 된다.”      


“생선을 싫어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고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취향의 차이는 차이대로 받아들이고 각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고 평화로울 수 있다.”     



월급봉투 속 짧은 편지를 통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던 마쓰시타는 이후엔 회사 사보에 정기적으로 글을 썼다. 한 달에 한 번 보내는 글만으로는 직원들과 충분히 소통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각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 시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파나소닉을 창업해 지금까지 키워낼 수 있었는지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말하자면 자신의 자서전을 연재했던 것이다.     


마쓰시타가 이 글을 연재하던 1950년대는 이미 그가 일본 경제계의 거물로 자리를 잡은 데다 파나소닉 직원 수가 약 1만 명에 달하던 시기였다. 회사가 대기업이 된 이후에 들어온 직원들은 자신들의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또 회사가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며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는지 잘 모르는 게 당연했다.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앞으로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는 먼저 회사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자리에 설 수있었는지 직원들이 정확히 알도록 해야 했다.      


그동안 걸어왔던 역사를 모르고선 지금의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모두 마찬가지다.           


이 연재 시리즈에서 마쓰시타는 자신의 약점 역시 감추지 않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고 신경질을 자주 부리는 성격이었고, 작은 일에도 울음을 터뜨리는 울보였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창업하기 전에 다녔던 직장에서 겪었던 설움도 담담히 털어놓는다.      


자신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마쓰시타식 글쓰기의 진솔함은 부하 직원들 앞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홍선표 작가 / 한국경제신문 기자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한국의 젊은 부자농부들>

rickeygo@naver.com



(방금 읽으신 이 글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본문 37~45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이나모리 가즈오, 레이 달리오 등 최고의 리더 19인이 글을 쓴 이유 5가지와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5가지 성과를 쉽고, 깊이있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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